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공중도시를 소환하며
페루 마추픽추는 한달 정도되는 내 남미 여행의 방점이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에서 시작하여 남미를 시계방향으로 돌며 듣기만 해도 가슴 떨리는 이과수 폭포, 모레노 빙하, 토레스 델 파이네, 그리고 우유니를 거쳐 드디어 마추픽추를 만나게 된 것이다. 마추픽추도 역시 쉽게 만날 수 있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우아하게 공항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면 뚝딱 도착하여 만나게 되는 그런 곳은 결코 아니란말이다. 쿠스코에서 하루 일찍 출발하여 피삭, 오얀따이땀보를 거쳐 페루 레일을 탔고 어두워진 시각에 '아구아스 깔리엔테스'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을 했다. 마추픽추를 만나는 날 날씨가 맑기를 기도하는 것은 필수. 옆사람 얼굴도 분간이 안되는 아주 캄캄한 시각에 일어나 버스를 탔고 묘한 흥분감으로 일렁이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마추픽추 공중도시에 올랐다.
새벽에 마추픽추를 올라야만 하는 이유
마추픽추와의 첫만남은 신비 그 자체였다. 새벽안개가 짙게 내려 한치 앞이 안보이더니 갑자기 안개가 걷히며 마추픽추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신선이 당장이라도 내려올듯한 풍경에 정신을 홀리고 만다. 사람을 마음을 끌어당기는 마력을 지닌 풍경이었다. 이 풍경을 내 눈안에 담으려고 지구를 반바퀴를 돌아서, 그리고 남미대륙을 또 반바퀴를 돌아서 지금 내가 이자리에 서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는 그리고 글로는 다 표현해낼수 없는 정말 보석처럼 빛나는 풍경이었다. 사실 사진으로 너무나 많이 보아왔고 남미를 여행하며 이미 너무 멋진 풍경들을 접했기에 마추픽추에 대해서 어쩌면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사진으로 본 풍경과 똑 같겠지...라는 마음이었다. 그렇다. 사진으로 본 풍경과 어쩌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았다. 하지만 내 심장에 잔잔히 찌르듯 스며드는 감동은 사진으로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무언가 울컥한 것이 깊은 심연에서 올라오는 듯 마추픽추의 모습은 쓸쓸하고 처연하고 애달팠다
마추픽추는 1452년 그러니까 15세기, 해발고도 2400미터에 지어진 요새도시라고 한다. 마추(machu)는 잉카인들의 언어 케츄아어로 '나이든, 오래된'이란 뜻이고 픽추(picchu)는 '산, 봉우리'라는 뜻. 그러니까 마추픽추는 '나이든 봉우리'라는 의미가 된다.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이 마추픽추 역시 잉카의 위대한 왕 파차쿠텍왕의 소유로 처음 지어졌다고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이 스페인군들과의 접접 혹은 방어하기 위한 요새였는지, 아니면 왕가의 여름 별장정도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선 추정만이 있을뿐 아무것도 확실하지가 않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1452년 지어진 이 도시가 그로부터 100년후 갑자기 버려졌다. 잉카인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도시가 된 것이다. '왜 버려졌는가'라는 것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스페인 군대에 의해 퍼뜨려진 천연두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죽었을거라는 의견과 아니면 스페인 군대가 밀고 들어와 어쩔수 없었던 이곳에 살던 잉카인들이 걸음이 느린 노인과 여자들은 다 죽이고 건장한 남자들만 어디론가 도망을 갔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아까 보았던 파숫군의 전망대 뒷편에서는 마추픽추 발견 당시 여자들의 뼈가 엄청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진짜 남자들이 자신들만 살려고 여자들을 죽인것인지...아니면 이 여자들은 혹시 제물로 바쳐진 여자들은 아니었는지... 지금으로선 그 해답을 찾을 길이 없다. 잉카제국에는 글이 없었기에 이 모든 이야기를 수수께끼로 남기며 역사라는 긴 시간속에 묻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마추픽추는 그 쓸쓸하고 처연하고 애달픔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잉카인들이 모두 떠난 이 사라진 공중도시는 아무도 모른채 영원히 역사속에 묻힐 뻔 했는데, 미국인 고고학자이자 탐험가인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저 밑에 보이는 우루밤바강을 따라서 내려온 후 깍아지를 듯한 절벽을 타고 올라와 이곳 마추픽추를 발견하게 되었다는데...처음 발견했을 당시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제 마지막 남은 새벽의 잔재인 안개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쓸쓸했던 새벽녘 마추픽추를 보내고 이제 그 공중도시에 터덜터덜 걸어 들어갔다. 제일 먼저 라마들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역시 생명체는 아름답다. 갑자기 쓸쓸했던 공중도시에 생명력이 불어넣어진 느낌이었다. 제일 맘에 드는 아이에게 풀을 먹이고^^
쩅한 햇살이 올라오고 사람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는 마추픽추는 새벽녁의 마추픽추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밝고 생기가 넘치고 세게 어느 문화 유적지에서 뒤지지 않는 북적거림이 존재했다.
위 사진속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마추픽추 유적지 중 정말 중요한 장소다. 페루 가이드들이 정말 공들여 설명하는 곳. 창문이 세개가 있는 신전. 이곳은 잉카의 황제인 망코 카팍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깃들여 있는 곳이다. 그리고 산 봉우리 바로 아래 있는, 마추픽추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은 바로 천문대로 추정되는 인티와타나[Intihuatana]. 인티와타나 주변으로 계단식 경작지가 아찔하게 펼쳐져 있다.
새벽녘에 올라와 마추픽추 고대 도시를 내려다 볼때는 몰랐는데 막상 고대도시 안으로 들어오니 꽤 넓었다. 1월이지만 그늘이 거의 없어서 내려쬐는 햇빛이 따갑게 느껴졌다. 딱히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모른다하더라도 그 당시의 숨결이 느껴지며 무언가 마음 한켠이 훈훈해지는 느낌.
어슴프레한 시간에 와서 점심을 훌쩍 넘긴 시간까지 무언가에 홀린듯 정말 잘 돌아다녔다. 슬슬 이제는 가야하지 않을까 싶은 순간이 오니 급 허기가 졌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마추픽추에 홀려 배고픔을 잠시 잊은 걸보니 정말 마추픽추 대단한가보다.
명.불.허.전
역시 마추픽추의 명성은 헛되이 퍼진것이 아니었다.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엄청난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매일 방문하니 오랜세월을 간신히 견뎌온 공중도시가 앞으로 계속 무사할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마추픽추에서 내려와 다시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로 돌아왔다. 페루레일을 타고 쿠스코로 컴백. 짧은 1박 2일의 여행이지만 긴 여운을 남겨준다. 심지어 지금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