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미용실에 들어갔다. 작년 10월에 미용실을 방문하고 나서 1년 만이다. 이사하고 새 동네에서 미용실 개척은 꽤 힘든 일이었는데, 여기 사장님은 밝고 웃는 얼굴이 예쁘신 분이다. 네이버로 예약을 하고 갔지만 처음 가는 곳은 항상 어색하다.
“커트 예약하셨죠?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아... 머리카락 기부하려고요. 최대한 짧게 단발로 잘라주세요.”
“마음씨가 너무 예쁘시다”
“히흐히” (어색하면 꼭 히와 흐의 중간 발음으로 이렇게 웃는다.)
가느다란 고무줄을 이용해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었다. 싹둑 잘릴 줄 알았는데 머리숱이 많아서 삭삭삭삭삭삭 몇 번의 소리가 난 후에 잘린 머리카락이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몇 초 전까지 내 몸의 일부였는데, 떨어져 나가자마자 굉장히 이질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머리카락 묶음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나머지 머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어깨에 닿을 듯 말 듯 한 단발은 턱선 단발이 되었고 앞머리도 눈썹이 보이는 처피뱅을 처음으로 도전했다.
“머리카락 기부가 처음이세요?”
“네, 이건 노력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기부니까요.”
“그래도 인내심이 정말 많이 필요한 일이죠.”
대학생 때부터 머리카락 기부라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그땐 그냥 듣고 넘겨버렸다. 그러다가 작년에 우연히 유튜브에 뜬 기우쌤 영상에서 어린 남자아이가 기부를 위해 머리카락을 자르는 영상을 보고 ‘나도 해볼까?’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그리고 머리 길이가 가슴 정도에 다다를 때까지 미용실을 가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꽤 건전하게 살았는데 생각보다 머리가 빨리 자랐고, 2023년이 한 달 반 정도 남은 날 기부가 가능한 최소 길이인 25cm를 넘겨 바로 잘랐다. 머리카락이 길어질수록 머리를 감고 말리는 시간이 늘어나 그건 좀 귀찮았지만, 그 외에 노력하는 게 없으니 어려운 건 없었다. 펌과 염색도 하지 않아서 돈도 아꼈다는 생각에 기분도 좋았다.
내 머리카락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니 돈으로 후원하는 것과는 다른 뿌듯함과 이상함이 들었다. 그리고 인모가발이 그렇게 비싼지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지퍼백에 머리카락을 넣어 우체국 택배로 <어머나운동본부>에 보냈다. 그리고 보름이 지난 후 모발기부증서를 발급받았다.
지금의 머리 스타일은 아주 가볍고, 마음도 산뜻하다. 머리를 감고 말리는 시간도 훨씬 줄어서 만족스럽다. 지금부터 2년 정도 더 기르면 한 번 더 기부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당분간은 단발머리를 유지하고 다른 나눔의 방법을 찾아보려 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여러 형태로 존재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