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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Aug 28. 2024

대학 가면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야?



시드니 온 김에 대학 탐방. 

이십 년 전, 근처에 살면서도 한 번도 못 가봤던 시드니 대학교에 아이 덕분에 와 본다. 

오래된 건물들 사이를 걸으며 아이에게 툭 던져 본 질문 하나. 



대학은 왜 가야 할까?


당연히 가야지.


왜 당연해? 


안 가면 뭐 해? 


그러게. 대학에 가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가 쉽진 않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대학 아닌 길이 확실히 보였던 게 아니라면 말이야. 엄마도 물론 당연히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왕 갈 거면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야 행복해진대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막상 대학에 가보니 행복은 개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는 거야.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이런 고민만 하다가 4년이 지난 것 같아. 어쩌면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졸업 후 시드니로 왔는지도 모르겠고. 완전히 다른 곳에 가보면 다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왔더니 정말 많이 다르더라. 사는 모습이 다 제각각인 거야. 우리처럼 한 가지 목표를 향해 한 줄로 서서 경쟁하는 게 아니라. 신선했지. 꼭 대학에 가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이 많더라고.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걸 삶의 실패로 여기지 않고 즐겁게 잘 사는 것 같더라고. 


그래? 



아이는 무슨 말인가 싶은 표정이다. 이제 일 년 후면 학교를 졸업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뛰쳐나갈 아이의 귀에 그런 말이 썩 들어오겠나. 싱가포르, 한국, 호주, 영국 등 어느 나라로든 갈 수 있을 것 같고 어디서든 즐거울 것 같을 테니. 


하지만 그 많은 가능성은 결국 가능성일 뿐. 어쩌면 삶은 딱 그즈음 우리에게 변화구를 던진다. 지금껏 내 삶을 내가 이끌어온 것 같은데 갑자기 삶이 내 멱살을 잡아끌고 가는 듯한 느낌이랄까. 내가 가고 싶은 대학과 나를 뽑아주는 대학의 차이만큼 삶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일이 년 뒤 어디서 무슨 공부를 하고 싶다는 바람은 있지만 과연 실제로 어디서 어떤 공부를 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 한국으로 간다면, 호주에서 살게 된다면, 만약 싱가포르라면. 


다행히 날씨가 많이 춥지 않았다. 가볍게 입고 햇살이 보듬어주는 교정을 걷는다. 아직 방학이라 학생들보다 사진 찍는 관광객이 더 많다. 의과대학 건물이 열려 있길래 들어가 보았다. 천장이 낮은 오래된 건물이다. 복도 벽의 아르키메데스 부조. 벽에 붙은 각종 사진과 정보들. 다락방으로 이어지는 듯한 조그만 계단 끝 방들. 2층으로 올라가니 알코올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해부학 교실. 그리고 그 옆의 철제 침대. 여기에 누군가 누워 있었겠지. 그 주위로 학생들이 흰 가운을 입고 둘러서 있었을 테고 누군가는 메스를 들고 누군가는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구역질을 하러 달려 나가기도 하고. 그렇게 텅 빈 건물을 상상으로 채워가며 가만히 걸었다.  


구글에서 시드니 대학교를 검색하면 나오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쿼드랭글 시계탑. 관광객들은 그 푸르른 잔디밭에 다 모여 있다. 우리도 덩덜아 사진을 찍고 또 걸으며 물었다.



대학 가면 가장 해보고 싶은 게 뭐야?


도서관에서 리포트 쓰기!


아니, 그렇게 공부가 좋아? 너도 참 신기하다. 그게 다 엄마 덕인줄 알아. 어릴 때 마음껏 놀게 해 줬으니까 지금 공부도 하고 싶은 거야. 동의하지? 


응!


그럼 조금 더 넓게 생각해 볼까? 꼭 대학 생활뿐만 아니라 너의 20대를 어떻게 보내고 싶어? 


나의 20대? 글쎄 그건 너무 광범위한 질문인데? 


그럼 이렇게 물어볼게. ‘청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뭐가 생각나?  


파티?


파티? 그럴 수 있지. 파티도 해야지. 그런데 도서관 리포트와 파티는 너무 극과 극 아니야? 둘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그래도 균형을 잘 잡는 편인 것 같아. 엄마 생각은 어때? 


