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거짓말
"왜 가?"
결혼하고 처음 혼자 친정에 가던 날, 어머니가 물으셨다.
지금이라면 "특별한 일이 있어서 가는 거냐"의 줄임말이란 걸 알겠지만, 당시에는 마치 친정에 가는 게 잘못인 양 느껴졌었다. "여자는 결혼하면 친정이랑 멀어지더라"라는 말씀이 "친정하고 멀어져라"로 들렸던 탓일까.
32년이나 살았던 우리 집에 가는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
내 짐을 싣고 우리 집을 떠나오던 날, 엄마도 나도 많이 울었다.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지는 거라 정말 많이 서글펐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은 우리 집에 가서 부모님도 뵙고 빈둥지증후군도 달래 드리고 싶었다.
초등학교 시절,
"엄마는, 조용히의 얘기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어"
학교에서 있었던 일, 선생님께 들은 말, 친구와 놀았던 일들을 재잘재잘 떠들고 난 직후였다.
그 말씀 덕에 나는 숨김없이 시시콜콜 다 말하는 딸로 자랐다.
그런데 남편은 달랐다.
퇴근했는데 아직 안 했다고 말하고,
월차를 냈는데 회사인척 하고,
저녁을 먹었는데 안 먹었다고 말했다.
나랑 영화 보러 왔으면서 외근 나온 척을 했다.
어이없을 정도로 대개 사소한 것들인데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왜 그는 엄마한테 솔직하지 못할까?
내가 거짓말쟁이와 결혼한 걸까?
아무래도 남자와 여자는 다르니까?
이상하고 때론 답답했다.
그가 내게도 동참하라고 한 게 아니라서
나는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다.
그러자, 예상 못한 전개가 펼쳐졌다.
오빠 퇴근했어요.
- 아니,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일이 잘 안 되나 보구나...
방금 저녁 먹었어요.
- 아니, 저녁을 먹으면 살찌는데. 어휴
며칠 전에 아가씨네서 술 한잔 했어요.
- 아니, 너네는 어떻게 나를 쏙 빼놓고 만나냐.
오빠랑 영화 봤어요.
- 나도 영화 좋아한다.
이렇듯 예상과 다른 반응이 돌아오는 것이다.
결국, 나도 그의 지혜(?)를 본받기로 했다.
친정인데, 집인 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