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우붓에서 밥 먹고 요가할 수 있을까?
발리의 시골 마을 우붓, 많이 들어보셨죠?
발리 공항에서 한 시간, 논길을 달려 북쪽으로 올라가면 소박한 예술가들의 마을 우붓이 나와요.
우붓은 제 고향이에요. 물론 진짜로 태어난 고향은 아닙니다. 제 마음의 고향이라는 뜻이지요.
우붓에서 햇수로 5년을 살았거든요.
지금 중학생인 아이는 그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어요.
번아웃되었던 남편도 우붓에서 많이 회복했고요.
저는 우붓에서 인생 최고의 시절을 보냈답니다.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 책에 다 나와 있어요. 궁금하시면 읽어보세요.
어쨌든, 우붓을 떠난 후로도 틈만 나면 우붓을 찾았는데, (고향이니까 자꾸 가야죠) 마지막으로 우붓에 간 건 작년 12월이었어요. 아직 코로나가 우리를 이렇게 집어삼키기 전이었죠. 오랜만에 다시 찾은 우붓에서 그리웠던 음식도 잔뜩 먹고, 요가도 하고, 산책도 하고, 친구들과 길리섬에도 놀러 갔어요. 즐겁게 놀다 왔지요.
그로부터 6개월쯤 지났으니까 또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이 슬슬 드는데, 지금은 갈 수가 없잖아요.
그때 더 미친 듯 먹고 놀고 올 걸 그랬어요. 하지만 그땐 이럴 줄 몰랐죠.
어디서 읽었어요. 이제 세상은 BC와 AC로 나뉠 거라고. 코로나 이전 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 After Corona로 말이에요. 그만큼 코로나는 우리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거예요. 아니, 벌써 많은 게 달라졌어요. 새로운 생활 방식, 새로운 기준에 적응해야겠지요.
간혹 인스타그램에 우붓 사진이 올라와요. 그래요, 우리는 또 열심히 랜선 여행을 하잖아요.
볼 때마다 가고 싶어요. 사진만 봐도 가고 싶어서 가슴이 막 뛰어요. 가서 오토바이를 타고 막 달리고 싶어요. 친구들과 빈땅 맥주도 부딪히고 싶어요. 요가도 하고 춤도 추고 논두렁도 걷고 수영도 하고 예쁜 가게들도 구경하고 말이에요.
그럼 이쯤에서 상상을 해봐요.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우리도 새로운 생활 방식에 적응했어요.
그쯤 되면 우붓은 어떤 모습일까요? 예전의 우붓이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과연 어떻게 변할까요?
제 가장 큰 걱정은 바로 나시 참푸르 집이에요.
나시 Nasi는 밥이란 뜻이고 참푸르 Campur는 섞는다는 뜻이에요. 말 그대로 밥에 여러 가지 반찬을 섞어 손으로 조물딱 조물딱 뭉쳐 먹는 인도네시아식 백반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손으로 밥을 먹어요. 이건 청결 혹은 불결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다른 문화와 관습의 문제죠. 집에서는 맛있게 요리해서 깨끗한 손으로 잘 먹으면 돼요. 문제는 돈이 오고 가는 가게인데, 손으로 먹는 게 보통이다 보니 가게에서도 주인들이 손으로 담아 줘요. 예전에는 손으로 반찬을 담고 (별로 깨끗해보이지 않는) 행주에 쓱 닦은 다음 그 손으로 돈을 받고, 또 한 번 쓱 닦아 다음 사람 반찬을 담았거든요.
그런 나시 참푸르 집은 이제 어떻게 될까요?
우붓에 살 때는 그렇게 산 밥을 먹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제는 조금 걱정이 되네요. 그 강력한 바이러스의 존재를 알아버렸으니까요. 그들도 이제 위생에 신경을 좀 쓸까요? 비닐장갑을 낄까요? 아니면 집게를 사용할까요? 뚜껑도 없이 진열해 놓던 음식들은 이제 꼭꼭 밀봉해 놓을까요?
제발 어떻게든 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새로운 기준에 재빨리 적응해 계속 나시 참푸르를 팔았으면 좋겠어요. 나시 참푸르 없는 우붓은, 김밥 없는 한국과 같을 거예요. 그건 슬프잖아요.
밥 먹는데 쥐가 휘리릭 지나가던 그 식당들은 어떻게 될까요?
쥐는 왠지 박쥐의 친구 같잖아요. 청결하지 않은 건 맞잖아요. 그래도 태연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변했을 것 같아요. 저부터 그러니까요. 하지만 자연과 경계 없이 뒤섞여 있는 게 우붓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란 말이에요. 벽이 없이 뻥 뚫린 공간, 그 안으로 자연이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는 곳. 그렇게 섞여 있으면 볕도 들어오고, 바람도 지나가죠. 개미도 부지런히 지나가고, 도마뱀도 지나가고, 길고양이도 와서 쉬다가 가요. 그럼 가끔, 아주 가끔 쥐도 지나갈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게 우붓의 매력인데, 아무리 그런 게 우붓의 매력이라도, 쥐는 이제 안 될 것 같아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방을 꽁꽁 막고 방역을 해야 할까요? 그럼 또 우붓은 예전의 우붓이 아니게 되겠지요. 물론 우붓처럼 자연과 하나 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관리를 잘하는 곳이 있겠지요. 이제는 그런 곳이 새로운 기준이 되겠고요. 아무래도 쥐는 안 될 것 같으니, 우붓도 약간의 변화는 감수해야 할 것 같아요.
