꿍한 사람이 더 나쁘니까요
"내가 이렇게 말하지만, 뒤끝은 없단다."
이 말은 참, 이상한 말이다.
싫은 소리를 들은 건 나인데,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괜찮으시단다.
비로소 깨달았다. 뒤끝이 없다는 건,
남이 상처받거나 말거나 본인만 편해지면 괜찮다는 식의 이기적인 말이라는 걸.
그래서 많이 반성했다.
한때 나도 쿨한 척 뒤끝 없음을 강조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뿌린 대로 거둔다더니 그래서 뒤끝 없는 시어머니를 만난 걸까.
결혼 전 나는 가족의 중심이었다. 장남인 아버지의 첫째로 태어나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있었다. 내가 의견을 말하면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한마디로 존중받았다. 그러나 결혼 후 나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내려지는 결정에 수긍하고 따라야 하는 며느리였다.
이게 참 적응이 어려웠다. 누군가가 계속 명령을 내리거나 지적을 하는 데 왜 그래야 하냐고 따지지 못하는 것이 답답했다. 그런데 그런 답답함을 내색할 수도 없다. 내가 내 삶을 살려고 결혼을 한 건지 보조출연자로 취직을 한 건지 헷갈렸다.
그래서 나는 점점 뒤끝 있는 사람이 되어갔다.
집에 돌아와 설거지를 하며,
아휴, 왜 그 말씀에 가만히 듣고 만 있었을까
아 왜, 그 말씀에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아니, 바보같이 나 왜 가만히 있었던 거지?
이런 생각을 하며 차곡차곡 뒤끝이 쌓아지더란 말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이런 말씀도 꼭 덧붙이시는 거다.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뒤끝은 없어.
말 안 하고 꿍한 사람이 음흉하고 더 나빠."
그래서 가르침대로 했다.
한번 참고
두 번 참고
세 번까지 참고
네 번째도 참았다가
다섯 번째에는 터트려버렸다.
음흉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