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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나라 Jan 09. 2023

여행할 결심; 뉴질랜드를 마주하다

넬슨, 날씨가 다한 하루


“헤어질 때는 결심이 필요하지만, 사랑에 빠질 때는 결심이 필요하지 않다.”

헤어질 결심을 한다고 하더라고 항상 성공할 수는 없다. ‘결심’이란 게 그런 거니까.

영화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의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뉴질랜드와 사랑에 빠졌다. 아름다운 자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나이가 먹어서 그런가…)

배낭을 메고 그 멋진 곳을 누비는 사람들이 영웅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꼭 가봐야겠다! 고 결심했지만…. 박찬욱 감독의 말처럼 ‘결심’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여행을 가야 하는 이유는 ‘그곳에 가고 싶다’라는 거의 절규에 가까운 단 한 가지지만. 지금 당장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백만가지다.

가장 가고 싶었던 밀포드 사운드(뉴질랜드를 사랑에 빠지게 만든 곳)를 예약하지 못했다. 그래 그럼 내년에 가자.

하지만… 서래가 헤어질 결심을 위해 또 다른 결혼을 택한 것처럼(물리적으로 이보다 더 확실한 헤어질 결심은 없다….)

나도 여행 갈 결심을 위해 밀포드 사운드를 포기했다. 아마 영영 못 가겠지….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지만 루트번 트랙으로 마음을 달래 본다.

서래는 해준에게 영원히 기억에 남기 위해 죽음을 택하고 ‘영원한 미결’ 사건으로 남고 싶어 했지만,

내 여행은 완결이고 싶다. 백만 가지 이유에 대해 눈을 질끈 감고 어렵게 떠나온 만큼 말이다.


뉴질랜드에 도착하기까지 정말 길었다. 대략 11시간을 공중에 떠서 다리 퉁퉁 부으며 인고의 시간을 견뎠고

‘바이오 시큐리티’라는 엄청난 검역에 혹시라도 반입 금지인 물품이 섞여오지 않았을까.. 노심초사…

잘못하면 400 뉴질랜드 달러라는 벌금을 문다는 방송이 오분 간격으로 나와 사람을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무서운 건 끝도 없이 기나긴 줄. 세 시간 반이라는 환승시간이 있었지만 국내선 환승을 못할까 봐 식은땀이 난다.

막판에 싸다고 면세점에서 산 콜라겐, 유산균, 프로 바이오틱스…라는 여러 성분이 들어 있는 요 신박한 건강보조제가 마음에 걸렸다.

버릴까 말까 백만 번 고민하다… 결국에는 버리지 못했다…단호하지 못하고 콜라겐 하나에도 백만 번 고민하며 질척대는 내가 싫었지만… 개봉도 안 했는데 버릴 수는 없었다. 다행히 맘 좋아 보이는 아저씨가 입국 심사를 했고, 휴대폰에 저장해 놓은 가지고 간 한국 음식들의 영어 리스트를 보여드렸다.

그리고 이 애물단지는 실물을 보여드렸다. 뭐냐고 물으셨고, 콜라겐.. 이라며 말끝을 길게 흐리는데.. 아저씨 유심히 보시더니(진짜 매의 눈으로 쏘아보심) 오케이! 하신다.

사실 여기까지 오는데 한 시간도 넘게 걸렸지만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고 나니 그다음은 엑스레이 체크.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가방을 열어보자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행다행

충분할 줄 알았는데 환승시간에 쫓기다시피 국내선 공항으로 향했다.

국제선에서 국내선 공항 가는 길은 셔틀버스와 걸어서 가는 방법이 있는데 난 시간도 없고 11시간 넘게 앉아서 온 것이 힘들어 힘차게 걸어갔다. 기억하시라. 국제선과 국내선 공항은 초록색선으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

오클랜드 국내선 공항에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작고 귀여운 프로펠러가 달려 있는 비행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타 다다다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어마어마한 경치에 한 시간 반이 후딱 지났고 드디어 목적지 넬슨에 도착했다.

여행하고 처음으로 내가 나옴과 동시에 가방도 나왔다.. 허거덕… 이렇게나 빨리… 가방 잡고 돌아서니 바로 바깥이 보인다. 정말 넬슨공항 동선하나는 최고최고!

넬슨 공항 화장실,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에 바로 터치만 하면 태풍이 몰아치듯 세차게 불어 나오는 바람에 손이 순식간에 말랐다. 그 바람에 바이오 시큐리티 스트레스는 모두 날려버리고 공항 문을 나선다.

영하 10도 언저리를 꽤 오래 떠날 줄 몰랐던 혹한의 겨울에서, 구름 한 점 허용치 않는 파란 하늘과 눈물을 쏙 빼놓는 눈부신 태양, 그리고 인공눈물을 넣지 않아도 저 멀리까지 또렷이 보이는 맑은 공기가 순식간에 나를 휘감는다.

도대체 이것은 여행인가, 순간이동인가.

아무것도 보지 않고, 어디든 가지 않아도 이런 날씨만 있다면 그저 만족스러울 거 같다. (나는 추위가 진짜 싫다…)

아무튼 오늘 하루는 날씨가 다했다.

저녁이 되니 선선해 긴팔 옷이 그립기까지……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여행 내내 이런 아름다운 날씨가 계속되길…! 기도한다.


귀여운 프로펠러 비행기/숙소에서의 선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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