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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둥 Mar 20. 2022

12.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일어날 수 있을까

기회는 얼마인가요

 고3 겨울, 수능을 본 뒤였다. 수능성적은 발표됐고, 수시 발표와 정시 지원을 사이에 둔 불안하던 어느 때. 우리 집에서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어른들의 모임이 있었고, 한창 민감하던 나는 여러 질문들에게 도망쳐 친구 집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30분쯤 걸리는 친구 집으로 도망가는 길은 어둡고 즐거웠다. 너무나 공교롭게도 그날 저녁 예정보다 하루 일찍 수시 발표가 났다. 그때는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하려면 통신료가 꽤나 나오던 때라 조심조심 홈페이지로 접속해 결과 확인을 했고(JUNE 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주 오랜만에 빨간 글씨가 아닌 파란 글씨로 적힌 합격 안내문을 볼 수 있었다. 내가 피신한 그 친구는 비록 수시에서는 떨어졌으나, 수능을 잘 봐서 정시전형에 대한 믿음이 있어 걱정보다는 별 일 없이 하룻밤을 잘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동안 인생의 전부였던 대학입시에 성공하고 나서, 나는 여러 번 작은 실패를 만났다. 과외가 잘리거나 사람들과 멀어지거나 크고 작은 면접들에서 떨어졌지만 당시 입시만큼 어려웠던 공군 지원에 합격했으며, 훈련소와 특기학교를 거치며 원하는 직무, 집과 가까운 자대에 배치받아 성공적인 징병 생활을 보냈었다. 그 뒤로 드림클래스 방학캠프 강사에 합격했고, 서울시 청년참 지원사업을 통과해 전통주 내일로 여행을 다녀왔으며, 스피킹맥스 번역 알바에 합격했고 제빵기능사 실기시험에 떨어졌다. 매 학기 수강신청 일부를 실패해서 며칠을 전전긍긍하다가 어찌어찌 시간표를 완성해 몇 과목에서는 좋은 성적을 받았고, 또 몇 과목에서는 예상과 다른 성적을 받아 교수님 연구실로 찾아간 적도 있었다.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취업준비를 하며 마흔 개가량의 지원서를 썼고 서른아홉 번 정도 서류, 인적성, 면접에서 각종 이유로 떨어진 뒤 하나의 회사에 최종 합격해서 4년간 회사를 다녔다. 회사생활 4년 동안 자주 혼나고, 많이 칭찬받았다. 수 백개의 보고서가 타이밍을 놓쳐서, 어려워서, 결정권자의 생각과 다르거나 내가 이해를 잘못해서 쓸모없어졌으며 또 수 천 장의 보고서가 엄청난 시간을 들여서, 운이 좋아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서, 반발짝 빠르게 준비해서 한 행사의 틀이 되고, 리뉴얼 공사의 방향성이 되고, 4000억의 연간 매출 계획이 되었다.  


 퇴사하는 날 저녁 비행기로 친구와 함께 제주도로 내려가 한라산 등반에 도전했지만, 새벽에 비가 많이 와 빌린 등산장비를 모두 반납한 뒤, 비가 와구와구 쏟아지는 사려니숲길을 여섯 시간 걸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제주에 내려 한라산 겨울 산행을 마치고 저녁에 돌아왔다. 퇴사 후 두 달가량 아무것도 안 하고 로스트아크만 열심히 하다가 5월에 이사하고 화훼기능사 시험을 준비했으며 실기시험에 두 번 떨어지고, 세 번째 붙었으며 그 사이 2종 보통 운전면허 실기/기능/도로주행을 친구의 도움으로 모두 한 번씩만에 합격했다. 12월부터 중학교 진로특강 강사로 11개의 학교에서 강의를 진행했고, 1월 말 두려움에 떨며 지원한 호텔 플라워팀 알바 자리에서 두 달 정도 꾸준히 일하고 있으며, 운이 좋아 단기계약직으로 일 할 수 있게 되었다.


