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하나 물고 기다려, 이 또한 지나가기를

중 2가 운다.

by 아리




중학교 1학년,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걸어만 다니다가 버스를 타고 다니게 되니 내 세상이 한 뼘 넓어진 느낌이었다.


힘들게 사귄 친구들 중, 매일 같은 버스를 타고 집에 오던 친구가 있었다. 버스로 등하교했던 나와 달리, 친구는 아빠가 번쩍번쩍 빛나는 차로 아침마다 학교에 데려다주었는데, 우리 집이 버스 한 정거장 전이었으니 종종 나를 태워가기도 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둘이 사이좋게 버스를 타고 왔다. 버스에서 자리가 생기면 나는 늘 친구에게 양보했다. 친구가 더 나중에 내리기 때문이기도 했고 (사실 한 정거장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아침에 종종 자가용으로 태워주는 것에 대한 일종의 보답이기도 했다. 그런데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양보하다 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한 번도 나한테 앉으라고 하지 않는 거지?’


그런 상황이 반복되니 점점 속이 불편해졌다. 그렇다고 자리가 생기면 당연히 앉는 친구에게, ‘이번엔 내가 앉을래.’라고 말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점점 얄미움이 쌓여갔다.


어느 날 밤, 식구들이 다 잠든 밤에 홀로 책상에 앉아 편지를 쓰고 있었다. 그때는 문방구에서 편지지 사서 모으는 게 거의 모든 여학생들의 취미였다. 신상 편지지가 나오면 당장 쓸 사람이 없어도 우선 사서 모았다. 그 편지지들 중 하나에 나는 그 친구에게 절교 편지를 쓰고 있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구구절절 얄미움 같은 걸 털어놓은 다음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이제 너랑은 절교야.


어색한 며칠이 지나고 답장을 받았다. 친구의 답장에서 기억나는 건 오직 다음 두 문장이었다.


나는 그렇게 쉽게 단정 짓지 않겠어.

절교라는 말은 하지 않을래.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아니야, 내가 미안해.’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래 좋아! 절교야!’를 기대했을까. 그래도 전자보다는 후자였겠지. 그런데 절대 상상도 못 했던 대답을 들은 것이다.


그리고 너무 질투가 났다! 절교의 중요성 따위 이미 멀리 달아났고, 나는 그렇게 멋진 멘트를 내가 아니라 친구가 쳤다는 사실에 배가 몹시 아팠다.


물론 우리는 절교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절친이 되지도 않았다. 그저 그런 친구 사이로 가늘고 긴 우정을 유지했다.


절교 편지를 쓰던 중학교 1학년의 나는 골방에 혼자 앉아 있었다. 무거웠지만 가족 누구한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이었다.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혼자 끙끙 고민하다 ‘우린 절교야!’라고 외쳤는데, 나의 절교 편지는 친구의 그런 답장으로 아무런 임팩트 없이 흐지부지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니까, 별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엄마 편의점 가는데 뭐 사다 줄까?”


“응, 초콜릿.”


“알았어.”


대답하는 아이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초콜릿이라고 대답하던 목소리도 가늘게 떨렸다. 공부한다고 일찍 제 방에 들어가 있었는데 책상을 보니 공부하기는커녕 전화기만 붙들고 있던 폼이었다. 괜히 내가 긴장해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알았다고 대답하고 나왔다.


혼자 방에서 훌쩍이는 게 벌써 한두 번이 아니다. 한 번 물었다가 나가라는 외침만 들은 이후로 이제는 이유도 묻지 않는다. 친구들 관계 때문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그런 아이를 위해 조용히 초콜릿을 사 오면서 (사실 맥주를 사 오면서) 나는 그때 그 절교 편지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때 나는 참 진지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참 별일도 아니었다. 물론 그만큼 많은 세월이 지난 덕분이겠지. 지금 아이도 그때 그 편지를 쓰던 나처럼 제 앞에 놓인 사건이 엄청나게 크고 무거울 것이다. 세상이 끝난 것 같을 수도 있겠지. 내일 학교 갈 일이 까마득할 수도 있겠고. 하지만 옆에서 별일 아니라고 말해준들 귀에 들어올까. 다 괜찮아진다고 말해준들 소용이 있을까.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스스로 알게 되길 기다리는 수밖에. 그저 아픈 시간을 흘려보내 괜찮아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다 겪어야 할 일이고, 또 지나갈 일이니까. 그래서 혼자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도 반드시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조바심이나 심각한 걱정도 들지 않는다. 나는 그저 코치코치 캐묻지 않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초콜릿을 사다 주는 엄마가 되기로 한다.



친구와 절교를 하든 연애를 하든 엄마는 언제나 맥주, 아니, 네 편이란다.
그러니 달콤한 초콜릿을 먹으면서 기다리렴. 이 또한 지나가리니.
엄마도 너의 시간이 조금은 빨리 흐르길, 그래서 괜찮아지길 기도해줄게.
참, 엄마 품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 그것도 참고하도록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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