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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Dec 25. 2019

쳇, 작가의 벽 따위!

글쓰기 슬럼프를 가뿐히 넘어서는 법




! 작가의 벽에 부딪혔다!   

Writer's Block.


이마를 문지르며 고개를 들어보니

거대한 벽이 우뚝 서 있네?!



잘 써지던 글이 무슨 짓을 해도 안 써진다면,

바로 보이지 않는 그 벽에 부딪혔다는 뜻입니다.

그래 봤자 뭘 얼마나 썼다고 엄살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그렇다는 뜻이죠.



그래서 어떻게 하냐고 물으신다면,

흐흠, 저는 이렇게 합니다.



1. 우선 괴로워하며 책상에 앉지요.


오, 의자의 쿠션은 이런 느낌이었군!  

느낌이 아주 새로워요.

갓난아기가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우선 책상에 앉는단 말입니다.


하지만 처음 벽에 부딪히면 이것조차 쉽지 않죠.

 

오늘은 앉아야지, 하다가 하루가 가고,

내일은 꼭 앉아야지 하다가

일주일이 훅 가버린단 말입니다.


더 이상은 안돼!라는 다짐도

목구멍으로 콸콸 넘어가는 술 한잔과 함께

허공으로 fly!

허허 웃으며 내일은 다르겠지,

나 자신에게 lie!


한 번 안 쓰기 시작하면,  

그래서 쓰지 않고 사는데 익숙해지면,

계속 안 쓸 온갖 핑계가

개똥에 파리 붙듯

달라붙어요.


 

에잇, 저리 가!

날려버릴 힘도 없으면,  

어제를 고대로 카피! 페이스트!

술 한 잔도 고대로 카피! 페이스트!


다음 날 아침,

겨우 몸을 일으켜 변기에 앉아 쉬 소리를 들으며,

가슴을 쾅쾅 칩니다.  

그리고 다짐하죠.


오늘은 꼭 글을 쓰자!

아니, 그저 책상에 앉기라도 하자!  



2. 겨우 책상에 앉았다면, 이제 반은 한 겁니다!


에이, 설마?


그래요, 맞아요. 우리 솔직해지자고요.

이제 겨우 앉아놓고 반은 무슨.


앉아서 제대로 된 글을 쓰는 것은 또 다른,

아주 다른, 몹시 다른 문제죠.


왜냐,

우선 앉았으니 신나게 웹서핑을 하지 않겠어요?

그동안 노트북도 켜지 않고 핸드폰 작은 창으로만 두 눈 찡그리며 돌아다녔던 웹 세상을

이제 커다란 화면으로 누릴 시간이니까요!

광 클릭질로 오른손 손목에 마비 정도 와 줘야,

또 정신을 차리죠.



3. 자, 웹서핑의 파도를 넘어 드디어!

한글 문서를 엽니다.


짝짝짝! 참 잘했어요!!


하지만 텅 빈 머리에서 빈 커서만 깜빡, 깜빡.

뭐하면서 글도 안 쓰고 2주를 보냈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안 나오고,

새하얀 백지에 까만 커서만 얄밉게 깜빡, 깜빡.


(그러게 한글 문서부터 덜컥 열다니,

참 무모합니다.

얄미운 커서에 눈을 흘기며

자연스럽게 맥주를 한 캔 땁니다.)


알코올의 기운으로도

깐죽거리는 커서가 계속 얄밉다면,   

얼른 한글 창을 닫고 작가의 서랍을 열겠죠?


열려라 참깨! 도 안 했는데

케케묵은 글감들이

곰팡내 피우면서 촤르르!! 열렸어요!


와우!


이 놈의 곰팡이를 어째.


곰팡이 핀 식빵에 식욕 떨어지듯,

글 쓰고 싶은 마음도 아마 뚝 떨어질 겁니다.

흐흑.



그렇다고 또 그냥 닫을 순 없죠.

하나를 골라 어디 한 번 잘 다듬어 볼까요?


하지만 그렇게 쓰다가 말았다는 건

무리 없이 이어가기에 찜찜한 구석이 있다는 겁니다.

얼개가 잘못 짜였다거나,

하고 싶은 말이 분명치 않다거나,

다 이유가 있으니 서랍에 처박힌 글들이죠.


이게 다 한글부터 덜컥 열어

다다다다 써 내려갔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 그래야 더 잘 써지는 글도 물론 있지만요.


(서랍에서는 무엇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고

맥주는 꿀떡꿀떡 넘어갑니다.

