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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ss Aug 31. 2017

쓰면서 사는 일들


에너지를 쓰다


멍하니 컴퓨터를 보고 있는데 

오른쪽 귀에서 삐이-하는 소리가 나면서 양쪽 귀가 멍해졌다.

2,3초 동안의 불투명한 정적이 흐른후 원래의 소음이 어렴풋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삼사십분쯤 지났나, 

삼각근 후연을 시작으로 이삼두근, 팔꿈치 쪽으로 근막이 술기운을 머금은 듯 늘어지기 시작했다.

나의 몸은 초침조차 지루하게 흘러가는 일요일 세시와도 같았다.

일요일 오전은 복실복실한 이불 속에서 뜬 눈과 감긴 몸을 느릿느릿 뒤척이는 때이며

일요일 점심은 스팸과 소세지, 당면을 넣은 김치부대찌개에 흰 쌀밥, 갓 뜯은 김으로 빵빵한 가스를 복부에 채워넣는 때이다.

이 후 나는 늘 일주일의 시간 중 가장 지루하면서도 월요일의 조임을 몸이 스스로 알아차리고 마는 

오후 세시의 시간을 어쩔 수 없이 맞이한다.

오른쪽 귀와 왼쪽 귀가 번갈아 멍해지고, 어느 날은 양쪽에서 모두 소리가 나거나 함께 멍해지는 날들이

이 후 계속 되었다. 연속으로 나타나는 날들이 있었고, 이삼일을 건너뛰고 증상이 나타나는 날들도 있었다. 

팔에 힘이 빠지는 느낌은 삼일에 한번 정도 나타났는데, 이건 느낌이라고 하기에 순간적이지 않았다.

아침에 그러기 시작하면 밤까지 지속되었다. 그 날은 마치 어깨에 버드나무 가지를 달고 있는 듯 했다.

며칠 뒤 정오를 막 넘긴 때쯤 되었나, 10시반부터 시작된 실랑이를 대충 마무리하고 책상에 앉아있는데

가슴 한가운데 뼈 있는 부분이 콕콕 쑤시기 시작했다.


쿵  쾅  쿵 쾅 쿵쾅 쿵쿵쿵쿵 


두근거림이 나타났고, 기둥에 숨어 짝사랑하는 이를 쳐다보기라도 하는 듯 심장이 빠르게 뛰어

내 몸을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놀랄 정도였다.

가슴이 답답해져 주먹으로 두드리기도, 손으로 문지르기도 해보았다.

숨을 고르게 쉬는 것이 어려워 입을 열어 긴 한숨 내쉬기를 몇 번,

두근거림은 조금씩 잦아 들었고 귀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 번 나타나기 시작한 증상은 일터에 갈때마다 일정한 주기 없이 반복되었다.

증상은 매번 동일하지 않아 어느 날은 가슴 두근거림만 미세하게 있다 없다하였고

어느 날은 식은땀에 연신 가운을 입었다 벗었다 입었다 벗었다. 

하지만 이후 버드나무 가지를 어깨에 얹고 있는 느낌과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손이 파르르 떨림을 지켜보는 것은 계속이었다. 

더불어, 일어서면 양 다리가 땅으로 꺼질 것 같음이 추가되었다.

그 누구보다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집은 잠만 자는 곳이며 늘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늦잠, 낮잠 한번 없이

투쟁하듯 하루를 보내고 다음 하루를 준비하던 사람이었다.

낯선 사람들과 소음 속에서 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세반고리, 달팽이관, 고막, 흉근, 요골신경, 정중신경, 심근 등이 먼저 경종을 울린 이후부터

아파트 건물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면서 보이는 사람들과 차가 두렵게 느껴졌다.

지하철, 마트, 백화점 등은 이런 증상을 최고치로 만드는 곳이었고 

나는 이제 집 문을 나가기 전 이어폰을 끼고 무슨 음악이든 소리를 최고치로 올려야 

그나마 덜 두려워졌다.


안되겠다 싶었다.

안되겠다 싶어서 

일하는 시간보다 한 시간 더 문을 열어두는 병원을 검색했고

나는 십년이 넘는 극심한 불면증에도 가기 겁이나 망설였던 정신과에 발길을 들였다.

의사는 우울증, 공황장애, 그리고 불면 등을 말하였고 

'번아웃 증후군'을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35년동안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버린 것 같다고 했고

약 일주일치와 함께 상담치료와 휴식을 권했다. 



잠이 쓰다


주어진 약은 항불안제와 수면제 등이었다. 

제일 처음 먹은 약은 취침전이라고 적혀있던 봉투의 반알 두개였는데,

아무래도 입면을 도와주는 약, 그리고 중간에 각성되는 것을 완화하는 약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간 그렇게 잠을 못 이루었어도 양약의 힘까지 빌리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몸과 마음이 이렇게 바닥을 치고 나니 잠이라도 자야겠다 싶었고

조금 두근대는 마음으로 반알의 두 약을 꿀꺽 삼켰다. 

잠은 바로 오는 것이 아니었다. 30분 정도 아니 40분 정도 되었을까,

나는 잠을 기다리는 의식을 취하듯 가슴에 두 손을 얹은채로 눈을 감고 바로 누워있었고

아마 대략 그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잠이 들은 것 같았다. 시계를 본 것은 아니었으므로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승려의 입정을 묘사했던 부분같기도 하여 약간 두렵기도 하였다. 

이제 정말 휴식 모드이므로, 알람은 켜지 않은채 아침을 맞이하였는데 

그 아침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즈음에서 내 존재가 흐물거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왠지 모르게, 수영을 하다 소독약품 내음새가 코로 빨려 들어왔다 나가듯 쓰라린 잠을 잤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다


얼얼한 잠을 자고난 후 나는 무작정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두툼하나 하얗게 비어있는 몰스킨 노트를 펴고 손가는 대로 줄줄.

체력은 소진하였으나 타지 못한 마음은 일렬로 줄을 서가며 흰 바닥을 조심스레 채우고 있었다.

글을 쓰는 것은 마음의 잔재를 태워버리는 일 같다. 

남아있는 미련, 때로는 과한 흥분처럼 적정선을 위아래로 넘어선 감정들이 나를 흔들어버릴때 

꽉 차버린 마음 주머니를 부여잡고 산을 오르듯 하루를 살아낸다. 

마음 주머니를 탈탈 털어내어 가벼이 하려 했더니

나는 쓰라린 마음을 거칠게 적어내린 속상한 나와 마주보게 되었다. 

글을 쓰는 것의 최대 난관은 

완성된 시점과 지금의 감정 사이 간극이 

내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지 여부인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나는 비교적 일정한 정도의 감정을 늘 지니고 있는 사람으로서 

왠지 단단한 신념의 소유자인 것처럼 느껴지나 

나는 저자가 나인 이번의 글을 보며 

하염없이 아래로 기어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기를 원했다. 

소나기같은 한 때의 강렬함이길 원했다.


단숨에 과일을 영글어 만들어 버릴 것 같은 햇살에도

나는 아직 끝이 보이지 않은 장마철에 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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