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여행
802년 신라 애장왕 3년에 순응과 이정이라는 두 스님이 계셨다.
순응대사가 가야산에서 수행하던 어느 날, 아름다운 부인이 나타났다.
"제가 몸이 많이 아픈데 대사님의 법력으로 치료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부탁을 했다. 순응대사는 정성껏 기도하며 치료를 해 주었다. 그러자 그 부인은 "저는 이 산의 신령인데, 은혜에 보답하고자 이곳에 절터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이런 전설을 가진 곳이 바로 합천 해인사다.
해인사로 들어가는 길은 싱그럽다 못해 생명력이 넘쳐 흐른다.
한참을 걷다보니 해인사 부도가 모여있는 구역이 나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들어오는 곳은 성철스님의 부도였다. 부도(浮屠, 浮圖)는 불교에서 고승(高僧)의 사리를 봉안하거나 그 스님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우는 탑을 말한다.
성철스님은 스물네 살에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해 수행 정진을 이어가셨고, 한국 근대 불교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선승(禪僧) 중 한 분이시다. “가야산 호랑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수행자로서의 엄격함과 기개가 컸고, 해인사 총림 방장 등을 역임하며 후학 양성과 불교 사상 정립에 많은 역할을 하셨다고 한다.
성철스님은 1993년 해인사에서 열반(入寂) 하셨고 그 이후 이곳에 부도가 생겼고 성철스님을 기리기 위한 참배 장소, 추모 장소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기분 좋은 숲길을 지나면 곧 해인사로 들어가는 첫번째 문인 일주문을 만날 수 있다. 이 문은 홍하문으로 불리는데 여기서 홍하는 붉은 노을을 뜻하는 말로 가야산 홍류동 계곡 또는 부처님의 붉은 광명을 뜻하는 불교적 표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이 문을 지나 두번째 문은 봉황문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맞배지뭉을 하고 있다. 내부에는 사천왕상이 봉안되어 있고 봉황문 정면에 걸린 '해인총림' 현판은 유당 정현복의 글씨이다. 문 안쪽에 '봉황문'이라고 쓰여진 현판을 발견할 수 있다.
해인사 경내로 들어서면 대적광전을 만나기 전 먼저 구광루를 볼 수 있다.
구광루는 과거에는 일반 신도나 중생들이 대적광전 법당 내부에 들어가기 힘들었을 때, 설법을 듣고 예불을 드릴 수 있는 누각 강당의 역할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는 구광루 하층은 홍보시설, 서점, 카페 등 방문객 대상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고, 상층은 설법이나 행사, 법회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친 다리를 쉬며 차 한 잔을 마시며 쉴 수 있는 곳.
해인사 주불전은 비로자나 부조처님을 본존으로 모시는 대적광전이다. 해인사가 통일신라시대 창건될 당시에는 큰 법당은 비로전이라는 이름의 2층 전각으로 지어졌다. 이후 조선시대에 대적광전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대적광전은 현재 조선시대 조성된 목조비로자나삼존불을 중심으로 그 사이에 석가모니불상과 지장보살상이 있다.
잔뜩 흐리던 날씨가 갑작스레 맑게 개어 새파란 하늘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해인사의 모습.
대적광전 옆에는 대비로전(大毘盧殿)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에는 꼭 봐야할 중요한 보물이 있다. 바로 두 개의 목조 비로자나불좌상이 나란히 봉안되어 있는데, 하나는 원래 법보전에 있던 비로자나불좌상, 또 하나는 대적광전에 있던 비로자나불좌상이며, 외형과 크기, 제작 양식이 매우 유사하다. 이 비로자나불좌상들은 통일신라 시대, 9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화재 예방 및 문화재 보존을 위해 비상 하강 시스템(지하 별실로 불상을 자동으로 이동시키는 구조)이 설치돼 있다는 사실이다. 불꽃 감지 센서가 작동하면 불상이 지하 약 6미터 깊이의 별실로 내려가고, 방화문 등으로 안전 구역이 확보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자, 이제 해인사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팔만대장경을 보러 올라가 본다.
팔만대장경은 불교 경전 전체를 목판에 새겨 놓은 것이다. '대장경'은 불교의 모든 가르침을 모은 책이고 '팔만'은 목판이 약 8만장이라는 뜻이다.
고려 시대(1236~1251년), 약 16년 동안 제작되었는데 당시 고려는 몽골(원나라)의 침입을 받고 있어서 나라와 백성의 재난을 막고,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부처님의 힘을 빌리고자 대장경을 새긴 것이라고 한다. 즉 쉽게 말하면 "불법(佛法)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자"는 신앙적, 국가적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하지만 삼엄한 경비아래 팔만대장경이 있는 전각 주변으로 안전띠가 설치되어 가까이서 보기가 힘든 상태였다. 나무 창살 너머로 간신히 볼 수 있는 정도.
장경판전은 왜 특별한가?
이러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전각이 바로 장경판전(藏經板殿)이다. 83,350장의 목판이 이곳에 고스란히 보관돼 있는데, 모두 4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법보전(法寶殿), 수다라장(修多羅藏), 동사간전, 서사간전인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2007)에 등재되어 있다.
즉 장경판전은 800년 넘게 목판을 보존해오고 있는데, 놀라운 점은 에어컨, 가습기 하나 없이도 지금까지 훼손 없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과학적 설계로 창문 위치, 지붕 구조, 통풍 방향 등이 다 계산돼 있어내부 온습도가 거의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고, 바닥에 숯, 소금, 황토 등을 깔아 습기 조절과 방충효과를 주었다고 한다.
그 결과 벌레도 거의 없고, 목판이 틀어지지도 않아서, 현대 기술이 깜짝 놀랄 정도로 전통과 과학이 조화된 건축이라고 한다.
방문 당시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 복각을 위한 전통각법 교육”이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출가 수행자 스님들이나 승려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전통 각자(刻字)/판각 기술 교육이 재가자(일반인)에게도 열린 것인데, 이 교육은 “판각학교” 형태이며, 전통 목판에 새기는 기술(각법)에 대해 기초부터 단계적으로 배우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교육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이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
전통기술을 보존하고 문화유산의 가치와 역사, 제작 방식 등을 이해하고 체험할 기회를 갖게 되는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인사 인근에 묵으면서 하루 두번 해인사를 다녀왔다. 주변의 가야산의 산세도 멋지고 비가 그친 파란 하늘이 인상적이었다. 공기도 너무 맑아 이곳에 한달 정도 산다면 너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이다.
가을이 깊어 단풍이 들면 더욱 이쁘다는 이곳 해인사. 문득 가을 풍경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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