그렇게 한 캔 더!

아, 오늘이 그런 날일까요?

술 한 잔 마시고 무아지경으로

나도 모르게 걸작을 토해내는 날?)



4. 빈 문서도 자신 없고,

작가의 서랍도 꼴 보기 싫다면,

소중한 메모 노트 펼칠 때입니다.


생각날 때마다 글감들을 차곡차곡 모아 놓은

나만의 황금 노트!


그동안 모아 놓은 글감들이 어수선한 머릿속처럼

아주 어수선하게 펼쳐져 있겠죠?  

거기서 원석을 발굴해 멋진 다이아몬드를?

후, 몰라요, 몰라.


자, 두 눈 부릅뜨고 골라 봅니다.

어떤 글감은 너무 설익었고,

또 어떤 글감은 너무 방대해

무엇부터 쳐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꾸역꾸역 해봅니다.

이 놈 골라 살을 붙였다가

저 놈 골라 가지를 쳐봅니다.


어쩌면 글을 쓰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작업일지도 몰라요.

뭐, 초심으로 돌아가는 건

언제나 좋으니까요.




5. 하지만 초심에서 너무 힘 빼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아닌 것 같다면,  

오늘은 나만의 글쓰기 뮤즈가

얼씬도 하지 않는 것 같다면,


다시 한글 문서를 엽니다!

최후의 수단 되겠습니다!



얄미운 커서를 노려보면서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겁니다.


고등학교 때 다 배웠죠 우리.

전 그게 그렇게 마음에 들더라고요.

줄리아 카메론도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에서

열변을 토했고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의식의 흐름대로

모닝 페이지를 쓰라고!


(지금쯤이면 술도 얼큰하게 올라왔겠다,

의식이 정신줄 놓고 흘러가고 있을 테니

타이밍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복잡하게 생각하고 따지지 말고

콸콸 흘러나오는 생각을

그저 철철 받아 적어요.


일종의 준비 운동이죠.

손가락들이 자판 위치를

잘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오타율도 체크하고,

다시 감을 익히는 과정입니다.


아무 말 대잔치로

조금씩 차오르는 백지를 보며,

내일은 글 다운 글을 쓸 수 있겠지!

헛된 희망을 품는 아름다운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대충 한 페이지 정도 채웠다면!

 

다음날 아침,

너무 많은 쓰레기를 마주하는 참사를 방지하기 위해

이쯤에서 그만둡니다.


물론 손가락들은 신나서 더 춤추고 싶겠지만,

워워.

 

사람은 자고로 멈출 때를 알아야지요.



6. 그리고 폭풍 셀칭! (셀프 칭찬!)


오늘도 수고했다!


벌써 이렇게 많은 글을,

아니, 말도 안 되는 글자들을

퉤퉤 뱉어 놓았구나!


애썼다!

장하다!


이렇게 돈 안 되는 글쓰기에 꼭 필요한 셀프 칭찬을 마구 해주고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한 캔 더는 안 됩니다. 다음날 아침 변기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러면 내일 아침에는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내일의 태양처럼 찬란하게

떠오를 거예요!




정말?

훗, 아님, 말고!



아니라면!

내일 이 모든 과정을

카피! 페이스트! 합니다.

그저 묵묵히 반복합니다.


결국 똥이 되어버릴 음식을 매일 먹어야 하듯,

결국 갖다 버릴 글이라도 매일 써야 합니다.


누가 이기나 매일 하다 보면,

작가의 벽 따위 어느새 훌쩍 낮아져 있을 겁니다.



정말? 과연?

따지고 싶죠?

당연하죠!  


그래도 그냥 믿어요! 믿자고요!



흐르는 의식을 날마다 퉤퉤 뱉어내다 보면

그 글을 마중물 삼아

더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말과 글들이

춤을 추며 콸콸 딸려 나올 겁니다.



그리고 어느새,

원하는 글을 신나게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아직도 옆에 굴러다니는 빈 캔이 있다면,

아! 나는 참 일관성 있는 사람인 겁니다.)




이상, 작가의 벽을 훌쩍 넘어서는

저만의 방법이었습니다!










네, 이게 다 어쩌면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추운 나라에서 오들오들 떨고 계신 분들께

따뜻한 햇살을 보냅니다.




언제나 아름다운 내 마음의 고향,

Ubud, Bali, Indonesia



그리고 Gili Trawangan, Lombok, Indone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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