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여행
합천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천년 고찰 연호사는 오랜 역사와 설화를 간직한 절이다.
합천읍에서 남쪽으로 3km. 황강이 유유히 흘러가는 강변 절벽 아래, 연호사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뒤로는 황우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앞으로는 맑은 황강물이 끊임없이 흘러가는, 지금은 그저 적막감마저 감도는 고즈넉한 절이다.
하지만 이곳은 그저 조용한 아름다운 산사가 아니다. 천삼백여 년 전,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꾼 비극이 시작된 곳이며, 한 아버지의 깊은 슬픔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황우산과 황강 사이 가파른 벼랑에 위태롭게 자리잡은 연호사에서는 보통의 사찰에서 느낄 수 있는 안정감과 평화로움이 결여되어 있다. 절이 위치하기에 좋은 곳은 아니나 마치 반드시 이곳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기 642년 8월, 백제 의자왕의 장군 윤충이 이끄는 대군은 바로 이곳 신라의 요충지 대야성을 공격했다. 대야성은 지금의 합천 일대를 가리키는 말로, 신라에게는 낙동강 서쪽을 방어하는 핵심 거점이었던 곳이다. 당시 대야성 성주 김품석은 용맹하게 맞섰지만, 부하 검일의 배반으로 대야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김품석은 김춘추의 사위였고, 그의 아내는 김춘추의 딸 고타소(古陀炤)였다. 성이 함락되자 김품석과 그의 아내이자 김춘추의 딸 고타소랑은 신라 장병 2천여 명과 더불어 목숨을 잃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멀리 서라벌에 있던 김춘추에게 이 비보가 전해졌다. 사랑하는 딸과 사위의 죽음을 들은 김춘추는 사람이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깊은 슬픔에 잠겼다고 사서는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김춘추는 단순히 슬퍼하기만 하지 않았다. 딸의 죽음을 계기로 백제를 반드시 멸망시키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신라의 생존을 위한 절박한 결의였다. 실제로 그는 훗날 무열왕이 되어 백제를 멸망시키고 한반도 통일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그리고 대야성 전투가 끝난 이듬해인 643년, 와우선사라는 승려가 전사한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한 사찰을 세웠다. 이것이 바로 연호사의 시작이라고 전해진다. 고타소랑과 신라 장병들의 넋을 달래고, 그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연호사라는 이름도 의미가 깊다고 한다. '연호(煙湖)'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호수'라는 뜻으로, 아마도 황강 물안개와 향불 연기가 어우러진 모습에서 따온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전쟁이 남긴 슬픈 사연이 깃들여서인지 연호사는 더없이 고요히 흐르는 황강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천삼백여 년이 흐른 지금, 연호사는 해인사의 말사로서 대웅전, 삼성각, 일주문 등이 차례로 들어서 있고, 최근에는 전통불교 전수관도 새로 건립되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인 조선시대 불화인 신중탱이 소장되어 있어 불교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높다. '신중탱'이란 말은 신중도(神衆圖) 라고도 불리며, 불교 사찰에서 본존불(불상)이나 부처님의 법(法)을 보호하거나 불교 의식 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들의 그림 혹은 탱화를 뜻한다.
이런 사연을 간직한 연호사를 떠나면 곧바로 함벽루(涵碧樓)를 만날 수 있다.
함벽루. 이름처럼 '푸른 물결을 품은 누각'이다. 고려 충숙왕 8년(1321)에 합주(현재의 합천) 지주사 김영돈이 세운 누각으로, 칠백여 년을 이곳에서 황강의 흐름을 내려다보고 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누각 처마의 물이 황강으로 떨어지도록 배치되었다고 한다. 가파른 벼랑에 지어져 있는 함벽루는 마치 강 위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강물이 불어날 때면 누각 아래까지 물이 차오르면서 정말로 물 위의 누각이 되기도 한다는데, 내가 여행했을 당시는 황강의 물이 많이 줄어서 그런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었다. 그저 고요하기만 했다. 정말 물멍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느낌이 든다.
함벽루를 세운 김영돈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강릉부녹사, 지공거, 정치도감판사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가 합주 즉 현재의 합천에서 지주사로 재직하던 시절은 원나라의 간섭 아래 고려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시기였다. 하지만 지방 관리들은 여전히 문화와 풍류를 사랑했고, 김영돈 역시 그런 문인 관료 중 한 사람이었다. 황강의 아름다운 경치에 매료된 그는 이곳에 누각을 세워 자연과 하나 되는 여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로 오며 이 누각을 많은 선비들이 찾았으며 함벽루의 경치나 풍류에 대한 시구 또는 찬사 등이 글귀 등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누각에 올라서면 황강의 모습보다도 먼저 누각 내부에 빼곡히 걸린 글귀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다 한문이라 내용을 알기 어려우나 AI의 도움으로 해석을 해보니 이곳의 경치를 찬사하는 글들이었다. 특히 퇴계 이황의 글이 그랬고 남명 조식은 오언절구의 시를 남겼는데 풍요나 무념(無念)의 경지, 자연 속에서 초연해짐 등을 주제로 한 글이다. 특히나 남명 조식 선생의 글은 글씨체가 특이하고 아름다워 다른 글들 속에서도 눈에 확 띄었다. 나만의 생각일 수도..... 저런 글씨체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함벽루 뒤 쪽에는 암벽들이 있었는데 그곳에 여러 글씨가 있었다. 노랑 바위에 쓰여진 글씨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라고 한다. 중요해서인지 철조망으로 보호되고 있었는데....좀 이쁜 보호막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황강과 함벽루 사이에는 강가를 따라 걸을 수 있는 길이 나 있었다. 비만 오지 않았다면 걷고 싶은 길이다. 그리고 그 인근에는 국궁장이 있었다. 한참을 국궁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겠더라. 생각보다 과녁이 멀고 화살이 너무 빨라 날아가는 날라가는 화살이 잘 보이지 않아 초초초집중을 해야만 그 스피드를 느낄 수 있다. 멋지다! 언제 나도 한번 쏘아보고 싶었다.
연호사에서 만난 천년 전 그날과 함벽루의 글씨들이 아련히 떠오르는, 과거로 잠시 돌아갔던 여행이었다. 지금은 그저 평범하고 조용한 곳이지만 격동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곳.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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