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 오페라하우스나 블루마운틴이 아니라 바로 내가 살던 집이었다면, 두 번째로 가보고 싶었던 곳은 워킹홀리데이 시절 오래 일했던 호텔, 홀리데이 인 달링하버였다. 구글맵을 펼쳐보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트램을 타고 차이나타운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아이가 묻는다.
어떻게 거기서 일하게 된 거야? 한국에서 일을 구해서 왔어?
아니, 여기 와서 찾은 거지. 처음에는 어학원에 한 3개월 다녔나? 그런 다음 집 구할 때처럼 신문 보며 일일이 전화하고 찾아가서 면접 보면서 일자리를 구한 거지.
와, 그걸 어떻게 다 했어?
어떻게 다 하긴.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 학원 다니면서 돈을 쓰기만 했으니까 이제 벌어야 하는데 처음엔 영어도 썩 못하고 자신감도 없어서 쉽지 않았어. 한 번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면접을 보러 갔더니 와인 따르는 법을 아냐고 묻더라고. 당연히 몰랐는데 안다고 했나 모른다고 했나 잘 생각이 안 나네. 아르바이트도 쉬운 게 아니구나 생각했지. 노스 시드니에 있는 초밥집에서 하룻저녁 초밥을 만들기도 했어. 하루 딱 해보니 거기는 아닌 것 같더라고. 시드니까지 와서 한 평도 안 되는 부엌에서 김밥만 말고 싶지 않았거든. 손님들하고 이야기도 하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있었으면 좋겠고. 그리고 또 어디에 가봤더라. 맞다! 시급이 엄청 좋은 곳이 있길래 전화를 했더니 여기가 어떤 레스토랑인지 아냐고 묻더라. 글쎄 란제리 레스토랑이었던 거야. 꺅! 그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어쨌든 그래서 마음에 맞는 일 구하기가 너무 힘든 거야. 한국 식당은 급여도 적었고 영어 공부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쳐다도 안 봤는데 시간이 하염없이 흐르니까 결국 뭐라도 붙잡게 되더라고. 그래서 그때 한국 사람들이 애용하던 사이트에 들어갔어. 거기도 구인구직 정보가 많았거든. 그런데 거기서 딱 눈에 들어온 일자리가 하나 있었지. 주말 벼룩시장에서 음식을 만들어 파는 일이었어. 한국인 언니가 하다가 한국에 돌아간다고 대신 일할 사람을 구해놓고 간대. 호주인 주인아저씨가 한국 사람들을 좋아한다면서 말이야. 그래서 당장 전화를 했지. 내가 하고 싶다고. 면접을 보러 오래. 그 면접을 봤던 곳이 바로 홀리데이 인 달링하버 1층에 있던 펍이었어. 왜 이런데로 오라고 하지? 혹시 이상한 사람일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유쾌하게 말이 잘 통했어. 그렇게 아침부터 슬롯머신을 하며 맥주를 마시던 존 아저씨와 함께 일을 하게 된 거지. 우선 토요일 하루라도. 그리고 주중 일자리는 더 찾아볼 생각이었는데 존 아저씨가 일 잘한다고 엄마를 호텔에 소개해 준 거야. 호텔 주인과 무슨 관계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암튼 존 아저씨 덕분에 그 호텔에서 일하게 된 거지. 정확히 말하자면 호텔 레스토랑에서. 앗, 그런데 왜 호텔이 안 보이지? 분명히 여기쯤인데? 지도에도 여기라고 나오는데 왜 없지?
그렇게 그 근처를 뱅뱅 돌았다. 분명 그 자리라고 생각했던 곳에는 다른 호텔이 떡 하니 서 있다. 구글맵에도 분명 이 자린데!
여기 아니야? 아이가 말한다.
여긴 다른 호텔이잖아.
이름이 바뀐 거 아니야?
그런가? 구글맵에는 그대로 있던데? 근데 딱 이 자리긴 해.
이 호텔로 바뀐 거 같아. 들어가 보자.
직원일 때는 늘 직원 전용 뒷문으로 드나들었기 때문에 호텔 정문으로 들어가는 느낌은 낯설었다. 들어가 보니 왼쪽에 식당이 있다. 저녁 영업은 안 하는지 굳게 닫혀 있는데 유리문에 고개를 박고 어두컴컴한 안을 들여다보니 어렴풋이 보이는 식당의 실루엣이 분명 맞다. 뷔페바의 위치도, 테이블과 의자도 그대로인 듯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리셉션도 손님들이 앉던 소파 위치도 그대로다. 그때 아이가 날 부른다.
엄마 이것 좀 봐!
커다란 광고판이 서 있는데 뭐라고 쓰여 있냐면,
홀리데이 인이 푸르마 호텔로 거듭납니다!
이름이 바뀐 게 맞았다. 그것도 며칠 전, 우리가 시드니에 도착한 바로 그날부터. 이럴 수가! 안타깝게 며칠 차이로 나의 홀리데이 인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사실 안 사라졌대도 그 초록 간판을 보며 잠시 좋아하는 것 말고 딱히 할 일은 없었겠지만.
