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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나라 Dec 19. 2019

포드 V 페라리[부제, 슬픈 렌치]

연기천재 vs. 신들린 연기 [온통 스포일러]


영화 '포드 V 페라리'  -  스포일러 주의


위대한 쇼맨, 더 울버린을 만든 제임스 맨골드 감독에 맷 데이먼과 크리스찬 베일이 열연하는 스포츠카 레이싱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실화에 근거했다는 사실. 영화 러닝타임이 152분이라는 사실은 밤 9시 15분 영화를 보기 위해 입장할 때 처음 알았다.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끝나는 영화가 적잖이 부담스러웠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뎅.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이 1도없이 제목만 알고 꾸역꾸역 영화관에 자리를 잡았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옆자리 앞자리 두루두루 야금야금 자리가 차기 시작한다. 오....인기있나봐.


영화의 오프닝은 캐롤 쉘비역을 맡은 멧 데이머의 회상장면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르망에서의 레이싱을 상상을 하다 의사의 부름에 눈을 뜬다. 현실은 심장에 문제가 생겨 더이상 레이싱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 의사의 경고를 귓등으로 흘려보내는 듯 하지만 쉘비는 결국 레이싱을 포기하고 스포츠카 제작자로 전향하게 된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가. 쉘비는 켄 마일즈(크리스찬 베일)의 레이서로서의 능력을 간파한다. 켄 마일즈가 열받아서 쉘비에게 렌치를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쉘비는 재빠르게 렌치를 피했고 그 렌치를 주워 액자에 끼워 사무실에 걸어놓는다. 이때는 몰랐다. 이 렌치가 깊은 슬픔의 도구가 될지...


페라리 인수에 실패한 포드2세는 엔초 페라리의 악담에 그야말로 빡쳐 페라리를 눌러버릴 자동차를 만들라고 지시를 한다. 이 TF팀에 쉘비가 영입되고 쉘비는 켄을 스카웃한다. 이때부터 쉘비와 켄, 맷 데이먼과 크리스찬 베일. 정말 브로맨스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기나긴, 역사에 길이 남을, 레이싱의 문외한도 곧바로 1966년으로 소환해버리는, 르망 24의 우승을 향한 레이스가 시작된다



멋지다. 그냥 멋지다


페라리를 누르고 세상에서 가장 빠른 차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두 주인공의 열정과 몰입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단지 1등을 향한 탐욕스런 욕심이 아니라 순수에 가까운, 단지 가장 빠른 차를 만들고 가장 빠르게 몰고 싶다는 것.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1등을 빼앗겼을때에도 잠시 어안이 벙벙했지만 바로 뒤돌아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켄이 원했던 건 1등의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라 자신이 진정 최고의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날 레이싱을 본 사람은 누구든지 최고의 레이서는 켄 마일즈라는 것을 아니까. 그래서 쿨하게 돌아서며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GT40을 더 개선시킬 수 있는 방안을 자연스레 논의한 것이다. 멋졌다. 너무 멋졌다. 저런 순간에 빼앗긴 일등에 대해 열폭해서 깽판치지 않고 쿨하게 돌아설 수 있음이.



