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그 때 대리가 된다

대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by 둥둥

22일에는 진급시험이 있었다.

21일에는 임원단 2021년 목표매출 보고가 있어 20일엔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미 잔도를 끊어버렸기에 진급시험은 중요하지 않았고,

하루 전날 뒤집어진 보고자료를 밤새 수정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거칠게 말해, 오랜만에 밤새서 일해보는 것도 좋았고

의도치 않게 3개월의 평균임금도 높아지니 나쁠 것도 없으니까.

21일 보고는 잘 끝났고, 7시에 퇴근해서 다음날 8시까지 13시간을 푹 자고 9시 진급시험을 봤다.

문제은행을 기반으로 출제되는 직무내용과 상식 내용이 혼합된 문제는 평이했다.

많은 시험들이 그렇듯 아는 문제는 아는 대로, 모르는 문제는 모르는 대로 풀어내야 하기에

답을 쓰는 데는 주어진 시간의 1/3도 필요하지 않았고, 퇴실은 시험시간의 반이 지나야 가능했다.

사람들의 집중이 시험시간의 반을 채웠고,

나머지는 지루했으나 아무도 먼저 답지를 내고 나가지 않았다.

나도 튀고 싶지 않아 30분을 졸다가, 시험시간이 끝나고 모두가 나갈 때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험을 다 풀고도, 퇴실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도 적당히 자리에 앉아

끝을 기다릴 수 있는 덕목을 갖출 때

그렇게 대리가 된다.

시험과 업무보고가 끝나 이곳저곳에서 뒤풀이 자리가 생기고

나는 먼저 백화점을 나간 동기들을 만나 저녁을 먹었다.

즐거운 디너쇼에서 한참 동안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래서 퇴사한다를 주제로 공연을 했고,

함께 무대에 오른 동기들은 서로에게 높은 별점을 메겼다.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지.

네 결심이 틀릴 수 있으나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라는 말은 얼마나 공허한지.

내 주변에는 다들 이런 사람들이라 내 결심은 틀린 법이 없다.

지하철역에서 헤어질 때 들은 동기의 인사가 한동안 나를 따뜻하게 해 줄 것 같다.

"꼭 우리 회사 와, 진짜야"

4시간의 대화를 배경으로 툭 튀어나온 동기의 말이 내 어깨를 툭 치고 웃었다.

꽤나 마음에 든다는 지금의 회사를 권할 수 있는, 너와 나의 상찬이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그때에, 그 장소에서, 그 사람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말이 아니었을까

하루가 지나, 소중히 감싸 둔 어제의 기억과 마음들을 꺼내며 적는다.

나는 네가 너무도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나는 위대한 사람이 나를 인정해 줬으면 좋겠어.

위대한 내가 너를 위대하게 만들고, 위대한 네가 나를 위대하게 만드는 이 행복 회로가

우리 모두를 위대하게 만들어 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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