리셉션 오른쪽에 존 아저씨가 맥주를 마시던 펍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는데 그곳은 막혀 있다. 손님들이 아침부터 빅토리안 비버나 투이스 뉴를 마시며 쨍그랑 쨍그랑 슬롯머신을 하던 펍은, 양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새빨간 크랩을 먹는 손님들의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계속 보여주는 해산물 식당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름하야, 보일링 크랩.
아이가 아까 주변을 빙빙 돌 때 말했었지. 아, 여기 맛있겠다. 이거 먹고 싶어!
하지만 저녁은 나중이고 지금은 우선 그때 드나들던 직원 전용 뒷문을 구경하고 싶다. 새벽부터 바지런히 걸어 도착하던 곳. 무거운 문을 열고 들어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이름표를 달고 부엌을 거치면 레스토랑으로 나갈 수 있었다. 아침 식사 용 머핀이나 크루아상들이 커다란 철제 트레이에 가득 놓여 있었는데 배가 고픈 직원들이 한두 개는 슬쩍해도 눈감아 주었다.
양손에 티팟을 들고 테이블마다 다니며 커피나 차 드시겠습니까?라고 묻다가 손님들이 일어선 자리의 빈 접시를 치웠고 뷔페바를 담당하는 날에는 음식이 동나기 전에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 주방장에게 외쳤다.
Jonior! (당시 함께 일하던 주방장의 이름) More fruit please!
그렇게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해 점심때가 되기 전에 일을 마친다. 일이 끝나면 중천에 뜬 햇살을 받으며 슬렁슬렁 걸어 집에 오거나 시내에 있는 서점 다이목스에 가서 책을 사고 오페라하우스를 구경하러 가거나 달링하버에 앉아 커피도 마셨다. 그러다 토요일이 되면 존 아저씨의 벼룩시장에서 하루 종일 베이컨 앤 에그롤과 소시지롤을 팔고 일요일에는 밀린 빨래를 하고 뒷마당에서 밀크티를 마시며 쉬는 일주일의 루틴이 만들어졌다.
호텔 뒷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어느새 해는 져서 어두컴컴하고 사람도 없다. 나야 익숙한 길이니 겁 없이 걷는데 아이는 살짝 무서운 듯 팔짱을 낀 걸음이 빨라진다.
짜잔! 여기야! 엄마가 드나들던 문.
보는 둥 마는 둥 걸음을 재촉하는 아이에게 말했다. 괜찮아. 천천히 가도 돼.
그래도 무서워. 누가 쫓아오면 어떡해.
그러다 뒷골목이 끝나는 모퉁이에서 아이가 말한다!
잠깐만! 여기 좀 봐!
예전에 홀리데이 인 달링하버의 펍이었지만 지금은 보일링크랩이 된 식당의 유리창 구석에 홀리데이 인의 로고 H가 생뚱맞게 하나 남아 있다.
와, 이게 하나 남아 있네! 나 보라고 이거 하나만 남겨놨나?라고 농담을 하며 아이에게 물었다.
그래서 진짜 저걸 먹자고? 크랩이라면 여행 끝나고 집에 가서 먹는 게 훨씬 맛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먹고 싶어!
그래, 그러자. 그 시절 펍 그대로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바뀌긴 했어도 같은 공간이긴 하니까. 들어가서 가장 저렴한 (하지만 한 끼 치고는 몹시 비싼) 2인 메뉴를 시켰다. 장례식장처럼 하얀 종이가 테이블 전체에 깔려 있었고 접시도 아닌 김장 봉투 같은 곳에 담아 온 요리가 그대로 테이블 위에 부어졌다. 양손에 장갑을 끼고 맥주도 두 잔 시켜 짠 하면서 맵지도 않은 해산물을 부지런히 까먹었다. 홀리데이 인의 추억을 까먹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잘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누워 아이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여행 중 가장 좋았던 게 뭐였어?
보일링 크랩!
그게 그 정도였다고? 오페라하우스보다? 대학탐방보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솔직히 그 정도 맛은 아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아이에게는 최고의 경험이 되었나 보다. 그렇게 자기 취향을 만들어가겠지. 어릴 때는 나의 입맛과 비슷하게 길들여졌다면 지금은 조금씩 자기만의 노선을 찾아가는 중인 것 같다. 같은 걸 먹고 같은 걸 듣던 시절을 지나, 서로 다른 음식을 좋아하고 다른 음악을 듣는 시절을 거쳐, 감히 내가 범접할 수 있는 자기만의 우주를 만들어가겠지. 보일링 크랩도 그 우주의 한 점이라면 비쌌던 가격도 눈감아줄 만하다. 그 돈을 내고 먹었는데 둘 다 배가 안 차서 오는 길에 먹을 걸 더 포장해 왔다는 사실은, 그래 잊자. 그냥 잊고 너의 취향을 응원할게. 다가올 너의 빛나는 청춘 시절에 반짝이는 너만의 취향을 잔뜩 만들어가길. 굿나잇, 마이 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