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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대체 어떻게 보신 걸까요?

알고 싶은 투시능력

by 집에서 조용히

"너는 네 몸을 많이 아끼는 것 같아.

나는 내 몸 아껴본 적 없는데."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는데 뒤에서 뜬금없이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습관적으,


"아, 네 맞아요. 전 제 몸을 아껴요."


라고 '호응하기' 버튼을 일단 켰는데

내가 내 몸을 아낀다고?


'내 몸을 희생해야겠다'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껴야지' 하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말씀의 뉘앙스가 좋은 의미로 들리지 않았다.


게으르다는 말씀인가?

너무 몸 사리는 것 같아 싫다는 말씀인가?


내가 좀 눈치가 없 하다. 아래로 남동생 둘을 거느리며 맏딸로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자유롭게 서른두 살까지 부모님과 살았다. 그래서 미처 키우지 못한 능력이지만 덕분에 시집살이 맘고생 덜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13년 차 며느리가 되고서는 척하면 척, 어머니의 의중파악에 도가 텄다고 자부하지만 저때는 아직 눈치가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응? 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내가 내 몸을 아낀다고 생각하셨을까?


내가 몸을 사렸다면,

시험관 시술로 복수가 3리터나 차도록 집에서 앓았을까. 아니 애초에 시험관을 시작했을까.


내가 몸을 사렸다면,

제왕절개 수술 중 과다출혈로 죽을뻔하고도

외로운 간호간병 다인실에 입원했을까.


내가 몸을 사렸다면,

허리, 고개 수그리고 앉아 10년이나 흰머리를 뽑아드렸을까.


내가 몸을 사렸다면,

오란다고 13년째 준히 설거지하러 가고 있을까.


내가 몸을 사렸다면,

시댁에 가자마자 앉지도 않고 찬물에 손부터 담글까.


굳이 동지팥죽을 집에서 쑤시겠다는 어머니 취향에 맞춰 팥죽을 휘젓다 손가락에 물집이 잡혔을 때도 아무 말 없이 집에 돌아와 조용히 '하찮은 화상일지'를 끄적였을 뿐이다.


쓰다 보니, 나 정말 내 몸을 아낄 줄 몰랐잖아?

대체 언제 내가 몸 사리는 걸 보신 걸까?

그런 건 시어머니눈에만 보이는 걸까?


아무튼, 그동안의 노고가 억울하셨다면

이제라도 밥 차리는 걸 그만두시면 될 텐데,

주말밥은 이번 주에도 어김없이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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