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안동 우함양, 함양 개평한옥마을로 시간여행 떠나자!

함양 일주일살기

by 별나라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는 100여 년이 넘는 크고 작은 한옥 60여 채가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 있다. 바로 개평한옥마을이다.

'좌안동 우함양'이란 수식어에서 '우함양'이 바로 이곳 개평마을을 가리킨다. 이 말은 조선시대 성리학의 두 축을 표현한 것으로, 왼쪽의 안동과 오른쪽의 함양이 조선 성리학을 이끌어간 대표적인 지역임을 의미한다고 한다. 안동이 퇴계 이황을 중심으로 한 영남학파의 본거지라면, 함양은 조선조 오현 중 한 분인 일두 정여창을 필두로 한 서울학파의 뿌리가 되는 곳이었다.

개평이란 내와 마을이 낄 '개(介)'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마을의 지형이 마치 자를 낄 '개(介)'닮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작은 개울 하나가 마을의 이름이 되고, 5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오는 역사의 물줄기가 된 것이다.

마을 곳곳에는 흙과 돌을 섞어 만든 돌담과 이끼가 낀 고풍스러운 기와를 인 고택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이 풍경은 단순히 아름다운 건축물의 집합이 아니라, 조선 성리학 500년 역사의 살아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유학자를 배출한 이 마을에는 일두 정여창 선생을 비롯하여 하동 정씨, 풍천 노씨, 그리고 초계 정씨 3개의 가문이 오래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솔송주 문화관

걷다보니 솔송주 문화관이 나타났다. 솔송주는 개평마을 하동 정씨 가문의 500여 년 전통 가양주인 송순주를 복원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조선 성종에게 진상될 정도로 명주였다. 함양 햅쌀(멥쌀·찹쌀), 지리산 청정 암반수, 봄에 채취한 솔잎과 늦봄 송순을 재료로 만들어 진 낮은 도수(13%)로 부드럽고 청아한 소나무 향과 깔끔한 단맛을 지녔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만찬주, 2018년 우즈베키스탄 국빈 만찬주로 선정된 품격 있는 술이기도 하다. 솔송주 문화관에서는 전통 방식의 술 제조 시연과 체험이 가능하다. 실제로도 한 잔 하러 들어가시는 분들이 꽤 있었는데 늦은 시간에 둘러보느라 시음은 하지 못했다.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택은 1987년 토지, 2003년 다모, 2017년 1박2일, 2018년 미스터 선샤인 등 수많은 드라마의 배경이 되기도 한 곳이다.

정여창(1450년 음력 5월 5일∼1504년 음력 4월 1일) 선생은 조선 전기의 문신, 성리학자로,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더불어 동방오현으로 불리며 문묘에 종사된 인물이다.

'일두'라는 호는 '한 마리의 좀벌레'라는 뜻으로, 책을 파먹는 벌레처럼 평생 학문에만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호' 하나에도 정여창 선생이 얼마나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일두 고택은 정여창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개평마을을 대표하는 고택인데,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지난 후에 후손들이 중건했다고 한다. 이는 정여창이 겪었던 시련과 무관하지 않다.

사랑채에서 바라 본 솟을 대문
일두고택 사랑채
사랑채와 석가산

사화(士禍)의 비극과 선비의 절개

정여창의 삶은 조선 전기 사림파의 비극적 운명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무오사화․갑자사화로 유배와 죽음, 부관참시까지 우환이 이어졌다. 1498년 무오사화 때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되었고, 1504년 갑자사화 때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음에도 불구하고 부관참시(剖棺斬屍)라는 극형을 당했다.

부관참시는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참수하는 조선시대 최고의 능욕형이었다. 후덜덜...꼭 이렇게까지 했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선생이 죽은 후에도 이런 형벌을 받은 것은 그의 학문과 사상이 얼마나 당시 권력층에게 위협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무오사화․갑자사화로 유배와 죽음, 부관참시까지 우환이 이어졌으니 당시 집안이 얼마나 풍비박산이 났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으며, 또한 집안을 쉽게 재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여창 선생의 생가터에 후손들에 의해 중건된(1574년) 현재 남아 있는 사랑채(약 1843년)와 안채(약 1690년 중건)는 조선 후기 다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문간채, 사랑채, 안채, 곳간채, 사당 등 ‘ㅁ’자형 배치로 이루어진 경남 대표 상류층 한옥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랑채는 안쪽보다 약 2m 높게 지어져, 입구에서 내부를 쉽게 볼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앞마당에 조성된 석가산 정원과 고즈넉한 고목(소나무, 잣나무)이 어우러져, 선비정신과 품격을 느끼게 한다.

정말 모든 것이 어우러져 고고한 선비의 품격이 풍겨나오는 곳이다.