그 많던 카페와 식당들은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요? 코로나로 인해 관광객들의 발이 묶여 버렸으니, 막혀버린 하늘길을 원망하다가 결국 문을 닫았을까요, 아니면 어떻게든 버티며 사람들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을까요? 아무래도 빨리 가서 확인해 봐야겠어요. 제가 가장 좋아했던 그곳만은 꼭 그대로였으면 좋겠어요.
그 많던 요가원들은 어떻게 될까요?
코로나 이후의 시대, 우붓에는 요가 매트를 돌돌 말아 등에 메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거예요. 요가원에서 제공하는 공용 매트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으려고 할 테니까요. 그보다 먼저, 과연 요가원은 살아남을까요? 우붓이라면 그럴 것 같아요. 이미 사방이 뚫려 있으니 환기를 시킬 필요가 없거든요. 매트 간격을 유지하고, 수업 도중 잡담하지 않고, 갑자기 기침을 해 모두를 놀라게 하지만 않는다면, 평화로운 수업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계속 말을 해야 하는 선생님은 마스크를 써야겠죠. 설마 예전처럼 다닥다닥 매트를 깔라고 하지는 않겠죠? 1회 수업 참여 인원수를 대폭 줄여야 할 거예요. 그건 좋아요. (사실, 너무 다닥다닥 붙어 부담스러운 요가원들도 있었거든요)
빨리 우붓에 가서 요가하고 싶어요. 물론 집에서도 할 수 있지만, 지금 이 글을 쓰는 책상 옆에도 요가 매트가 깔려 있지만, 그래도 우붓에 가서 하고 싶어요. 마룻바닥에 누워 새소리를 들으며 바람을 맞으며 자연의 품에 안겨서 하고 싶어요. 요가로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바이러스를 물리치고 싶어요.
요가원에는 호흡 수업도 있었죠. 가장 위험한 수업이 되어버렸네요. 코로나가 호흡기로 감염되는 바이러스잖아요. 엄지와 새끼로 양쪽 콧구멍을 번갈아 막으며 숨을 쉬는 프라나야마 호흡 수업을 한 번 해봤어요. 다 같이 모여서 큰 소리로 훗훗 콧바람을 내쉬는 수업인데, 지금 이 시기에 그런 수업을 한다는 건, 와우,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호흡은 집에서 각자 연습하는 것으로 해요. 아니면 인터넷으로 배워요. (요즘은 줌 Zoom이 대세인가 봐요)
반대로 명상이나 사운드 힐링 sound healing 수업은 조금 활발해질지도 모르겠어요. (사운드 힐링 수업은 우붓 요가반 the yogabarn과 피라미드오브치Pyramid of chi에서 가능했어요. 요가반은 현재 모든 수업이 중단되었고 피라미드오브치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인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네요)
사운드 힐링은 수업에 들어가 가만히 누워 있으면 다양한 크기의 티베트 주발 Tibetan bowls로 고운 연주를 해줘요. 수업 참가자들은 말을 할 필요도 없고 움직일 필요도 없어요. 깜빡 잠이 들 수도 있어요. 코로나 이후, 그나마 바람직한 수업이 되겠네요.
명상 수업도 괜찮겠어요. 간격만 잘 유지한다면 말이죠.
하지만 명상이라고 다 같은 명상은 아니에요. 고요하고 차분한 (발 저리고 딴생각만 나는) 명상 수업이 있다면, 감정의 동요가 심해지는 명상 수업도 있어요. 이유는 모르지만 펑펑 울게 되는 수업도 있거든요. 하지만 감정의 폭발은 바이러스의 폭발을 수반할 거잖아요. 위험해요, 위험해. 그런 수업은 아직 안 해봤는데, 언젠가 해보려고 했는데, 이제 영영 못 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역시 생각났을 때, 마음먹었을 때 뭐든 해야 해요.
그래요, 마음먹었을 때 뭐든 해야 하는데, 코로나 시대가 그걸 못하게 하네요.
열심히 마스크 쓰고 손 씻으며 이 시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요.
시간이 유난히 천천히 흐르는 요즘입니다.
코로나 이후의 우붓, 상상이 가지 않아요. 그러니 더더욱 가서 확인해보고 싶어요.
크게 바라지도 않아요. 내년에는 우리 어디든 갈 수 있겠지요?
전 우붓으로 갈 거예요. 당신은 어디로 가실 건가요?
어디든 지금 마음속에 품고 있는 곳으로, 내년에는 꼭 가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