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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ss Nov 14. 2017

우울증

병원을 처음 갈 때, 이 곳에까지 발걸음을 떼게 만든 몇 가지의 증상을 머릿속에서 나열했다. 

쉼표를 찍어가며.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배고픔을 느끼는 것이 싫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음식이 몸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 같다.

몸이 땅으로 꺼질 것 같다.

팔다리 힘이 없다. 

걷고 숨 쉬는 것이 귀찮다.

머리가 아프다.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숨을 쉬면서 하는 모든 일이 쓸모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꾸만 죄책감이 든다.

가슴의 두근거림을 느끼다가, 손만 대도 쓰라리듯 뻐근하듯 아프다가, 자욱한 안개가 낀 것처럼 답답하다.

무엇도 하기 싫고 무엇을 해도 잘할 수 없을 것 같다.


약은 많은 것을 덜어주지만 원치 않는 것을 엎어주기도 한다. 치료라고 부르는 것들을 시작하면서 시험 삼아 갖가지 종류의 약들이 입으로 들어가고 흡수되면서 어지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몸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약간 멍하기도 하고 입이 바싹바싹 마르기도 한다. 잠을 자게 하는 약이라고 해서 먹고 있다 보면 전자레인지 취소 버튼을 누른 것처럼 급작스럽게 정신을 잃고 시체가 된다. 그 사이 호전이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아픈 것처럼 보이지 않는 범위 안에 '간혹' 들어와 있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정도이다.


왜 이상하다고 생각하냐면 부정적 감정들이 나의 습관으로 너무 오래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아픔은 시작으로부터 자꾸만 멀어질수록 존재감을 늘려간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은 나한테는 적용되지 않는다. 지금 내 오른쪽 발바닥 밑에 몇 년 전부터 증식을 거듭하고 있는 굳은살처럼, 떼어내면 상처가 되어 피를 내고 또다시 꾸역꾸역 바닥과 밀착시켜 디디다 보면 더 단단해져 있는 그 모습과 내 마음이 닮아 있다. 우울함이 반복되는 것은 그것이 나의 존재를 실감하게 해주는 메인이었기 때문이다.  


상담을 두 번 정도 하였다. 나는 말보다 먼저 나오는 눈물을 연신 휴지로 닦아내느라 더 진이 빠졌다. 50분이 땡 하면 대화를 끊어야 하는 방 안에서 나올 때 나를 살리고 죽이는 이런 힘든 경험들을 털어냈다기보다 결국 내가 고스란히 또 짊어지고 가야 하는구나, 부랴 부랴 한 짐 어깨에 들쳐 매고 하나 팔아보겠다고 나왔건만 다시 같은 무게를 싸고 있는 상인처럼, 좌절만을 더 휘감고 돌아왔다.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약과 상담보다도 우선 되어야 할 것은 일상의 루틴을 회복하는 것이라 한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산책을 하고 잠을 자는 것의 회복. 희망과 행복이라는 단어를 믿지 않는 어른이 되어 오늘도 약을 이기고 잠을 설치며 세상 모든 고뇌를 짐 진 듯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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