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타깃과 플롯
"사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이야기에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강사가 말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의 시놉시스 과제가 제자리를 맴돌기 시작한 건.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당신이 어떤 일을 겪었느냐가 아니라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로운가입니다.
즉, 플롯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말이죠."
강사의 조언은 시나리오 워크숍 수강생 모두를 향해 던져진 것이었지만,
조급함으로 엉켜있던 나의 마음속 그물 때문이었을까.
강사의 말은 내 안에 걸려들어,
끊임없는 물음표의 파동을 일으켰다.
"내가 완성시키려던 나의 여행기 역시 오직 나에게만 특별한 소음에 불과했던 걸까?
이야기꾼들이 정해놓은 견고한 구조 없이는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하는 걸까?
그렇다면 결국 흥미를 끌지 못하는 이야기는 애초에 쓰일 가치조차 없는 걸까?
등등..."
종강 날까지도 카오스 상태인 내게 강사는 마지막으로 피드백을 남겼다.
"이만, 플롯으로 돌아오세요."
그러나 피드백은 물음표를 더 일렁이게 만들 뿐이었다.
"내가 돌아가야 할 플롯이란 게 뭐였더라?"
"애초에 내가 플롯에 도달했던 적이 있긴 했었나?"
이 물음표들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나는 시나리오 글쓰기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할 필요가 있었다.
도서관을 찾아 서가에 꽂힌 책들을 둘러봤다.
그러나 좀처럼 선뜻 손이 가질 않아서
"잠시 시나리오와 좀 거리를 둬 보지 뭐..."하고,
그 옆에 꽂힌 웹소설 작법서 한 권을 꺼내 펼쳤다.
책은 초장부터 웹소설 작가라는 직업의 냉혹한 수지타산을 나열했다.
승자독식인 웹소설계의 피라미드 구조와
희박한 성공 확률의 명확한 수치를 언급하며,
작가는 지금이라도 꿈을 접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 모른다는 서늘한 회유의 메시지를 건네고 있었다.
그 뒷장을 넘기니, 그럼에도 웹소설 글쓰기를 계속하려는
무모한 망생이들을 위한 방안 하나를 제시하고 있었는데,
바로 ‘돈이 되는 글쓰기’였다.
'수입'이란 단순히 돈을 넘어 망생이를 작가로 탈바꿈시키고
창작을 지속하게 하는 '생명줄'이라는...
"맞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아닌가?"
당연한 이치를 화끈하게 말하는 작가의 화법에,
나는 금세 라포가 형성되어, 어느새 간절히 묻고 있었다.
"어떻게 얼마나 벌 수 있게 해 줄 건데요? 나 돈 필요해요. 정말 많이 필요해요..."
드라마 <가을동화>의 은서라도 된 양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챕터를 넘겼다.
이어진 챕터부터 글쓰기 노하우들이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웹소설과 영화 시나리오는 장르적 차이가 존재했으나,
신기하게도 작법의 근간은 많이 닮아 있었다.
모든 영화 장르를 아우르는 시나리오부터 소설, 웹툰, 동화까지
모든 스토리텔링을 관통하는 글쓰기 테크닉의 정수를 그곳에서 발견한 기분이었다.
똘똘한 글 하나만 있으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도전했던 여행기를 끝내지 못했던 이유도 결국 다 구조와 플롯 문제였던가...
시나리오 글쓰기 구조는 워크숍 첫 시간에도 배웠었다.
5단 구성은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걸 알려주며 강사는
간단해 보이지만 이것에 충실하게 영화를 만들기는 간단치 않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꽤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공식도 다 나와 있는데 거기에 입력값만 대입하면 정답이 나오는 것 아닌가?"
사실 워크숍 내내 나는 나름대로
온 힘을 다해 구조적 글쓰기에 다가가려 애썼었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과제로 제출했던 늘 같은 자리를 맴돌던 허술하기 짝이 없던 글들이
실은 플롯에 매달려 온종일 시간을 갈아 넣은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플롯에 집중하면 할수록
나의 장점만 다 깎여 나가, 오도 가도 못하는 틀에 갇혀버리는 느낌만 들었다.
공식을 배워서 다 될 일이었다면
수포자가 되는 일도 없었겠지 않았는가...
*수포자 : 수학을 포기한 사람
집착적인 '구조적 글쓰기'의 도전 끝에 다다른 것은 성취감이 아닌
불가능한 일에 나의 시간을 헛되이 쏟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와 혼란이었다.
플롯의 대가라는 영화감독들의 작품만 보아도,
내가 암만 머리를 쥐어짜도 나는 평생 그들의 수려한 플롯에는
발톱의 때만큼도 따라갈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만 아프게 각인될 뿐이었다.
아니 거창하게 거장들까지 들먹일 것 없이,
손 안의 스마트폰만 들여다봐도 그랬다.
AI창에 짧은 프롬프트 몇 마디만 입력하면
순식간에 나보다 훨씬 매끄러운 플롯을 뽑아내지 않는가...
따라서 워크숍 내내, 나는 선택해야 했다.
온종일 매달려도 진전이 없는 일에 집착하는
글쓰기에 재능 없는 얼간이로 비치거나,
단지 과제 제출 시간을 코앞에 두고
대충 끄적이느라 플롯을 놓친 게으름뱅이로 비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