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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ss Oct 11. 2020

나는 또 꽁꽁 얼겠구나


코로나로 답답하고 지친 날이 계속된다.

그런데 코로나 전에도 답답하고 지친 날은 여전했다.

다른 점은 코로나 이후의 지침, 피로감, 피폐 감 이런 것들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는 것을 좋아하고 매일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기뻤다. 하지만 그런 것도 중간중간 쉬어가야 제 맛으로 기쁘다. 그래서 가끔은 게으름을 선택했고 지루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고 나면 이것저것 들쑤시고 다니는 일이 다시 신났다.

이제는 마스크도 익숙해지고 오히려 벗는 게 불편할 정도가 되었다.

코와 입을 가려서인지 콧물도 덜 나고 환절기마다 한 번씩 앓고 지나가던 목감기도 잠잠하다.

이런 것들은 이전보다 더 낫다.

그런데 무언가 새로운 것을 기약할 수 없고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지금 하고 싶은 일들이 혹여라도 피해가 되고 악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늘 잔잔하게 함께 한다. 즐거움, 설렘을 선택할 수도 없지만 선택하지도 않은 게으름, 무기력함이 어제도 그제도 내일도 모레도 한 달 뒤에도 여전할 거다.

이런 생각들이 밥을 먹고 돈을 쓰고 티브이를 보고 다리로 걷는 것을 즐겁지 않게 한다.


통제할 수 없는 범위의 것들이 인생을 좌지우지한다.

고궁을 산책하다 해가 제일 쨍쨍해야 할 오후 두 시경에 으스스한 어스름이 잠깐 지는 것을 느끼면 가을이다, 쓸쓸하네, 곧 겨울이 오겠지, 호떡을 팔겠네, 크리스마스엔 스누피 엘피판을 틀어야지, 코트 하나 장만할까, 작은 내 차가 있어 다행이다. 약간이라도 즐거움이 묻어나는 상상이 꼬리를 물었는데

오늘은 그 그늘짐이 굉장히 반갑지 않았다.

또 가을이네. 더 추울 거고 나는 또 꽁꽁 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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