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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ss Jan 01. 2018

몇 인분의 고독

화면 저 너머로, 스피커 그물망 너머로 

볼륨을 조절하며 내 맘대로 줄였다 키웠다 아랑곳없이 소리를 내던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지독하게 앓고 있던 우울이 조금 잠잠해진 터였고 나는 약 덕분인지 꽤 무덤덤한 상태였다. 상담도 받고 있었고 믿음이 있지는 않았지만 희미한 바람으로 성당에 나가 교리 교육을 받던 중이었다. 무심코라기에 자주 찾아오는 무기력함과 자책과 자기 비난이 육신을 휘감아 숨 쉬는 것도 벅찬 때가 며칠씩 지속되긴 했지만, 어쨌든 약으로 잠에 들며 현실과의 고리를 끊을 수 있게 된 것은 다행 중 다행이었다. 


그날은 심연으로 빠져드는 나날 중 낚싯줄에 아가미 날캉거리는 부분이 걸려 잡힐 듯 말 듯 아슬한 상태가 지속되던 삼일째였다. 이것이 나쁘지만은 않은 이유는 외력에 의해 자극이 주어지면 나는 살아내려고 미약한 의지를 본능으로 끄집어내기라도 하기 때문에 심연보다는 조금 위에, 평균보다는 낮은 위치에 움츠리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핸드폰을 밝혀 첫 화면의 뉴스를 훑는데,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 기사들 뒤로 유서의 내용이 올라왔다. 


많이 이상했다. 공기가 통하는 구멍이 막히는 듯, 헐떡이며 쉴 만하던 흉부의 공간들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이런 감정이 작은 몸에 가득 차고 차다가 터져버렸던 그 날들처럼 증상은 다시 시작되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가슴이 답답해지며 우리하게 아팠다. 나는 쇄골 아래 명치 위로 자꾸 손을 갖다 대어 문질렀다. 무 뽑듯 팔다리의 근육을 마름모의 꼭짓점들이 다 빨아들이는 느낌이었다. 


불안은 다시 찾아왔고, 이번에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그것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를 걸고 있던 낚시 고리가 바둥거리다 빠져버렸고 다시 심연으로 더 깊이깊이 내려갔다. 헤엄치지 않았다. 헤엄치는 법은 알았지만 책에서 읽은 것들은 물끄러미 가라앉는 나를 바라보며 더 자책하는 것만 부추겼을 뿐이다.  


한동안 웅크리고 있다 맥주를 땄다. 윤기 있는 양념이 가뜩 처발라져 있는 치킨을 주문했다. 맥주를 들이켰다. 술이 없으면 음식이 넘어가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모든 장기가 멈춰있다 한번 용기를 낼 때 폭식의 세계로 들어가 불안과 허전함을 꾸역꾸역 메꾸는 것이 습관이었다. 배달 온 치킨의 탐스러움을 앞에 두고 맥주의 씁쓸한 청량감이 사라지기 전 크게 한 입 베어 무는데, 터질 듯 눈물이 흘러나왔다. 두 눈에서 맥주가 나오는지 따끔따끔했다. 눈물과 함께 먹는 치킨이 너무 맛있다고 생각하는데 문득, 나랑 이렇게 울며 치킨 먹지. 우리 아무 말 없이 음악 들으며 짠도 했다고 치킨도 먹었다가 그러자고 하지. 두 시간 전 해 질 녘 속에 고통스러웠을 그 사람을 생각하며 펑펑 울다, 먹다 마시다 했다.  


띄엄띄엄 살아내고, 살아지는 사람들의 섬이 너무 가까워 버겁고 너무 멀어 그립다. 다시 또 한 해를 살아내야 하는데 나는 또 몇 인분의 고독을 감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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