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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조용히, 대드는 중입니다

프롤로그

by 집에서 조용히

꿈꾸던 브런치 작가가 되었는데, 모르는 것 투성이었네요.

세 개를 발행하고 나니, 연재 브런치북을 만들 수 있는 메뉴가 보였어요. 그런데 이미 발행한 글은 연재 브런치북으로 옮길 수가 없다고요...


'초심자의 행운' 같은 것인지 두 번째 글 "어머니, 감자전 좀 그만 부쳐요"가 daum에 노출이 되었어요. 그래서 조회수도 라이킷수도 삭제해 버릴 수가 없는데 말이에요.

제 글이 언제 이렇게 읽히겠냐 말이죠...


그래서 연재 브런치북는 안 하고요.

(정확히는 못하게 된 거죠?)

매거진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서랍에 숨겨놓았던 글들 연재보다 빠르게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래는 이왕 써 둔 거였으니...




<들어가는 글>


저희 시어머니께서 모르는 게 있는데,

제가 결혼하기 훨씬 전부터 일기를 쓰고 있던 일기쟁이라는 사실입니다. 며느리가 되고 보니 일기거리가 더 많아지더라고요? 신이 나서 열심히 썼습니다. 혼자만 보기 아까워 친구들에게, 새로이 알게 되는 사람들에게 잔뜩 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

다들 저더러 "대단한 며느리다", "시어머님이 며느리를 잘 보신 것 같다"며 칭찬하더군요. 그런데 이상하죠? 오늘도 어머니는 친구분의 돈 잘 버는 며느리, 싹싹한 사촌동서, 이웃집의 전문직 며느리 얘기만 하시네요? 참 신기해요. 제 주변엔 저만큼 하는 며느리가 없던데 어째서 저희 어머니 주위엔 저보다 잘한다는 며느리들만 있는 걸까요?


결혼하고 얼마뒤에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어요. 제 얼굴이 많이 밝아졌다고요. 원래 제 얼굴에 그늘이 있었다고요? 저는 그런 소리를 살면서 처음 들어봤어요.

아마 제 얼굴에 그늘이 있었다면 시댁가풍에 적응하느라 용을 써서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어머니께선 제가 땡씨 집안 식구가 되어서 얼굴이 밝아졌다고 여기시는 듯하더라고요. 근데 전 "그래요?"하고 또 아무 말도 못 했네요?


그래서 이제라도 밝힙니다.

제 얼굴에 그늘이 있었다면 그건 계속 이 결혼생활을 이어가야 할지를 고민했었기 때문이고요. 밝아진 건 제 부모님께 받은 사랑과 물려받은 '맑음''밝음' 덕분이라고요. 저는 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으로 자랐거든요. 덕분에 결국 이 가풍에서 살아나갈 저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었고요. 물론 13년 동안이나 착한 며느리 코스프레를 할 수 있었던 건 남편이 제게 아주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아니었다면 사실 굳이 어머니께 잘 보이고 싶은 이유가 없잖아요? 아 이제는 아이가 있어 발목이 잡히긴 했네요.


그래서요.

저는 오늘도 저만의 며느리 노릇을 해나갑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말하지 못했던 것들,

참아야 했던 순간들을

조용히, 글 대드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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