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르 드 몽블랑 12박 13일
트레커들에게 산장이란?
뚜르 드 몽블랑을 시작하자마자, 아니 시작하기도 전부터 알프스 산맥에 보석처럼 박혀있는 산장들의 매력에 급속도로 빠져들었다. 알프스 산장들은 12박 13일이라는 긴 여정동안 나를 재워주고 먹여 줄 소중한 공간이자 어쩌면 하루 트레킹의 목적지가 되는 랜드마크인 것이다. 하얀 설산에 병풍처럼 둘러 싸이거나 곱디 고운 연녹색 초원 위에 이쁘게 지어진 산장들은 그 자체로 동화 속 세계처럼 느껴졌다. 아침에는 오늘 묵게 될 산장을 마음 속에 그리며 그곳을 목표로 전진한다. 아름다운 알프스와 동행하는 시간에도 산장까지는 얼마나 남았을까? 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가지고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마침내 저멀리 내가 오늘 묵게 될 산장이 보이게 되면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 친다. 드디어 왔구나! 마치 산장에 오기 위해 하루를 걸은 것처럼 느껴진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산장이 있다는 것에 하루종일 마음이 따뜻하다.
트레커에게 산장이란 엄마의 따뜻한 품과 같은 곳.
뚜르 드 몽블랑, 산장의 루틴
산장의 하루는 산장을 도착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산장에 도착하는 시간은 트레커마다 다르다.
내 경우는 보통 아침 8시쯤 시작해서 오후 2시~4시 사이에 주로 산장에 도착을 한다. 내가 묵을 산장에 도착을 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등산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 일이다. 그리고 스틱을 지정된 장소에 걸어 두어야 한다. 이렇게 한 후 산장 건물 안에 들어 갈 수 있게 되어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내 스틱 누가 가져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13일 동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다들 귀신같이 자신의 스틱을 잘 찾아 간다.
일찍 도착하는 트레커가 좋은 자리를 맡는다
산장 체크인 시간은 보통 4시 정도이지만 사정에 따라 일찍 체크인이 가능하기도 하다.
체크인을 하며 산장생활에 대한 정보를 준다. 저녁식사와 아침식사 시간, 화장실 사용여부, 핫샤워에 대하여, 와이파이(만약 있다면), 다음날 런치 도시락 예약, 비건인지 글루텐 프리인지(자세히도 물어본다), 디파짓을 제외한 요금은 언제 지불해야 하는지 등등.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산장 객실 배정. 객실은 알려주지만 어떤 베드를 사용할지는 본인이 정한다. 도미토리이기는 하지만 분명 좋은 자리가 존재한다. 한 두 군데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찍 도착한 사람이 자신의 침대를 고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내 경우는 1층 독립된 침대 선호, 매트리스로 주욱 이어진 경우는 벽쪽 자리 선호 등등 계속 고르다보니 취향이 생긴다.
산장의 충전기는 항상 부족하다
침대를 맡고 나면 다른 트레커들이 몰려 들기 전에 충전을 해야한다. 도미토리 방안에 충전기가 있는 경우는 편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산장에 충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곳에 모든 트레커의 전자기기들이 모두 충전되는 것. 휴대폰, 스마트 워치, 보조배터리 등을 충전하기 위해 자리를 맡아야 한다.
뚜르 드 몽블랑에서 핫샤워는 그야말로 축복
충전기에 내 전자기기들을 꽂아 놓고 나면 얼른 샤워장으로 향한다. 샤워장도 역시 붐비기전에 가는 것이 좋다. 뚜르 드 몽블랑에서 핫샤워란 말해뭐할까. 너무 너무 소중한 시간이다. 뚜르 등 몽블랑의 핫샤워는 세 종류가 있다.
1. 시간제한없이 핫샤워가능한 곳(하지만 아껴쎠야 한다): 미아지, 낭보랑, 모떼, 메종빌, 라바쉬(호텔), 트리앙(호텔), 지테르믈린
2. 토큰을 넣어 시간을 제한하는 곳(숙박요금에 포함): 베르토네, 보나띠, 페네트레
3. 돈을 추가로 내고 토큰을 사는 곳(주로 4분 정도): 락 블랑 산장
4. 노샤워: 본 옴므 산장
머리 숱이 많은 나로서는 아무리 머리를 잘랐다해도 4~6분 안에 머리감고 샤워까지 끝마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수압이 약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세지도 않아서. 그래도 샤워를 아예 할 수 없는 본옴므 산장을 제외하고는 잘 씻고 다녔다. ㅎㅎ
알프스와 함께하는 힐링 타임
체크인, 충전, 샤워를 마치고 나면 이제부터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다.
그저 멍때리며 가까이에 우뚝솟은 봉우리를 바라보거나 한 여름에도 하얗게 눈 덮인 몽블랑을 바라보며 힐링을 한다. 뼛 속까지 시원한 맥주 한 잔과 달달한 타르트 한 조각이 행복감을 배가 시킨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정말 여러번 들었다. 내년에도 다시 올까? 아니 매년 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는 시간이다.
