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혼자 학교 가는 아이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기

by 아리

거실에서 새벽 알람 소리가 들린다. 빅뱅의 유쾌한 노랫소리가 잠을 번쩍 깨운다.

하지만 미동도 없이 끙, 한 번 뒤척이고 그대로 누워 있는다.

잠시 후, 우당탕 소리가 나며 아이가 나와 핸드폰을 챙겨 간다. (잠잘 때는 거실에 충전해 놓도록 한다.)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아이가 1층으로 내려가는 소리가 쿵쿵쿵 들린다.

부르릉 차 소리와 철문이 끼익 열리는 소리, 차 문이 쿵 닫히는 소리가 들리면,

아이가 무사히 학교로 출발했다는 뜻이다.

그때가 6시 45분쯤이다.

나는 다시 마음 편하게 눈을 감고 그대로 잠이 든다.



그렇게 아이는 아침마다, 아니 새벽마다 혼자 학교에 간다.

교복은 전날 곱게 다려 아이 방문 앞에 걸어놓고,

아침은 학교에 가서 간단히 먹으므로 사실 엄마가 해줄 일은 별로 없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차로 학교까지 데려다주었고, 왕복 한 시간이 꼬박 소요되었다.

스쿨버스를 타기 시작한 후에도 처음에는 당연히 함께 일어났다.

안 먹을 걸 알면서도 뭐 먹을래? 물어보고, 오늘은 차가 늦네, 숙제는 다 했어? 오늘 학교에 재밌는 일은 없어? 등등 몽롱한 채 가만가만 수다도 떨었다.



그러다 한두 번 몹시 피곤해서 일어나지 못했다.

깜짝 놀라 후다닥 일어나 보니, 해는 중천에 떠 있었고, 아이는 혼자서도 무사히 학교에 잘 간 듯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말했다.


어머, 혼자 잘 챙겨서 갔어? 다 컸네.


아이도 어깨를 으쓱했다.




요즘은 알람 소리와 함께 꿈나라에서 빠져나와, (몸은 그대로 침대에 있고 정신만 빠져나온다)

응급 상황만 대비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세수하다가 코피가 난다거나,

학교 식당에서 사용하는 학생증에 충전할 돈이 필요하다거나 하는 경우다.

아이는 그런 응급 상황에만 안방 문을 열고 들어왔고 그때 부스스 일어나 해결해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가끔 새벽에 눈이 번쩍 뜨이는 날들이 있다.

오늘은 엄마 노릇 좀 해 볼까 하고 일어나 이것저것 챙겨주려 하면, 아이가 이렇게 외친다.


아, 왜 일어났어. 그냥 자!


어머머, 세상에! 뭐래니?

아이는 나름대로 혼자 학교 가는 새벽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아이는 참 독립적으로 잘 컸다.


일찍부터 샤워도 혼자 했다.

당연히 처음에는 샴푸 범벅인 채로 나왔다.

당연히 다시 데리고 들어가 씻어 주었지만, 그럴 때마다 아이의 뿌듯함에 생채기가 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가만 두기로 했다.

머리를 좀 더 깨끗하게 만들자고 스스로 뿌듯한 그 느낌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샴푸 없이 깨끗하게 헹군 머리보다 그 마음이 더 중요하니까.

샴푸 제대로 안 헹군다고 금방 큰일 나는 거 아니니까, 생각하며 깨끗하게 씻어주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다행히 샴푸는 금방 사라졌다.



초등학교 때도 준비물을 챙겨줘 본 기억이 없다.

아이는 발리 우붓에서 국제학교를 다녔고, 지금은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에서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다.

한국만큼 준비물이 많거나 복잡하지 않아서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제 가방은 늘 스스로 잘 챙겼다. 나는 아이의 준비물 목록도, 시간표도 본 적이 없다.


1박 2일 여행을 가도 제 가방에 제 짐을 혼자 꾸렸다.

옷 몇 번 갈아입어?라는 질문에 세 번 정도?라고 답하면,

상황에 맞게 속옷까지 맞춰 캐리어에 넣었다.


짐이 별로 없어 두 사람이 한 캐리어로 충분해도, 따로 자기만의 가방을 꾸렸다.

거기에 책도 넣고, 노트도 넣고, 카드도 넣고,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넣었다.

다녀와서도 가방 정리하자! 한 마디만 하면 어느새 말끔히 빨래통에, 옷장에, 제자리에 물건들을 정리했다.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내가 육아에서 얼른 독립하려고!)

그래서 그렇게 혼자 뿌듯한 마음들을 존중해 주었더니,

아이는 제 할 일을 뚝딱 해내는 인간으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새벽에 엄마 없이도 혼자 학교에 잘 가는 아이가 되었다.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홀로 꾸리는 능력.

아이는 벌써 그렇게 제 몫을 해내고 있다.



아이들은 전부 그럴 능력이 있는데, 우리에게는 헬리콥터 엄마들이 너무 많다.

덜덜덜 시끄럽게 아이들의 주위를 맴돈다.

부자연스럽게 엄마의 시간을 빼앗고 아이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빼앗는다.

독립적인 어른이 되는 것,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자라는 것, 이런 것들은 절대 부모가 해줄 수 없다.

제 스스로 해봐야, 그런 경험들이 쌓여야만 가능해진다.

아이들에게는 자기 시간을 스스로 써볼 기회, 자기 공간을 스스로 꾸려볼 기회가 필요하다.

해야 하는 것, 되어야 하는 것, 엄마가 일러주는 것들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제 힘으로 해결해 볼 필요가 있다.

비록 실수를 하더라도, 샴푸 범벅인 채로 나오더라도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아이에게 물었다.



아침에 혼자 학교 가는 기분이 어때?


엄마가 일어나면 막 뭐 먹을래, 뭐 다 챙겼냐, 이것저것 질문하잖아.
대답하기 귀찮아.


웁스, 내가 귀찮은 존재였다니. 아이고, 너무 독립적으로 키웠구나.


아이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가 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독립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커가고 있으며,

스스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아이.


멋지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은 충분히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





아, 며칠 전부터 새벽 알람에도 깨지 않는 몸이 되었다.

푹 자고 일어나니 얼마나 상쾌한지!







Photo by Feliphe Schiarolli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