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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뭐해?"
"응, 누워서 티비 봐."
"아, 그랬구나!"
라고 콧소리를 내며 대화하는 젊은 커플이 있었어. 둘은 알콩달콩 우당탕탕 연애를 하고 딴따따단 식을 올렸지.
그런데 콧소리를 내던 그녀는 결혼하고 나서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몰라. 지난 대화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리에 펼쳐졌거든. ‘뭐해?’ 하고 물으면 늘 ‘응, 누워서 티비 봐’라고 대답했던 그. 그리고 저게 바로 누워서 티비 보는 모습! 연애할 때는 달콤한 목소리에 취하기만 했지 눈으로 볼 일은 없었는데 결혼을 하고 보니 누워서 티비 보는 모습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진 거야. 그리고 그게 그렇게 복장 터지는 일인 줄은 달콤한 목소리만 들을 때는 정말 몰랐고.
그녀는 눈앞에 캄캄했어. 저걸 어쩐다? 혼수로 텔레비전을 마련한 손등을 내려찍고 싶었지. 텔레비전 없이 십여 년 가까이 살다가, 남들 다 사니까 아무 생각 없이 얼레벌레 샀던 건데, 좁은 신혼집 거실(인지 부엌인지)에서 울려 퍼지는 티비 소리가 그렇게 귀에 거슬릴지 몰랐던 거야.
아이를 키우면 할 일이 얼마나 많아. 집 안 청소는 물론 밥 먹은 설거지에 기저귀 빨고, 젖병도 씻고, 이유식 재료도 준비해야 하고, 아기 빨래도 개야 하고 등등. 그런데 그는 그 모든 걸 ‘이것만 잠깐 보고' 하겠다며 그녀를 더 화나게 했지. (아, 그때는 무슨 프로그램이든 지나가면 쉽게 보기 힘들었던 시대!)
게다가 그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예능이었어. 그러니까 긴장감을 조성한답시고 결과를 재깍재깍 안 보여주고 이 사람 반응 저 사람 반응 하나씩 보여주면서 감질나게 만드는 그런 프로그램들. 성질 급한 그녀의 화딱지를 돋우기에 안성맞춤인 프로그램이었지. 게다가 보이지도 않는 방청객들 웃음소리는 왜 삽입하는 건데! 안 그래도 심란한 귀에 그 웃음소리는 그녀를 부글부글 끓게 만들었어.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 신혼부부는 오른 전셋값을 마련할 길이 없어 시댁에 들어가 살게 되었지. 연로하신 부모님과 함께. 당연히 거실에 티비가 있는 아파트였어. 그리고 그 티비를 치우는 건 그녀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였어. 집이 대궐처럼 넓은 것도 아니었고 아버님은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켜 놓고 지내시는데 심지어 귀가 어두우셔. 그래서 가끔 식사를 하러 그 집에 가면 그 큰 티비 소리에 혼이 쏙 빠지곤 했거든. 그런데 그 집에 함께 살아야 한다고?
그래서 그녀는 용감하게 들이댔어. 거실 티비를 방으로 옮겨주시라고. 물론 그를 통해 말했지. 핑계는 아이. 아이가 아직 티비 볼 나이가 아니니 이해해 주시라며.
시부모님은 흔쾌히 그러마 해주셨어. 그리고 티비는 안방으로 들어갔지. 그리고 그녀는 시댁 아파트 거실을 서재로 만들어 버렸어. 벽면 전체를 책장으로 만들어 신나게 아이 책을 사들였어. 물론 티비를 보고 싶으면 부모님이 안 계실 때 슬그머니 들어가 보기도 했고, 아이가 볼 만한 프로그램을 틀어주기도 했지. 그렇게 살다 보니 누워서 티비보는 것보다 더한 장면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바로 아버님이 누워서 티비를 보다 잠드시는 거였어. 그럼 까치발로 들어가 몰래 티비를 끄는 것도 내 일이었어. 티비는 방에 있지만 소리는 거실까지 넘실넘실 넘어오잖아. 재밌게 보고 계시면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들어주는 귀도 없이 허공에서 넘실대는 그 소리는 참을 수 없었거든.
앗, 그와 그녀의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은근슬쩍 내 이야기가 돼버렸네. 맞아. 내 이야기야. 물론 다들 알고 있었겠지만. ㅋ
어쨌든 그, 아니 남편에게 휴식은 무조건 누워서 티비 보는 거야.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역시. 그리고 그러다 잠이 드는 것. 역시 부전자전! 그럼 나는 속으로 부글부글 외치지. ‘아니, 수면이 얼마나 중요한데! 졸리면 리모컨으로 버튼 한 번 누르면 되는데 그걸 안 하고! 저렇게 전자파와 함께 자면서 맨날 피곤하네 어쩌네!’
