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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둥 Mar 18. 2022

11. 다시 알려드립니다

작고 큰 이유와 그만큼 작고 큰 일들

 안녕하세요, 글로 안부를 전한 지 8개월쯤 지났습니다.

 퇴사 후에 이틀에 한 번씩은 글을 적고 틈틈이 소설도 쓰고 한다는 다짐은 한동안 이어지다가, 여름 이후로 뜸했네요. 그동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한꺼번에 전하면서 글을 잠시 적지 않았던 변명을 하려고 해요.


 우선 저는 작년에 준비하던 화훼기능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두 번 떨어지고, 세 번째 도전에서 합격했어요. 발표일은 12월 24일이었어요. 이번에도 떨어지면 퇴사한 한 해 동안 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까 봐 불안했습니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1월에는 중학교 진로특강 강사로 활동했었는데, 발표날에는 경기도 양주에 있는 중학교에서 진로특강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업을 하고 있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리더라고요. 합격자는 당일 아침에 카카오톡이 온다고 들었어서 진동을 듣는 순간  안도했습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두 번 떨어진 것도 다 괜찮고 크리스마스이브에 합격해서 신났었습니다. 그때 교실 밖으로 눈이 내렸던 기억도 나네요. 막상 합격했을 때 엄청나게 기쁘지는 않았어요. 기능사 하나 딴 게 제 나머지 인생을 보장해주진 않으니까요. 그래도 (전혀 아니지만) 자격증을 못 따면 일 년 내내 아무것도 못 이룬 것 같고, 내가 소질이 없는 건가 하는 고민에 빠졌을 겁니다. 마침 그즈음 해서 외교관 시험에 합격하고, 경찰의 꿈을 이루고, 로스쿨에 진학하거나 졸업하고, 결혼하고, 예쁜 아이가 나오는 친우들의 소식을 많이 들었거든요. 멋지게 살겠다고 뛰쳐나왔으니 모두에게 멋진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은 언제나 저의 좋은 원동력이지만 이런 반작용도 있어요. 화력발전소의 한계거니 하고 잘 추슬러 살아야죠 뭐.


 그 이후 1월까지 진로특강 강사로 서울/경기의 여러 중학교를 돌아다니다가 학교가 방학에 들어가는 시기에 맞춰 플로리스트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습니다. 1월 말쯤에 운이 좋게 용산에 있는 호텔 플라워팀에 첫 알바 자리를 구했어요. 정기 알바가 아니라 매주 스케줄에 따라 지원해야 하는 파트타이머 자리인데, 아무 경력도 없이 기능사 자격증 하나 들고 지원서를 쓰려니 많이 떨리더군요. 다행히 1월 말부터 지금까지 잘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알바 다니는 호텔에는 플라워샵은 따로 없고, 플라워팀은 웨딩을 주로 준비합니다. 일주일에 적게는 두 번, 많게는 네 번의 결혼식이 있어서 바쁘게 지내요. 생각보다 일은 재미있고 적당히 고됩니다. 다행히 5월부터 3개월간 단기계약직을 제안받아 7월까지는 이 호텔에서 근무할 예정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이야기는 곧 짬을 내서 좀 더 자세히 적겠습니다.


 한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던 이유는 생각보다 브런치를 보시는 분들이 많아서였어요. 제가 퇴사 전후로 글을 적다 보니 글의 내용과 직접 관련이 있는 분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지금 다시 통계를 보니 제가 듬성듬성 올린 글들의 조회수가 2,260회나 돼요. 그 전 글들을 너무 솔직하게 썼나 잠깐 식은땀이 났습니다. 이제는 퇴사한 지 일 년쯤 됐으니 마음이 잘 말라 빳빳해진 것 같아요. 앞으로는 매거진 이름에 걸맞게 이틀에 한번 안부를 전하겠습니다. 좋고 굳은 의지가 실천되게 노력할게요.




 지금 나가는 호텔은 보통 평일엔 9-18시, 저녁 웨딩이 있는 주말은 8-22시까지 일합니다. 웨딩이 있는 주말은 잘 못 쉬는 편이에요. 첫 직장인 백화점에서 시작한 스케줄 근무가 저를 여기까지 따라왔습니다. 호텔 플라워팀에서는 웨딩과 호텔의 꽃들을 담당하는데 저는 아직 작은 아르바이트라 잘 몰라요. 이 글의 배경 사진은 덴파레 입구 아치입니다. 철쭉나무를 잘라 고정해 틀을 만들고 덴파레 꽃을 하나하나 메달아 버진로드의 입구를 장식해요. 꽤나 고된 일이지만 해놓고 나면 예쁩니다. 앞으로 한동안은 일과 꽃 얘기를 많이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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