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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나라 Aug 30. 2023

뚜르 드 몽블랑, 그게 뭔데?

몽블랑 바라기 12박 13일


10년전에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일.

어느 순간 견고한 껍질을 뚫고 그 꿈이 몽글몽글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어느날 갑자기 뚜르 드 몽블랑 176km의 대장정의 길 위에 나를 세워버렸다. 내가 꾸었던 그 꿈이 말이다.

내가? 정말로? 과연 꿈은 정말 이루어지는 것인가?

내 몸에는 근육보다는 지방이 우세하고,

그래 그 나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때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났으며,

주말마다 전국의 산을 오르며 호연지기를 기르거나,

매일 헬스장에서 자기관리를 하는 부지런하고 건강한 분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뚜르 드 몽블랑, 그게 뭔데??



뚜르 드 몽블랑은 유럽에서 가장 인기있는 장거리 하이킹 트레일 중 하나


뚜르 드 몽블랑(줄여서 TMB)은 4810미터의 하얀 눈을 감싸고 있는 몽블랑을 가운데 두고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에 이르는 타원형 모양의 하이킹 트레일을 걷는 것으로, 그 길이가 10km에 이르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합쳐 175km에 달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프랑스 샤모니 인근 레우슈라는 곳에서 시작하여 10일에서 12일 정도에 걸쳐 시계 방향 혹은 반시계 방향으로 트레일을 완주하고 원점회귀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실 시작한 곳으로 다시 되돌아 오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 시작을 하든 상관은 없다. 한바퀴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오면 되는거니까. 몽블랑 둘레길이라고 해서 산길만 걷는 것은 아니다. 175km에는 레꽁타민 몽쥬에, 꾸르마예르, 샹펙스, 트리앙 등 작은 소도시들이 포함되어 있다. 알프스 산길을 걷다가 마을을 만나고 다시 산을 오르고 내리고 하는 여정인 것이다. 그래서 열흘동안 산길만 걷는 것보다 좀 더 다채롭고 재미있으며 지루할 틈이 없다.

어찌되었건 뚜르 드 몽블랑은 10일 간의 긴 기간동안 몽블랑 바라기를 하며 알프스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는 아름다운 여행코스인 것이다.


뚜르 드 몽블랑을 완주하는 것은 보통 10일 정도이지만 개인의 체력과 일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7~8일 만에 완주를 끝내는 사람도 있고 좀 더 길게 일정을 잡고 천천히 걷는 사람들도 있다. 꼭 완주를 하지 않아도 좋다. 자신의 일정에 따라 절반 정도만 하는 사람도 있고 한 두 구간만 걷는 사람들도 있다. 완주를 하지 않을 경우 가장 인기있는 구간은 레우슈에서 출발하여 꾸르마예르에서 끝내는 구간이다. 이 경우 꾸르마예르에서 버스를 타고 몽블랑 터널을 지나 레우슈, 샤모니, 제네바 등으로 빠르게 돌아올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반시계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고 레우슈에서 꾸르마예르 구간이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뚜르 드 몽블랑은 둘레길이 아니다!


뚜르 드 몽블랑을 시작하기 전 '몽블랑 둘레길'이라는 표현을 많이 들었다. '둘레길'이라는 말은 참 포근하다. 그 말에는 모두가 부담스러워하는 '오르막'이라는 표현이 배제된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몽블랑 둘레길'이라고 불리우지 않고 '몽블랑 등반' 내지는 '몽블랑 산행'이었다면.....어쩌면 나는 이 여행을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실제로 해보니 뚜르드 몽블랑은 절대, 절대, 둘레길이 아니었다. 몽블랑의 둘레를 걷는 것이지 등반이 배제된 평지에 가까운 길을 걷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내 개념상 둘레길이라고 생각되는 길을 걸은 날은 딱 하루에 불과했다. 나머지 날들은 모두 꽤 길게 느껴지는 오르막과 그에 상응하는 내리막으로 이루어진...거기에 가끔은 눈을 밟고 폭우와 우박도 동반될 수 있는, 아 그리고 세상에 이렇게 센 바람도 있구나 싶은.... 생각보다 빡센 여정이었다.