물론 나도 재밌는 드라마는 좋아해. 다만 다른 일을 하면서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틀어놓는 걸 싫어할 뿐! 유난히 시끄러운 예능을 싫어할 뿐! 틀어놓고 자는 걸 싫어할 뿐! 보고 싶은 게 있으면 그 시간에 틀어서 딱 보고 끄는 게 좋아. 그래서 보고 싶은 드라마가 생기면 시간을 기억했다가 티비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보곤 했는데, 갑자기 바다 건너 발리에 살게 되면서 그것도 불가능하게 되었지.
다행히 우리에겐 유튜브가 있었어. 방영되는 드라마 한 편을 3분의 1씩 잘라 올려주는 채널도 있었고, 한 편을 짧게 요약해서 보여주는 채널도 있었지. 그런데 그런 채널의 문제는 9회까지는 잘 보여줘 놓고 10회부터는 또 아무리 검색해도 안 나오는 거야. 그럼 얼마나 화가 나던지. 그렇게 조각조각 봤던 게 <태양의 후예> 같은 것들이었어.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흘러 바야흐로 넷플릭스 시대가 도래했어. 언제 어디서든 너무 편하게 그 모든 걸 볼 수 있게 된 거지. 이제 유튜브 나라를 방황할 필요가 없어진 거야. 그래서 그녀, 아니 나는 넷플릭스 세계에 속절없이 출구 없이 빠져들어 버렸지. 그리고 어느새 거실에는 티비가 떡하니 들어와 앉아 있네.
요즘은 거실에 앉아서 티비로 보던 드라마를 설거지하면서 폰으로 이어 보지. 그러다 이제 설거지할 때 아무것도 보지 않으면 약간 억울한 느낌까지 들게 되었어.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줄이야!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누워서 티비 보는 그 모습을 그렇게 싫어했던 내가, 이제 누워서도 보고 일하면서도 보고 설거지하면서도 보고 운전하면서도 봐. 심각해. 그리고 친구가 전화해서 뭐 하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지. ‘응 누워서 티비 보고 있었어.’
세상에나 만상에나. 살다 보면 말이야. 내가 뭘 싫어하다 좋아하게 될지, 뭘 좋아하다 싫어하게 될지 모르는 거더라고. 내가 갑자기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나는 이런 사람이다 함부로 재단하면 안 되겠더라고.
물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그들도 언제 변할지 어떻게 알아. 그러니 상대의 싫은 모습도 너무 싫어할 필요 없겠어. 상대가 언제 바뀔지도 모르고 또 그 모습이 바로 미래의 내 모습이 될 수도 있으니까. 아닐 것 같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
자,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보자. 가장 싫은 모습이 뭐야? 괜찮아. 너무 싫어하지 마. 일 년 후 내가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니까? 혹시 아이가 있다면 아이한테도 싫은 모습이 있어? 아유, 아이들이란 어른들보다 얼마나 더 빨리빨리 변하는 존재인데! 그러니 너무 싫어할 필요 더더욱 없어. 내일이라도 달라질 수 있는 게 아이들이잖아. 흠, 이건 양말을 뒤집어 벗어 놓거나 여기저기 바지로 허물을 벗어놓는 고등학생 모습이 영영 계속될 것 같아 복장이 터지는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똑같은 것 같지만, 5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해 보면 또 훌쩍 다른 사람이잖아. 물론 좋은 방향으로 다른 사람이 되면 좋겠지. 특히 아이들의 경우에는! 하지만 나처럼 별로인 방향으로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니, 당신도 정신 차리고 당신의 오늘을 살펴보길 바라.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어떤 모습을 나도 모르게 닮아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니라면 다행이고!
요즘은 말이야. 그가 누워서 티비를 보고 있으면 나도 슬그머니 옆에 누워. 그러다 그가 "요즘 드라마는 5회 정도에서 꼭 재미가 없어져!"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단 말이야. 그러면서 물어. "티비 꺼줄까?" 그럼 내가 "아니 괜찮아." 하면서 반은 졸음에 잠겨 말을 하지. 이제 심지어 자면서도 티비를 본다니까 글쎄. 왠지 생활 소음이 있어야 잠이 더 잘 올 것 같고. 낮잠은 특히 침대 말고 소파에서 티비를 보면서 자야 할 것 같고. 웃기지. 그렇게 소파에 누워 가르렁가르렁 티비를 봤다는 말씀. 아유, 징글징글 그놈의 티비. 너무 좋지 않아?
*'티비'의 표준어는 '티브이' 혹은 '텔레비전'이나 입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티비'를 사용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