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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저는 딸은 안할래요

그냥 며느리 할래요

by 집에서 조용히

"옆집은 며느리가 엄마라고 부르더라"


"그래요? 살갑네요."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엄마'라고 불리고 싶으시다는 걸까?


13년간 어머니와 함께 하며 많이 울기도 하고 답답한 날들도 많았지만, 어머니라는 사람에 대해 적응하고 나니 같은 여자로서 이해되는 부분도 많아졌다. 내가 이렇게 집에서 조용히, 글을 쓰고 있긴 하지만 가끔은 정말 '그냥 엄마라고 부를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가깝고 편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내가 진짜 딸이 아니어서인지,

아니면 내 속이 유독 좁아 그런 건지,

생각하고 생각해 봐도 재미있는 문장으로 포장할 수 없는 기억들이 있어서 말이다.



결혼했던 날,

시댁 설거지통에 손을 담갔다. 식이 끝나고 집에 모셔다 드리기만 하려 했는데 저녁 먹고 가라며 붙드셨다. 신혼여행은 내일 아침 비행기였다. 그런데 먹었으면? 치워야지. 아가씨가 말렸지만,


"어휴 어제 음식하고 손님 치르느라 힘들어죽겠다"


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그냥 돌아올 수 없었다.

시댁 설거지 예쁘게 해 드리려고 새벽부터 샵에 가서 머리하고 메이크업받고 결혼예복 차려입은 거 아닌데 순간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었다. 귓가에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았다.

그랬다.

만약 우리 엄마였으면?



신혼 6개월 차,

남편이 미국 3개월 출장을 갔다.


"여기가 네 집인데 왜 친정에 가 있니? 우리 딸도 남편 출장 갔을 때 친정 안 오고 자기 집에 있었다. 내가 우리 아들도 못 보는데 너까지 못 보면 외로워서 어떻게 하니?"


라며 친정행을 막으셨다. 아가씨는 줄곧 한동네에 살고 있었다. 그날 집에 와서 많이 울었다. 남편이 떠나고 혼자 주말밥을 먹으러 매주 시댁에 갔다. 한 번은 잠도 자고 왔다. 나는 결혼으로 상경한 거라, 지인이라고는 5분 거리 시댁이 유일했는데...

그랬다.

만약 우리 엄마였으면?



아이 낳았던 날,

제왕절개로 입원기간이 일주일이었다. 1인실 병실료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남편이 좀 편했으면 해서 보호자 상주가 안 되는 간호간병 다인실에 입원했다. 축복 같은 아이를 출산한 산모들은 1-2인실을 선호해서 다인실은 텅 비어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몸도 많이 힘들고 외롭고 밤에 무서웠다. 내 엄마가 날 보고 내려가는 기차에서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 그 넓은 병실에 너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을 생각 하니 슬프구나"


엄마한테 아무 내색도 안 했는데? 오히려 씩씩하게 이 넓은 병실 나 혼자 쓰는 거라며 자랑했는데도?


그날 어머니는,


"이 넓은 병실 너 혼자 써서 정말 좋겠다"


고 말씀하셨다.

그랬다.

그래서 말이다.

나는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를 수 없다.


엄마보다는, 같은 집안에서 일하는 사수와 부하의 느낌이랄까? ​나는 인수인계 같은 건 받을 생각이 없는데 자꾸 "내 살림이 곧 네 살림"이라 어필하실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결혼초반에


"너는 내 사람이다"

"이제 너는 내 사람이니까"


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그런데 그건 우리 엄마가 허락 안 할 텐데,

우리 엄마도 사위만 보고 결혼시킨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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