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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ss Dec 18. 2017

믿음은 어디에


예비신자를 위한 성당의 교리교육에 할아버지 한분이 지팡이를 짚고 나오신다. 

종종 걸음걸이로 눈을 밟고 오실 때도 있고 얼음판을 피해 오실 때도 있다. 조금 일찍 도착해 커피 마시는 것을 낙으로 삼는 나와 그 할아버지가 오는 순서의 일이등을 차지한다. 

경기도 시흥에서 종로까지 오신다는 소식을 봉사자의 감탄사로 알게 되었다. 

이렇게 추운 날에 어떻게 오셨어요, 여기 앉으세요.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면서 몸 좀 녹이세요! 


아 영하 11도의 날씨에 갈까 말까를 아침 내내 고민하던 나였다. 적지 않은 일에 금방 실증 내는 것이 익숙한 내가 매주 성당 교육을 왜 가냐면, 믿음이 생겨서도 아니고 구원을 받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아직도 어색한 미사 순서와 따라 하지도 못하는 기도문들을 웅얼거리면서 딱히 소원을 비는 것도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옆 사람을 따라 하고 스테인드 글라스의 그림자가 유리를 통과하는 햇빛으로 물들이는, 선명하면서도 어렴풋함을 보고 있다. 신부 위에서 빛을 내는 원형의 거대한 조명을 응시하기도 하고, 매주 바뀌는 제단의 생화 장식을 감상하기도 한다. 대림절이라는 이 시기, 보라 분홍의 아름다운 색으로 한 주씩 켜지는 큰 초의 촛불을 사랑한다. 심지어 어제는 장밋빛의 신부복을 보고 기분이 약간 좋아지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수녀님께서 강의하시는 한 시간 반 동안 졸기도 하시고 킁킁 소리를 내기도 하신다. 

그 모습에 문득 인생에서 이것뿐이라고 생각했던 가치들이 틀릴 수도,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매주 성당에 갔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은 술에 빠져 예수가 다 무슨 소용이냐, 기도한다고 미사 본다고 뭐가 해결되냐. 비관적인 내가 된 날은 성당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이 쓰디쓴 날과 감동적인 날을 번갈아 겪다 보면, 비관에만 빠져 있지 않고 잡히진 않지만 가끔씩 건져 올려지는 물고기처럼 낚싯줄에 아슬아슬 매달려 곡예하듯 한주와 한 달을 보낸다. 


규칙적이고 정기적이고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것의 가치를 나는 여기서 배우는 것 같다. 아직,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나는 그 배움을 신적인 한 존재로 인해 모여드는 수없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얻는다. 어제 세례를 받은 한 분이 하느님을 위한 편지에 이렇게 썼다고 전해 들었다. 하느님께서 나의 십자가를 들어주는 줄 알고 성당에 왔더니 내것은 내가 들고 뒤따르는 건지 이제 알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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