 스무 살 이후의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를 두서없이 나열한 이유는 내가 꽤나 많이 시도해서 여러 번 성공했고, 그만큼 실패했다는 것을 되새기기 위해서다. 다행히 지금 많은 성공들을 실패보다 더 적을 수 있으나, 나는 확신한다. 엄청나게 많은 실패들이 가라앉았고 적은 성공들이 수면에 떠 있는 것이라고. 작년 화훼기능사 시험에 두 번 떨어질 때도, 합격 날이 다가오면 잠을 뒤척이다 악몽을 꾸곤 했다. 취업준비 때 하루 세 번 서류에서 떨어지는 날이면 좌절과 불안이 어깨를 두드리는데, 그 와중에 당일 마감인 자기소개서를 밤새워 적다 가슴이 답답해서 학교를 두 시간씩 걷는 날도 있었다. 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꽤나 큰 사람이고, 남들에게 멋져 보이고 싶고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알량한 것들을 놓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나를 문화비평학이라는 너무나 이상한 이중전공에 푹 빠져 성서고고학, 미생물학, 정치철학 강의를 전전하게 했으며, 인사팀 면접-서류전형-인적성 시험-두 달간의 인턴(인턴 직원 행사를 포함한)-합숙면접(개인/팀과제 발표)-임원면접을 통과해 겨우 합격한 회사에서 4년 동안 걷던 길을 벗어나 서른두 살 아르바이트생이 되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그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나은 기회들을 사기 위해 나는 뽑기 기계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넣었으며 그 동전들은 넉넉지 않은 환경을 넘어 어디서 온 걸까.


 많은 기회는 많은 실패와 함께 많은 성공을 낳는다. 큰 기회가 큰 실패와 성공을 만들고, 어떤 실패와 성공은 또 다른 성공과 실패를 만든다. 여러 번의 동전 던지기 끝에 운이 좋게도 나는 아직 기회가 남아있다. 하지만, 누군가도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일어날 수 있을까. 화훼기능사 시험 한 번에 보통 백만 원쯤 들었던 것 같다. 삼백만 원쯤 들여 화훼기능사를 따서 운이 좋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면 나는 얼마에 그 기회를 산 걸까. 무경력으로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나에게 신뢰와 칭찬을 보내는 지인들에게, 맞아 나는 역시 뛰어난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외치다가도 이 기회를 위해 지불한 값에 맞는 결과를 낼 수 있을까. 이 뽑기에서 나는 2 등상 정도나마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한다. 대입에 떨어져 재수를 고민하는 멀티버스의 나를 만난다면 그를 설득할 수 있을까. 내가 값을 내지 못한 기회들을 사려고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내 많은 실패와 성공들을 위해 내가 치른 기회들은 얼마일까. 그리고 네가 얻고 버린 것들로 너는 집을 지을 수 있을까. 모두가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일어날 수 있을까. 아흔아홉 번 실패하고 한 번 성공한 누군가는 무조건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일까. 누군가는 일곱 살 때 성악가가 되고, 세 개의 국가에서 살아 다섯 개의 언어를 구사하고, 자기 명의의 빌딩이 있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서울에 와서 지하철을 처음 타보고, 대학 등록금을 내기 위해 아르바이트 세 개를 하고, 자기소개서에 쓸 말이 없어 고민한다. 나는, 호텔 결혼식장에서 만난 스무 살 남짓의 친구들에게 명문대에 가서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헤매며 값비싼 기회를 사서 수많은 실패를 거쳐 큰 성공을 가지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자아비판이 부족해 성공은 부풀리고, 실패는 가루를 내서 향신료로 썼다. 화훼기능사 실기에 처음 떨어졌을 때는 나중에 글감이 될 수 있겠다는 여유라도 부릴 수 있었으나 두 번째 떨어졌을 때는 참으로 우울했다. 백 원을 가지고 있는 친구에게 백 원짜리 뽑기는 일생을 바쳐 단 한번뿐인 기회가 된다. 모두의 주머니에 동전이 그득그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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