알프스 산 속의 미슐랭, 산장의 디너
뚜르 드 몽블랑을 하기 전에는 결코 생각지도 못했던 일.
산장의 디너가 너무 너무 맛있다!!
대부분의 산장은 저녁시간이 7시에 시작된다. 그러니 누구든지 이 시간 전에 산장에 도착해야 한다. 만약 늦는다면...아무리 디너까지 예약을 했더라도 먹을 수 없다고 한다. 시간이 다 되어 레스토랑에 가면 테이블에 내 이름이 적혀있다. 보통 4~6인용 테이블에 자리마다 이름표가 붙어 있다. 오늘 나랑 저녁 먹을 사람들 이름. 한 두명씩 얼굴을 내밀면 서로의 이야기 보따리가 풀린다. 순식간에 산장 안은 왁자지껄 경쾌한 소음으로 가득찬다. 참으로 절묘하다. 혼자만의 힐링 타임으로 행복감이 충만해지고 난 뒤에 찾아오는 사람들과의 교감. 어찌나 재밌고 신나는지 모른다. 대화 주제는 당연히 뚜르 드 몽블랑이다. 각자의 스토리와 그날 있었던 사건들이 첫 코스가 시작되기 전에 줄줄이 소환된다.
산장의 디너는 세가지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스프나 샐러드, 또는 파스타가 먼저 나오고 메인요리가 서빙된 후 마지막으로 디저트로 마무리한다. 산장에 따라 어느 코스든 두 가지 정도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난 항상 첫 코스로는 스프를 선택했다. 알프스의 차가운 기운을 달래주기 위해서는 스프가 그만이다. 먹었던 스프마다 감동의 물결이다. 스프가 이렇게도 맛있는 음식이었다니...새로운 발견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나라마다 그리고 산장마다 새로운 음식이 서빙되었다. 오늘은 어떤 음식이 나올까 기대를 하며 뚜르 드 몽블랑을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서 산장에 도착하면 항상 오늘의 디너는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후훗. 산장에서 단체로 먹는 음식이지만 비건인지, 글루텐 프리인지 세심하게 확인한다. 생각보다 외국인들은 비건이 많았다. 글루텐 프리인 호주인도 한번 같이 식사하였는데 못먹는 것이 정말 많더라는....덕분에 내가 두배로 먹었다!
유쾌하고 흥겨운 저녁식사 시간은 대략 8시 반에서 9시사이에 끝난다. 마치 고등학생이 된듯 까르르 웃어가며 수다를 떨다보면 무언가 스트레스가 확 풀어지는 기분이 든다. 정말 중요한 시간.
잠깐의 독서와 깊은 잠
저녁 식사가 끝나면 잠시 산책을 하기도 하고 저녁 노을을 사진찍기도 하며 잠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양치를 하고 빠르게 잠자리를 정리한다.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이 시간에 독서를 많이 하는 편이다. 불을 끄고 나서도 헤드렌턴을 켜고 열심히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꽤 있다. 나도 이 시간은 가이드북에서 오늘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고 내일 걸어 갈 길을 점검하는 시간으로 유용하게 보냈다.
낭보랑 산장에서 만났던 70대 후반의 할아버지는 이곳에 온 것도 놀라웠지만 킨들로 한시간 넘게 몰입하여 독서를 하셨다. 진짜 본받아야 하는 습관이다.
싱그러운 공기 마시며 아침 식사 후 출발!
산장의 아침은 일단 공기부터가 다르다. 어디서 들어왔는지 정말 후레쉬한 공기가 산장 안과 밖에 가득하다. 아침식사는 6시 반에서 7시에 시작한다. 정해진 시간안에 자유롭게 식당에 내려가 아침을 먹으면 된다. 아침식사는 커피, 주스, 빵과 버터, 잼, 치즈, 요거트, 시리얼 등 산장마다 조금씩 다르다. 나는 일단 커피는 두 잔정도 마시고 빵을 버터 등 양껏 먹는다. 별거 없는 구성이지만 나한테는 왜그리 맛있었는지.....지금도 의문이다. 산장의 아침식사 중 아쉬웠던 점은 구운 빵을 먹을 수 없었다는 점. 토스트기 이런거는 애초에 없다. 어느 산장은 빵이 딱딱하기도 했었는데...신기한건 그래도 맛있다는 점! 아쉬운 점 또 한가지는 계란요리가 없다는 것. 그 어떤 산장도 계란이 나오는 곳은 없었다.
아침을 푸짐하게 먹었다면 이제 다음 산장을 향해 출발할 시간이다.
앗 출발하기 전 잊지 말아야 할 것. 바로 물통에 물을 채우기. 산장에 항상 마실 물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 아래 사진 참조. 뚜르 드 몽블랑을 하는 동안에는 물이 풍부해서 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 참 좋았다. 자, 그러면 출발해볼까? 대략 7시반에서 8시 사이. 마지막 사진을 찍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디면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13일 동안 위와 같은 루틴으로 살았지만 단 하루도 지루한 날이 없었다. 전생에 트레커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