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아이는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닌다.
학기마다 스쿨버스 타는 아이들의 변화로 차의 종류나 기사님이 바뀌는데, 이번 학기는 운 좋게 새 차에 배정되었다. 운이 나쁜 건 탑승 시간이 약간 빨라졌다는 것. 우리 집이 첫 집이 되어 지난 학기보다 25분 정도 일찍 타야 했다. 일등으로 차를 타면 좋은 점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거다.
차는 12인승, 아이는 뒷문에서 가장 가까운 일인석에 앉는다. 타고 내리는 아이들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다. 가장 조용할 맨 뒤도 아니고, 가장 넓어서 편할 맨 앞자리도 아니고 왜 하필 문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인지 몰랐는데, 어느 날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바로!
점심시간이나 하교 후 남는 시간에 농구를 한 남자아이들이 타이를 풀어헤치고, 셔츠를 빼 입고, 농구공을 들고, 땀 냄새도 조금은 풍기며, 차에서 내리려고 조금 일찍 문 앞에 서 있는 동안 그들의 팔뚝에 불뚝 서 있는 힘줄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푸하하하!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딸! 엄마도 한때 팔뚝 좀 보는 여자였단다!
기분이 좋은 날은 저녁을 먹다가 이미 한 이야기를 또 하면서 신이 나 숟가락을 탁 놓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껄렁이는 남학생들 흉내를 낸다. 어찌나 발랄한지, 저녁 식탁에 갑자기 환한 조명이 켜진 느낌이랄까. 고슴도치 엄마 눈에만 보이는 장면이겠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는 역시 딸 연애 이야기, 관심 있는 남학생들 이야기, 가슴 두근두근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한정판이겠지. 지금은 엄마에게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지만 곧 친구들하고만 쑥덕쑥덕할 테니까. 사실 벌써부터 내가 친구들에게 한참 밀리는 눈치긴 하다. 그럴수록 기분을 잘 맞춰줘야 한다. 수 틀려서 엄마한테 입 닫아 버리기 전에.
그래서 나의 임무는, 오후에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아이의 표정을 잘 살피는 것이다.
방실방실 웃고 있으면 그 자리를 선택한 보람을 느꼈다는 뜻이고, 그럴 때는 잔소리를 해도 웃으며 받아주는 대인배의 면모를 보인다.
뾰로통한 표정으로 내리면 그 자리가 별 볼일 없었다거나 학교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럴 때 잔소리를 하면 쿵쿵거리며 방으로 들어가 문까지 쾅 닫아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러니 표정을 보고 그날 저녁 나의 포지션을 정하는 거지.
몸을 불살라 낳고 키워 놓았더니 이제 마음을 불살라 눈치를 보게 만든다. 얼마나 피곤한지!
(그래서 내가 새벽에 못 일어나는 거야! 새벽에 혼자 학교 가는 아이 이야기는 여기로)
그래도 눈치 좀 보다가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번씩 듣게 되면,
엄마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왠지 조금 더 나은 엄마가 된 것 같다.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다.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없고.
아무튼, 스쿨버스에서 가장 좋은 자리는 남학생들 팔뚝을 볼 수 있는 자리인데,
그렇다면, 가장 좋은 엄마의 자리는 어디일까?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그 자리에,
나는 지금 잘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오늘도 아이의 스쿨버스 행운을 기대하며, 내리는 아이 눈치나 보자.
잘 모르겠으니 우선 이 자리나 잘 지키자고.
Photo by Austin Pacheco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