뚜르 드 몽블랑, 누구나 다 할 수 있을까?


뚜르 드 몽블랑은 단언컨대 동네 산책 수준의 대충 준비해서 떠나는 쉬운 코스는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뚜르 드 몽블랑 일주를 꿈꾸는 열정있는 사람이라면 잘 준비하여 누구나 다 도전하고 성공할 수 있다. 내 상황과 체력에 맞추어 일정을 조절하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 체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약하거나 쉽게 지친다면 일정을 더 늘리면 된다. 다른 사람들이 8일이나 9일 정도에 완주를 한다면 나는 12일 아니 13일 정도로 일정을 늘리면 된다. 하루에 걸어야 할 거리를 줄이면 그만큼 피로도가 줄어든다. 또한 뚜르드 몽블랑 코스가 마을과 산길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은근히 버스로 이동할 수 있는 구간들이 꽤 있었다. 중간 중간에 버스 이동을 넣을 수도 있다. 자신을 잘 알고 그에 맞춰 계획을 촘촘하게 세운다면, 그리고 꼭 하고싶다! 라는 간절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곳이다.


내 경우는 뚜르 드 몽블랑 중간 즈음에 하루 '제로데이'를 두었다. 하루 종일 쉬면서 밀린 빨래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설렁 설렁 놀멍 쉬명 하는 날이었다. 보니띠 산장에서 한시간 반정도 내려와 있는 마을에 숙소를 잡았다. 페레계곡에 아늑하게 자리를 잡아 하늘도 좋고, 산도 좋고, 계곡도 좋았던 곳. 싱글룸도 좋고 무엇보다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 이곳에서는 쿠르마예르까지 버스가 다녀 20~30분정도 버스를 타고 쿠르마예르도 다녀올 수 있다. 버스는 무료다~~! 또한 반대 방향으로 버스를 타면 '아르브'라는 곳까지 갈 수 있는데 이곳에서 다시 뚜르 드 몽블랑(줄여서 TMB) 코스를 만나게 되어서 엘레나 산장을 거쳐 페레고개를 넘어 스위스로 갈 수가 있다. 어찌되었건 뚜르 드 몽블랑을 하며 하루 쉬기에 기가막히게 위치가 좋았다.


"It's not a race! Enjoy yourself!   


뚜르 드 몽블랑을 하며 많이 들었던 말이다. 뚜르 드 몽블랑은 시합이나 경주를 하러 온 것이 아니다. 알프스를 즐기러 온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니 급할 것도 없고 좀 느리게 걷는다 하더라도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또한 알프스는 빠르게 스쳐 지나가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새파란 하늘에 새하얀 구름, 하늘을 찌를 듯한 몽블랑 산군들과 그 아래 초원에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들, 맑고 시원한 공기, 눈부신 햇살 그리고 따뜻한 잠자리와 맛있는 아침과 저녁을 내어주는 이쁜 산장들이 있는 곳. 내 발로 디디는 한걸음, 한걸음도 좋지만 산장에 도착해서 만년설을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 한잔을 들이키며 릴렉스하는 그 순간까지도 너무 좋았다.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전 세계에서 온 트래커들과의 즐거운 수다도 빠질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다. 무엇 하나 버릴게 없는 곳.


뚜르 드 몽블랑을 끝내는 날, 너무나 아쉬워 일부러 천천히 천천히 발걸음을 최대한 늦추며 알프스와 서서히 이별했다. 뚜르 드 몽블랑을 완주했다는 기쁨보다는 이제 이 아름다운 곳을 떠나야 한다는 극강의 아쉬움이 나를 한동안 가슴먹먹하게 만들었다.


뚜르 드 몽블랑은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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