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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Aug 21. 2024

내가 살던 집에는 지금 누가 살고 있을까?

11 Hugo street, chippendale, NSW

(3화에서 계속) 


시드니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 어제 코울스에서 사다 놓은 빵과 치즈와 햄으로 샌드위치를 만들고 커피를 내렸다. 추울 것 같아 속을 평소보다 든든히 채웠는데 다행히 어제보단 덜 춥다. 쨍한 햇살을 맞으며 프린스 알프레드 공원을 가로질러 걷는다.


여행일정표를 꼼꼼하게 짜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보고 싶은 곳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에 가는 길이다. 


바로 이십 년 전 워킹홀리데이 시절 내가 살던 집. 

아직 주소도 정확히 기억나는 집. 

11 hugo street, chippendale, NSW. 


큰길을 따라 걷다가 골목으로 들어서는 사거리에 이르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예전에 살던 집에 가보는 것뿐인데 쓸데없이 방정맞게.


짜잔! 


숨을 크게 들이켠다. 그 집이 거기 그대로 우뚝 서 있다. 아이보리색 페인트는 파스텔톤의 초록으로 바뀌었고 깔끔했던 갈색 대문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누군지 모를 수가 없는 뽀글 머리 아인슈타인 아저씨. 그리고 쓰여있는 글귀 Love is the answer!


누가 살고 있을까? 페인트칠은 언제 했고 그림은 왜 그렸을까? 그때처럼 젊은이들의 플랫일까? 아니면 어느 예쁜 가족이 살고 있을까? 내가 쓰던 방은 어떻게 꾸며져 있을까? 


창밖으로 내다보이던 뒷마당은 그대로일까? 볕 좋은 날 빨래를 널던, 밀크티를 한 잔 타서 별을 보던, 이 집을 떠나기 전 친구들을 불러 페어웰 파티를 하던 그 뒷마당은? 누군가 예쁘게 가꾸고 있을까 아니면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을까? 빨래를 말려주던 볕이 여전히 들어올까, 밤마다 별들은 꾸준히 찾아올까, 불꽃놀이 스틱을 흔들던 마지막 파티의 밤을 뒷마당의 그 새까만 흙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


그 당시 집 구하는 방법은 이랬다. 

우선 신문이 한 부 필요하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 


두툼한 그 신문의 뒷부분에 집을 구하고 내놓는 사람들의 광고가 실린 면이 있다. 볼펜을 들고 작은 네모칸 광고를 하나씩 읽으며 적당한 조건의 집이 나오면 동그라미를 친다. 그리고 전화기를 든다. 아, 물론 핸드폰이 아니라 집전화다. 집전화를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이 눈치가 보이면 공중전화로 간다.   


여보세요. 

신문 보고 전화했어요. 방 구하려고요.  

언제 올 수 있어요. 

내일 오후에 갈 수 있어요.  

좋아요.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렇게 약속을 잡고 많은 집들을 보러 다녔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집은 딱 두 집뿐. 


첫 번째는 하루종일 소파에 앉아있을 것만 같은 카우치 포테이토 할아버지의 음침한 집. 

그리고 두 번째 집이 바로 내가 살게 된 집이다. 그 집에 살기로 한 건 앤디 아저씨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신문 보고 연락드렸어요. 플랫메이트 구하신다고요. 한 번 찾아가서 집을 봐도 되나요?

아 그럼요. 당연하죠. 와서 봐요. 레드펀 역에서 내리는 건 알죠?

네 알아요. 역에서 먼가요?

아니, 가까워요. 그런데 역 바로 앞의 골목으로 들어오지 말고 찻길 옆의 큰길을 따라 조금 돌아오는 편이 나아요. 그 지역은 뭐랄까 조금 위험하니까요.

네? 위험하다고요? 

그렇게 위험한 건 아니에요. 큰 길로만 오면 아무 문제없어요. 

네 알겠어요. 


굳이 위험하다는 동네에 집을 구해야 하나 싶었지만 시내 어디든 걸어 다닐 수 있는 위치가 너무 좋았다.


띵동

어서 와요. 반가워요. 나는 앤디라고 해요. 


사람이 뭔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따진다고 생각하지만 (물론 그럴 때가 더 많겠지만) 사실 한두 가지 단순한 이유가 선택의 결정적 토대가 되기도 한다. 그 집도 그랬다.  


집 구경을 마치고 문 앞에 서서 앤디 아저씨와 마지막 대화를 나눌 때였다. 따사로운 햇빛 아래서 조그만 물컵을 들고 어떻게 시드니에 오게 되었는지,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했던 말. 


Would you like me to top up your glass? 


바로 그 문장 때문이었다. 시드니 워킹홀리데이의 가장 큰 목적은 영어공부였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알았다. 바로 이 집이다. 이 집에 살아야 영어가 늘 것이다.


조금 더 생각해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제가 이 집에 살고 싶어요. 당장 들어오면 되나요? 

아, 그럼 우리끼리 한 번 이야기를 해볼게요. 하루이틀만 기다려 줘요. 

네??? (이런, 나만 결정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 집이 아니면 내 시드니 생활은 망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기분으로 꼬박 하루를 기다렸다. 그리고 전화를 했다. 


우리는 당신과 함께 살기로 했어요. 우리 집에 오게 된 걸 환영해요!


