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면 불편할 테니 네가 하는 게 낫지 않겠니?
"어떡하지? 이거 해야 돼?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해? 할 말도 없는데..."
"우리 시어머니도 자주 전화하라고 그랬어.
근데 나는 안 했어. 우리 (친)언니가 하란다고 하면
'얘는 말하니까 듣네?'하고 생각한대는 거야.
좀 미움받을지언정 '얘는 말해도 소용없어'하고
포기시키는 게 나중엔 내가 편하대잖아."
먼저 결혼한 친구 y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서른둘, 그리 어린 나이도 아니었건만 시어머니가 무서웠다. '하라면 하는 며느리'가 되겠다는 각오를 가졌던 건 아니었지만 나 하나로 이 평화가 유지된다면 딱히 못 할 일도 아니었다. 남편은 내게 참 좋은 사람이니까.
그래서 매일 전화를 드렸다. 다행히 통화가 길진 않았다. 오히려 아직 할 말이 남았는데도 전화를 끊어버리셔서 상처받은 적도 있다. 알고 보니 어머니는 '용건만 간단히' 스타일이셨고 아들과 딸보다 나에게는 너그러운 편이었다. 주로 우린 날씨 얘기를 했다.
뜨르르르 뜨르르르
"여보세요. 그래, 오늘 날씨가 정말 덥구나."
"네, 정말 덥네요"
"그래, 조심해라"
"네, 내일 또 전화드릴게요"
뚝!
신혼 6개월 차, 그가 미국출장을 간 3개월 동안은 아침, 저녁으로 연락을 드렸다. 혼자 있는 내가 걱정되신다는 이유였다.
아침엔 문자로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저녁엔 전화로 "어제보다 덜 덥더라고요."
몇 년 동안 안부전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고 삼일에 한 번, 이틀에 한 번,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내지 안 하는 주도 많아졌다. 대신 이제는 한번 통화하면 날씨뿐 아니라 두루두루 대화해서 10분이 넘는 경우가 많다. 알고 보니 용건이 긴 분이셨다.
전화하라는 요구가
'며느리 길들이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솔직히 해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나도 항상, 저녁준비로 분주하실
6시에만 전화를 드렸다.
절대,
다른 시간에는 전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