그래, 그런 편인 것 같아. 지금도 공부면 공부, 연애면 연애, 다 잘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렇다면 그 비결이 뭐라고 생각해? 


비결? 글쎄. 나는 공부 욕심도 있고 또 피플 플리저people pleasure 성향도 있잖아. 그래서 공부도 해야 하고 사람들 신경도 써야 하고 둘 다 잘 해낼 수밖에 없어. 해야 하니까 어떻게든 하게 되는 것 같아. 


그렇구나. 엄마는 공부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는데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공부는 나의 길이 아니란 걸 깨달았어. 하라는 공부도 어려웠고 하고 싶은 공부가 따로 있긴 했는데 그것도 역시 어려웠고. 그렇다고 신나게 놀았냐? 그럴 성격도 아니었지. 그래서 방황을 많이 했어.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런 마음으로. 덕분에 나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지. 살다 보니 그것도 중요한 거더라고. 그래서 엄마는 너도 자신을 잘 아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어. 자신의 장점과 단점, 넘치는 것과 부족한 것, 나를 기쁘게 하는 것과 힘들게 하는 것 등을 지금 네 나이 때, 그러니까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기 전 아직 부모 품 안에 있을 때 실컷 고민하면서 알아갔으면 했지. 나중에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야 할 때 자아를 찾는다고 방황하지 않도록,  엄마처럼 다 늦게 사춘기를 겪지 않도록 말이야. 그래서 스스로 균형을 잘 잡는 편인 것 같다는 네 말이, 너를 충분히 알고 있다는 말 같아서 엄마는 참 좋다. 






다음은 라이트레일을 타고 도착한 뉴사우스웨일스 대학교. 건물들이 정해진 구역 안에 모여 있으니 더 캠퍼스다운 느낌이 난다. 학기가 막 시작되었는지 잔뜩 상기된 얼굴의 학생들이 가득하다. 새내기예요,라고 얼굴에 쓰여 있는 학생들이 깃발을 든 선배들을 두 줄로 따라간다. 잔디밭에는 각종 동아리나 모임에서 부스를 마련해 놓고 무언가를 알리거나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다. 


그들에게서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오래전 낯선 도시 서울에서 마음 붙일 곳을 찾아 캠퍼스를 떠돌던 내 모습이, 어느새 선배랍시고 목청 높여 신입생들을 맞이하던 내 모습이 말이다. 


그러다 곧 그 자리에 나 대신 아이를 넣어본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책을 가슴에 품고 학교 로고가 박힌 후드를 입고 이제 좋아하는 공부를 실컷 할 수 있다는 신나는 표정이겠지. 아이에게 이곳이 꽤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십 년 동안 자라면서 많은 사람과 환경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절이 바로 4년 동안의 대학생활이었고 그 4년만큼의 영향을 끼친 시절이 바로 시드니에서 보냈던 일 년이었다. 그러니 지금 내 옆에 서 있는 이 아이를 보면 상상하게 된다. 엄마 품을 떠나면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더 자랄 것인가. 내가 키운 이십 년의 세월보다 앞으로 몇 년의 세월이 아이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칠 텐데 그러면서 얼마나 더 멋진 사람이 되려나. 기대된다. 지금은 상상하지도 못할 그 모습이. 


줄지어 걷는 학생들을 보며 아이에게 말했다. 


너도 여기 학생인 척하며 따라다녀봐! 건물 안도 다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싫어!


대신 커피를 한 잔 사서 건물 계단참에 앉아 삼삼오오 모여있는 학생들을 구경한다. 어쩔 수 없이 또 그리운 대학 시절을 떠올리고 있는데 아이가 가차 없이 현실로 소환한다. 


엄마는 지금 명찰 하나만 있으면 딱 교수님 같아. 옷차림도 그렇고. 


하하. 그래? 학생인 척은 아무래도 안 되겠지? 



건물에서 한 무리의 학생이 나오고 잔디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던 한 무리의 학생이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고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진짜 청춘들 틈에서 (다가올) 아이의 청춘과 (지나간) 내 청춘이 만나 도란도란 즐거웠다. 


자, 그럼 이제 슬슬 집에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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