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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저는 다른 집 며느리가 아니라서요

요리에는 취미가 없어요

by 집에서 조용히

1. 매일 안부 전화를 했으면 좋겠다.

2. 일주일에 한 번은 함께 밥을 먹었으면 좋겠다.


결혼할 때, 어머님의 요구사항이었다.

분명 "~으면 좋겠다"라고 하신 게 맞는데

왜 명령조로 들렸을까?

지금이라면,

그건 무리한 요구라고 말씀드릴 수... 과연 있을까?


한주에 한번 밥 먹기는 5년 동안 이어지다가

어머님이 힘드시다며 격주로 이어지는 중이다.


연세가 드심에 따라 슬슬 밥 하기를 나에게 맡기고 싶어 하시지만 1년에 두 번, 생신상 차리는 솜씨로 못 미더움을 한껏 발산중이다.


"이제 밥 하는 것도 힘에 부친다. 네가 좀 해와라.

다른 집 며느리는, 다해 가지고 온다더라."

"다른 집 며느리는, 장을 싹 봐온다더라."

"다른 집 며느리는, 시어머니 아무것도 못하게 한다더라."


안타깝게도 나는 다른 집 며느리가 아니라서 말이다.

할 줄 아는 메뉴가 많지도 않고 조리는 하겠는데 맛있게 간을 볼 자신이 없다. 한마디로 요리에 미가 없다.

막연하게 결혼을 하면 다 잘하게 되는 줄 알았다. 노력도 해봤다. 하지만 맛이 없었다. 10년 차가 되었을 때 내게 요리에 소질이 없음을 인정했다. 칼이 무서워 여전히 속도도 느리다. 처음엔 주부로서 자괴감이 느껴졌지만 세상에 요리 못하는 주부가 나만일까? 알고 보니 반찬 사서 먹는 주부도 많았다. 이런 나를 인정하자 편해졌는데, 어머님은 이런 며느리를 이해하지 못하시는 듯했다.


"10년이 넘었으면, 이제 할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


어째서?

나는 요리 잘하는 며느리가 되려고 결혼한 게 아닌데?


"그러게요."


그냥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끝까지 해오겠다고 대답하지는 않았다.(못한다)


밥 먹자는 건, 어머니 원하신 거고 13년 동안 그 말씀을 잘 따르고 있 뿐이다. 시댁에 가면 상차림할 때까지 재료손질이나 설거지, 어머니 보조를 하고 있고 밥 먹고 난 후의 설거지, 과일준비까지 내가 다한다. 밥만 얻어먹고 오는 게 아니다. 그중에 10년간은 흰머리도 뽑아드렸으니 이만하면 열심히 며느리노릇을 해 게 아닐까.

정 힘에 부치신다면 나가서 사 먹거나 시켜 먹어도 되고 밥시간이 아닌 때에 만나 다과만 도 좋겠다.


문제는,

어머니는 음식솜씨에 자부심이 매우 커서 직접 만드신 음식 말고는 웬만한 건 맛있다고 여기지 않으신다는 것.


하지만... 이건 비밀인데

처음 어머니의 음식을 먹었을 때

내 입엔 아무 맛도 안 났다.

어머니는 매번 물으셨다.


"이거 어때? 무슨 맛이야?"


너무 짤때는, "짠 거 좋아해서 맛있어요"

많이 달때는, "조금 달지만 맛있어요."

아무 맛도 안 날때는,

"싱겁게 먹는 게 좋다잖아요. 맛있어요"


그러자 어느 날부터 정말 맛있어졌다.

맛도 가스라이팅이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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