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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ss Sep 01. 2017

Phobia  

개와 전화공포증

전화벨이 울린다.

요즘 최대한으로 주위 자극을 줄이고 있기 때문에 

정확히 '나'를 타겟으로 한, 상냥한 의도를 실은 전화는 올 확률이 무척 적다. 


나는 이름 없이 번호만 찍혀서 요란스레 번쩍거리는 그 화면을

손에 쥔 채로 바라보았다. 

떠나는 버스 뒷문을 주먹으로 마구치는 급박함이나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실으려 문이 열리는 순간 뒤에서 밀어 재끼는 손들의 무례함처럼

의미없는 번호는 나를 재촉하며 손가락으로 밀어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Phobia

공포증은 불안이라는 감정을 전제로 하는데, 

그 불안의 정도가 내 자신의 안위를 해치는지 혹은 

불안으로 인한 내외부의 반응이 타인이나 주위 상황에서 수용 가능한 정도인지 여부에 따라 

마치 크레센도처럼 점점 '증상'을 향해 다가가는 느낌이 든다. 

 

나는 개에 대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십년 전 중학생 남자 아이를 맡아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그 집에는 하얀색 몸집이 작지 않은 덕구가 있었다. 예쁘장한 얼굴에 단정한 몸가짐을 하고 있어 보였지만, 이전 주인에게 상처를 받았다며 과외하는 학생의 어머니는 '아가'라는 애칭으로 덕구를 자꾸만 안쓰러운 애라고 했다. 내가 보기엔 사춘기 아들의 반항으로 인한 서운함과 배신의 일종을 '아가'인 개에게 부가적인 애착 행위를 행사하며 덜어내는 듯 하였다. 

  

거기다 대고 나는 웅얼웅얼 "제가 개를 참 예뻐하는데요, 무서워해요 많이..." 


'왜 이렇게 사랑스런 존재를 무서워하냐며, 네 존재가 우리 아가한테 더 무섭겠다' 식의 얼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그래요, 그럼 선생님 오실땐 안고 있어야겠네." 말씀하신 이후로 나는 마음을 조금 놓았으나, 대학생 과외 선생 주제에 이 집 둘째 자식을 불편하게 만드는 나의 존재도 내가 참 부끄러워 일을 못하겠다고 말해야지 생각하던 찰나,

우리의 덕구는 꽉 잡을 의도가 없어 애당초 부드럽기만 한 어머님의 팔뚝을 자연스레 넘어와 내 다리로 돌진했고 

덕구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도 내 머리와는 전혀 상관없이

천장이 날라가라, 악! 소리를 지르며 무릎을 굽혀 다리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 5초 후, 나는 연한 색의 청바지를 뚫고 비치는 핏방울들을 보았고 

모두가 당황하여 정지한 사이 약간의 얼얼함을 느끼기 시작하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일단 소독된 다리를 부여잡고 덕구의 집을 나섰다.


저 들에게는 사랑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주고 받는 대상에게 

나는 아무 이유 없이 공포를 느끼고 있다.

당황함, 무서움, 서운함, 떨림 등등 갖가지 감정과 기분, 정서 상태에 직면하여 경황이 없던 시간들을 앞서 두고 나니 덕구에게는 다리를 뒤로 젖혔던 나의 행동이 순간 공포였을 것이고 두려움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예전에 발로 채였거나 사람에게 맞았던 기억이 있을 수도 있고, 이를 드러내고 이빨을 사용한 것은 공포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던 방위였겠다 생각하니 

나는 우리 두 미약한 존재때문에 조금 더 슬퍼졌고

공명할 수 없는 양 끝의 간극이 조금 더 크게 느껴졌다. 


의식주 만큼이나 필수적인 지위로 부상한 핸드폰 앞에서도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마음의 준비와 바람이 반영되지 않은 '아무' 때에 울리는 것이 부담스럽고,

표정 없이 선에 일렬로 서서 기차처럼 밀어붙이는 그 단어들이 매우 낯설다. 

우리는 꼬불탱이 선을 사이에 두거나 이제는 그 선 조차 볼 수 없이 

허공에 대고 이야기한다. 오래 만나왔던 너의 눈이나 손짓, 입꼬리를 나는 상상하지만 충분치 않고

너가 나의 말만 듣고 마음은 이해하지 못할까봐 

괜시리 또박또박 말하는 와중에 우리의 대화는 건조해진다.

분명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소리내어 웃기도 했지만

쨍한 햇볕 아래 푸석해진 머릿결처럼 바스락거리는 그 느낌으로 통화를 마친다.


두 번의 무응답에도 꿋꿋이 나를 푸쉬 푸쉬 압박하는 핸드폰 얼굴을 손가락으로 밀어버렸다.

"왜 전화안받아" 

이 말이 참 많이 싫다. 

나는 나의 시간 안에서 너와 떨어져 있는 공간을 하찮게나마 느끼고 있었다. 


두려운 것들이 무뎌질 만큼 너무 많은 지금에

나만의 저 두 포비아가 다행이다 싶다가도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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