그렇게 그 집에 살게 되었고 나의 예감은 적중했다. 카우치 포테이토 할아버지의 집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었을 살아 있는 영어를 나는 그 집에서 배웠다. 앤디 아저씨 덕분에 해볼 수 있었던 다양한 경험은 덤. 


가장 큰 창이 있고 가장 넓기도 한 2층 방에 살며 그 집 세입자들을 관리하던 앤디 아저씨는 연극을 하고 간간히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출연하는 배우였다. 대사를 외워야 한다며 나에게 대본을 주고 상대 대사를 읽어달라고 하기도 했다. 앤디 아저씨를 따라 소극장 공연도 보러 다니고 나중에는 오페라하우스에서 하는 친구들 공연에도 나를 초대했다. 


그리고 뒷마당이 내려다보이는 2층의 작은 방에는 늘 형광 조끼를 입고 출퇴근하는 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뉴질랜드 옆의 어느 섬나라에서 온 아저씨는 매일 새벽에 나가 저녁 늦게 들어왔다. 


그리고 3층의 큰 방에는 시드니 대학교에 다니는,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던 여학생이 살았다. 나이가 엄청 많은, 하지만 딱히 일도 하지 않는 덴마크 남자친구를 종종 데려오더니 나중에는 아예 집에 들여 먹여 살리는 눈치였다. 


마지막으로 뒷마당이 보이는 3층 작은방이 내 방이었다. 나는 그 방에 살며 매일 아침 학원에 가서 공부를 했고 나중에는 호텔로 출근을 했고 마지막에는 호텔을 그만두고 여행을 다녔다. 그렇게 십여 개월을 살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의 취지에 정확히 들어맞는, 알뜰히 공부하고 일하고 여행했던 일 년이었다.



띵동 해볼까? 


그래서 뭐 하게? 


스몰톡 하지! 나 여기 살던 사람인데 집 좀 구경시켜 줄 수 있냐고.


아니, 엄마 그런 사람이었어? 


하하하, 그럼! 그런 사람이었지. 물론 네가 보는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겠지만, 너를 낳기 전에는 엄마도 지금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단다. 아니, 적어도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단다. 특히 여기 시드니에서. 그때 엄마가 마음에 새기고 살았던 말이 뭔지 알아? 


뭔데? 


배우처럼 살자. 될 때까지 되게 하라는 말 들어봤어? 그런 척하면 실제로 그런 모습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고 하잖아. 엄마가 그때 그랬어. 명랑하고 적극적인, 그래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같이 놀고 여행 다니면서 영어도 많이 배우는, 그런 외향적인 사람의 역할을 맡았다 생각하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지. 내향인 입장에서는 쉽지 않았지만 살면서 한 번은 그렇게도 살아보고 싶었어. 그래서 오랜 연습 끝에 조금은 그런 사람이 되기도 했지. 어쨌든 그땐 그랬는데, 아무래도 똑똑은 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나 혼자였다면, 옆에 아이가 없었다면 아마 문을 두드렸을 것 같다고. 도저히 궁금해서 그냥 갈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집에 아무도 없다면 집 앞 공원에서 누군가 그 집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려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어차피 가방에 책은 많고 날씨도 그다지 춥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가 ‘엄마다운’ 행동에서 벗어나는 걸 싫어하는 편. 그러니 다음 기회에. 


물론 다음 기회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아쉽지 않게 돌아선다. 그런 나이가 되었다. 지금 저 문을 두드려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어떤 재밌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냥 가냐고 생각하는 게 이십 대라면, 저 문을 두드리거나 두드리지 않거나 큰 차이는 없다는 사실을, 두드려보지도 않아도 알고 있는 게 사십 대일 것이다. 


길 건너에서 대문을 바라보며 사진을 한 장 찍는다. 저 집을 떠날 때도 바로 이 자리에서 사진을 찍었지. 이십 년 만에 돌아와 같은 자리에 섰다. 배우처럼 살려고 애쓰다가 다행히 조금은 새로운 내가 된 그 집 앞에서, 흰머리가 피어나고 주름이 자리 잡은 사십 대의 내가, 나조차도 늘 새로웠던 이십 대의 나를 만난다.


처음 조리를 신고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가 너무 아파 절뚝거리며 걷던 나. 새벽같이 앞치마를 챙겨 들고 호텔로 출근하던 나. 매일 퇴근길에 감자칩을 한 봉지씩 먹어 아주 오동통해졌던 나. 그래도 밝고 명랑했던 나. 집에 오면 중고 가구점에서 산 커다란 책상에 앉아 공부하던 나. 영어책과 신문을 읽고 라디오를 들으며 새로 배운 단어를 노트에 열심히 정리하던 나. 어쩌면 시드니에 와서야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 나.


그리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한두 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이 있다. 출산과 육아를 겪었고 흰머리와 주름을 얻은 만큼 나는 많이 달라졌겠지만, 청춘의 빛나는 마음 한 조각 정도는 아직 내 안에 남아있으면 좋겠다. 언젠가 다시 꺼내 써먹을 수 있는 날이 분명 올 것이니. 아이가 내 곁을 떠나고 마침내 ‘엄마다운’ 모습을 벗어버릴 수 있을 때, 다시 꺼내기만 하면 언제라도 청춘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그런 아주 작은 한 조각의 마음. 아직 거기 들어있는 거 맞지?


가볍게 발길을 돌리며 아이에게 말했다. 

자 그럼 이제 너의 청춘을 찾으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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