멋진 투샷



르망 24에 출전한 GT40



연기천재 vs. 신들린 연기 


맷 데이먼은 정말 연기 천재다.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간결하지만 콕 찔러서, 툭툭 집어던지며 이야기는 하는 모습이 압권이다. 그리고 순간순간 변화하는 얼굴 표정. 껌을 씹어가며 변화하는 감정의 기류가 눈빛과 얼굴에 다 드러난다. 어떠한 순간에도 길게 자기 변명 하지 않는다. 애써 상황을 기승전결 설명하려 하지 않느다. 오해를 받아도 상관없다는 듯. 진실은 언제든 통한다는듯. 하지만 승부를 걸어야 할 때는 지독한 승부사 기질이 발동한다. 그야말로 밀당의 귀재. 영화를 보며 캐롤 쉘비의 매력이 푸욱 빠져버렸다. 르망24에서 1등의 레이서가 되었지만 심장 때문에 더 이상 할 수 없게된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고(물론 실망했겠지만) 스포츠카 튜닝 및 판매자가 되었고 기회를 얻어 최고의 스포츠카를 만들어나가게 된다. 결국 켄 마일즈와 더불어 르망24에서 1,2,3위를 차지하게 되는 쾌거를 이루어 낸다. 캐롤 쉘비는 켄 마일즈처럼 순수의 결정체는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카멜레온 같은 모습으로 주어진 상황에 자신을 변화시키며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 나간다.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과감한 도전정신, 뚝심, 위험을 무릎쓴 추진력,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믿은 사람에 대한 확신과 신뢰가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으로 물밀듯이 밀려들어 온다. 쉘비같이 인생을 살아나가는 것, 참 멋지다.


크리스찬 베일은 그야말로 신들린 연기를 보여주었다. 싱크로율 99%에 달하는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스포츠카를 몰며 읊조리는 대사, 그리고 표정연기는 정말 일품이다. 페라리를 앞지르기 위해 자신이 가진 집중력을 모두 뽑아내어 차와 물아일체가 되어 레이싱하는 모습은 그것이 연기라고는 전혀 생각이 안된다. 그냥 켄 마일즈 그 자체. 진심 신들린 연기다. 크리스찬 베일은 이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체중을 30kg이나 감량했다고 한다. 지나칠 정도로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사회성이 떨어지고 그래서 괴팍하게 보이는 켄 마일즈는 가족에게 만큼은 더할 나위없이 따뜻하다. 비상한 재능과 몰입의 열정을 지니고 있지만 그냥 저냥 정비소를 운영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한다. 하지만 쉘비에 의해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크게 발휘할 기회를 얻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며 켄 마일즈같은 사람이 참 많을 것도 같다. 자신도 주변도 모르고 사라지는 재능이 얼마나 많을까?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인생의 두번 오기 힘든 행운이다. 켄 마일즈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 쉘비를 만났다. 사실 켄 마일즈가 최고의 신기록을 경신하며 확고부동한 1위였지만 자신이 속한 회사의 농간으로 1위를 빼앗겼을때, 그리고 다시 다음 대회를 기약하며 차를 시험하고 시험주행하던 중 사고로 인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때, 참 억세게 운이 안따라준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해보니,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 것 자체가 누가 뭐래도 인생의 큰 행운이다. 그리고 적은 항상 내부에 있다. ㅎㅎ


눈물 쏙 빼는 브로맨스


영화를 다보고 나니 르망 24 대회에서의 우승이나 최고의 스포츠카 이런 거 보다는 쉘비와 켄의 브로맨스가 더 기억에 남는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쉘비는 자신에게 던져진 렌치를 돌려주러 켄의 집을 찾아간다. 이미 켄은 세상을 떠나고 없다. 켄의 아들을 만나 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렌치를 돌려주는데 세상에나 렌치가 이렇게도 슬픈 도구일줄이야. 맷 데이먼의 충분히 절제되었지만 자신의 슬픔을 그 이상으로 표현하고 있는 연기에 빠져들어 나도 그와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인생은 행복하고 성공한 인생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는 장면이다. 


결론, 영화는 재밌다 그것도 아주 많이


152분의 러닝타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첫 장면에서 마지막 장면까지 쏟살같이 지나갔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진하디 진한 감정의 잔재가 남았다. 언젠가 기회가 있다면 프랑스 르망이라는 도시에서 열린다는 르망 24를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포드는 1966년 우승을 차지한 이래로 67, 68, 69년까지 연달아 르망 24에서 우승하게 된다. 포드의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영화를 돌아보면 큰 사건은 하나의 작은 스파크에서 시작되나보다. 헨리포드 2세의 페라리에 대한 승부욕이 이런 전무후무한 결과를 가져왔으며, 2019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1966년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셈이다. 영화는 재밌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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