안사랑채(우)


사랑채에서 이어지는 중문으로 나가면 안사랑채가 나오고 안사랑채를 지나 다시 문을 열고 나가면 드디어 '안채'가 나온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우물인데, 과거엔 마을 내 가옥에 우물을 파는 것이 금기였지만,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구역이라고 전해진다.

안채는 남향으로 길게 뻗은 ‘一자형’ 평면 구조로, 폐쇄적이지 않고 밝고 환한 공간 구성이다. 안채 좌측에는 아래채가, 뒤편으로는 별당·안사랑채·가묘(조상을 모시는 사당)가 함께 자리하고 있어 안채는 단순 생활 공간을 넘어 가족과 후손을 지탱하는 정체적 중심축 역할을 했다고 한다.

안채에 있는 우물


일두 고택을 둘러보고 나오니 함양 개평마을 안내소가 나왔다. 그리고 그 앞에 큰 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이 시는 정여창 선생이 유배되던 중 안령 고개에서 읊은 시문을 새긴 의미 깊은 유물이라고 한다.



안령대풍(鞍嶺待風)


待風風不至 바람불기를 기다리나 바람을 불지 않고

浮雲蔽靑天 뜬 구름만 푸른 하늘을 가로막고 있구나

何日涼飆發 언제쯤에 시원한 회오리바람이 불어와서

掃却群陰更見天 온갖 음기를 날려 보내고 푸른 하늘을 다시 보려나


바람은 정여창 선생의 절개와 의로움, 푸른 하늘은 자유, 명예 회복, 정의로운 조정을 의미한다. 정여창 선생은 유배를 앞두고, 안령고개에 서서 ‘정의가 회전하는 날’을 갈망하며 이 시를 남겼다고 한다.


개평한옥마을 안내소(좌). 살구나무

세 가문이 뿌리내린 전통의 터전

현재 개평마을에는 함양 일두고택을 비롯하여 함양 오담고택, 함양 개평리 하동정씨 고가, 함양 노참판댁 고가 등이 있어 조선시대 양반 가옥의 다양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함양 풍천 노씨 대종가는 조선 세조때에 청백리로 명성이 높던 노숙동이 처가인 함양으로 이사를 오면서 지은 한옥 고택으로, 각 가문마다 고유한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종가는 안채와 사랑채가 나란히 배치된 '-'자형 평면 구조를 띠며, 안채 뒤편에 사당, 대문채, 곳간, 아래채 등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조선 후기 상류층 가옥이다.


능소화와 앵두나무가 한창이다
풍천노씨 대종가

마을 곳곳에 스며든 역사의 흔적

개평한옥마을을 걸으며 만나는 것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다. 일부 가옥들은 지금도 누군가 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들어가 보기가 조심스럽다. 하지만 또 대문이 활짝 열려있기도 해서 안을 기웃대기고 했고.

어찌되었건 함양 개평 한옥마을은 500년이 넘는 오랜 역사와 더불어 지은 지 100년이 넘은 한옥이 잘 보존된 전통한옥마을로 「도시와 농어촌 간의 교류촉진에 관한 법률」5조에 의해 2013년 6월 18일 전통음식 체험 마을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현재 방문객들은 한옥에서의 숙박과 마을회관과 광장에서 전통음식 만들기 및 전래놀이 체험이 가능하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것을 넘어서 현재의 삶 속에서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개평한옥마을을 걷는 것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시간여행이다. 500년 전 일두 정여창이 이 마을에서 태어나 학문에 정진했던 그 시간, 사화의 광풍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선비정신, 그리고 그 정신을 계승하여 오늘날까지 마을을 지켜온 후손들의 노력이 모두 이곳에 스며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나는 개울 소리부터 고택 마당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까지, 모든 것이 역사의 메아리다.

특히 초여름 뜨거운 오후, 처마 끝에 심어진 살구나에서 살구가 후두둑 떨어지는 보습을 보면, 시간의 무게와 전통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ㅎㅎ)

그나저마 이날 허락을 받고 주운 살구는 이제까지 살면서 먹어보았던 살구 중 가장 달고 진했다.

아, 살구가 이런 맛이구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허락은 개평마을 안내소에서 받았다~~ㅎㅎ) 그리고 개평한옥마을에는 앵두나무가 많았다. 앵두가 새빨갛게 익어가고 있는데 한 그루에 그렇게나 많이 매달려 있다.

아무도 따주지 않아 곧 땅으로 떨어질 것 같은 뜨거운 태양 아래 새빨간 앵두.

만약 내가 이곳에 살았다면 앞으로 며칠 간은 앵두를 따느라 정신 없었을거 같다.


함양 개평한옥마을로의 시간여행, 의미있고 멋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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