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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둥 Dec 27. 2020

06. 일단 알겠다는 말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말이다

회사에서 들려서는 안 되는 단어들

 

나는 백화점 마케팅팀에서 일하고 있다. 앞의 문장이 참인 시간은 이제 한 달이 채 남지 않았지만, 현역 직장인 그것도 지원부서에서 일하는 나의 입장에서 정말 듣기 싫은 말들을 몇 개 소개한다.




3위. XXX 주임님께 말씀드렸었는데,


 백화점은 주말 영업이 핵심이다. 때문에, 백화점 직원들은 주말에도 스케줄대로 교차 출근한다.  파트당 담당자는 무조건 한 명 이상 출근하기에, 백화점이 붐비는 빨간 날에도 직원들은 열심히 사무실과 매장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매대를 나르고 있다.

 이 스케줄 근무 때문에 업무상으로 아주 비효율적인 일이 발생한다. A사원이 1월 영업계획 보고서 작성을 위해, 마케팅팀에서 데이터 분석 업무를 하는 B사원에게 이틀 뒤 퇴근 전까지 데이터를 요청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다행히도, A사원이 이틀 전에 요청했다고 가정하자. 일을 하다 보면 오늘 데이터 분석 요청을 하면서, 어제까지 달라는 무시무시한 협박을 받곤 한다.)  하지만 B사원도 매출 분석 보고서를 만들고 있었고, 열심히 이틀간 작업해서 보고를 마치고 퇴근했다. 데이터 분석 업무는 너무 바빠서 잊은 채로. B사원은 스케줄에 따라 이틀간 쉬기 시작했고, 같이 데이터 분석 업무를 하는 C사원은 이틀 쉬고 출근한 뒤 A사원에게 메신저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B주임님께 말씀드렸었는데 혹시 요청한 '말로는 엄청 간단하지만, 추출하고 가공하는데 굉장히 시간이 들고, 보고서에는 한 줄 들어갈까 말까 하는 데이터' 혹시 언제쯤 주실 수 있으실까요?" C사원은 화가 난다. 집에서 쉬고 있는 B사원에게 전화해서 소리를 지를 것인가. 그러나 B사원을 강제로 출근시켜 사무실에 앉히지 않는 이상 소리를 지른다고 바뀌는 건 없다.

 회사는 큰 조직이고, 수시로 직원 간 부서 간 협조할 일이 생긴다. 짧은 시간에 협조해 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면, 더군다나 중요한 일이라면 스케줄링을 하면서 꼭 내용을 '메일'로 남겨두자. 메신저나 전화, 지나가면서 말로 하는 사항들은 휘발될 가능성이 높고, 내가 바쁜 만큼 상대도 바쁘다.


2위. , 그거 제가 메신저로 드렸어요

 

나의 주요 직무는 마케팅 - 분석이다. 그렇다면, 가장 주로 하는 일이 무엇일까? 모든 지원부서의 숙명인 취합 업무이다. 과거에 대한 분석은 나의 몫이지만, 백화점이 나를 시켜 부검 보고서를 쓰게 하는 이유는  "그래서 다음에는 뭘 어떻게?"를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각 영업팀도 영업팀 자체의 분석-결과-계획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나는 점포 전체 내용을 총괄하는 자료를 만들기에 각 팀에 요청할 자료도 많고, 받아야 할 계획도 많다.

 올해는 누구에게나 고된 해였고, 매출이 좋지 않을수록 일의 강도는 높아진다. 매출 만회 계획, 부진 분석 등의 자료가 줄을 잇고 나도 타 팀에 작성과 회신을 요청하는 빈도가 늘었다. 기한을 지키지 않는 경우는 너무 많아 따로 적지 않지만, 자료 작성을 다 해놓고도 메신저로 툭 던져놓는 것은 기가 차게 화난다. 이 공격은 "담당자가 쉬는 날에 그 담당자에게만 자료를 보내 놓고, 나의 업무 파트너는 물론 자기 팀에도 공유하지 않기" + "저번에도 이러시더니 이번에도 또" 복합 공격으로 작동한다. 똑같은 일을 두 번 하게 되거나, 업무 기한을 못 맞춰서 혼나기라도 하면, 이 작은 무관심이 얼마나 크고 나쁜 결과를 내는지 분노하게 된다. 왜 그렇게 열심히 잘 작성해 두시고는 던저버리시는 거예요. 모든 일에는 마무리도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자.


1위. 일단 알겠어요


 내 자리의 유선전화기가 부서진다면, 8할은 저 멘트 때문일 것이다. 무 특성상 가이드나 지침, 세부 내용들에 대해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잦은데, 아주 열심히 쉬운 비유와 예시를 들어가면서 답변을 해줘도 바쁜 동료직원분들은 크게 관심이 없을 때가 있다. 긴 통화나 짧은 통화 끝에 결국 나오는 대답이 "일단 알겠어요"일때 얼마나 힘이 빠지고, 동시에 화가 오르는지. 저 일단이라는 단어는 "아 너무 복잡하고 바빠서 난 모르겠고"인데 어떻게 뒤에 알겠어요가 올 수 있단 말인가. 본디 깔끔한 통화와 이해의 끝에는 "이해했습니다", "그렇군요" 등 명확하고 아름다운 말들이 장식한다. 같은 분야의 같은 지점에서 근무하는 우리들이 사실은 단절되어 있다는 절망을 가져다주는 "일단"을 쓰지 말자. 저 상황에서 그럼 어떤 단어를 써야 하냐고?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가 너무 길다면 "아... 다시 전화드릴게요"로 줄이자. 물론, 제일 좋은 것은 스스로 잘 찾아보는 것이다.

 "일단"을 대체하겠다고 "우선"을 쓰는 과오를 범하지 말기를. "일단 알겠어요", "우선 알겠어요"나 다 같은 뜻이다.



 2020년이 끝나고. 2021년이 오고있다. 10월부터 시작되어 3개월을 맞이하는 나의 퇴사-THE 연착륙에도 이제 활주로가 보인다. 활주로는 착륙과 이륙 모두의 공간이다. 한 해의 끝과 다른 해의 시작에서 나와 모두에게 부드러운 착륙과 힘찬 이륙을 바란다. 더불어 매일 맛있는 저녁 메뉴도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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