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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둥 Mar 23. 2022

13. 모든 일은 서비스직이다

결혼도 서비스직이야

 헬스를 시작한 지 4년이 넘었건만 여전히 어깨는 넓어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 다행히 바지사이즈는 꽤나 줄였으니 얻은 건 없으나 잃은 게 있어 좋다. 회사를 다닐 때는 여름휴가철 전에 PT를 받았었다. 돈과 시간과 공을 많이 들여서 가는 여행지에서 멋있고 예쁘게 사진에 찍히기 위해서는 꽤나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헬스장에 다니고, PT를 받는다.


 헬스장에서 운동하다 보면 트레이너와 회원 간의 대화를 듣게 된다. 부러는 아니지만 원체 귀가 밝고 관찰과 사색과 염탐을 좋아하다 보니, 또 기구 간 사이가 가깝다 보니 바로 옆에서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어온다. 한 수업은 절반쯤 운동하고, 절반은 회원분의 무용담과 철학으로 채워진다. 나 때는, 나는, 정치는, 세상은으로 시작하는 고루한 문장들. 헬스장에서는 오직 '악'소리만 나야 한다는 어느 체육관의 급훈(?)이 생각났다. 한 개만 더로 산을 쌓을 수 있을 것 같던 트레이너도 약해지는 시간이 오는구나 생각했다. 오늘 진로특강은 파주 동패중학교였다. 지난주 내내 웨딩일이 바빠 헬스장을 나가지 못했고, 역에 도착하니 세시쯤이라 운동을 가지 않을 핑계가 부족했다. 하체운동을 하다 옆 대화를 들었는데, "이 무게는 좀 쉽죠?"라고 트레이너가 말하자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냐"는 회원의 훈계가 이어진다. 무게추 5kg만 늘리려던 트레이너는 졸지에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가 되어 한참 강의를 들었다.


 지난번 청주에 내려가 고모집에서 꿀차를 마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서비스직이 참 고되다는 말이 나왔다. 사람 맞추고, 사람 대하는 게 참 힘들다며. 고모가 "결혼도 서비스직이다"라고 말했다. 때로 내 생각과 기분은 미뤄두고 상대방 기분 좋으라고, 덜 힘들라고 배려하고 넘어가는 게 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기에 세상일이 다 똑같네요하고 애늙은이 소리를 했다. 고모가 결혼한 나이를 내가 훌쩍 넘겼으니 이제 애늙은이는 아니군.


 사람 대하는 모든 순간이 내 생각 속에 상대를 넣는 지난한 과정이다. 나로 똘똘 뭉친 세상에 네가 다치지 않게, 고이 모셔와서 득달같이 달려드는 나를 나 스스로가 막아서는 투쟁을 한다. 나만 좋으면 되는데, 이거 아무리 봐도 내 손해인데, 소리 지르고 싶다,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저건 뭔데 나한테 등으로 창발 하는 생각을 멈추고 너를 위해 나를 아주 조금 버리는 것이 이토록 힘들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은 여전히 고된 일이다. 나는 가끔 "나는 나 100명이랑만 일하고 싶다"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세상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트레이너도 서비스직이고, 결혼도 서비스직이고, 지금도 독자를 생각하는 글쓰기도 서비스직이다. 회사 생활에서 어려웠던 것들 중에 많은 부분이 일이 부당해서, 내가 혹은 동료나 상사가 나빠서도 아닌 그냥 어려운 일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트레이너도 고모도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선생님이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2005년까지 계셨다는 것을 방금 알았다. 한동안 그리고 여전히 저 섬은 무얼까 생각한다. 춘추의 기사나 수강생들의 글을 살펴보니 (직접 물어본 용감한 학생이 있던 것 같다) 섬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으셨던 것 같다.


 브런치에 옮겨 적으려 구글을 검색해보니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라고 적은 글이 많다. 본 시에는 마침표가 없다. 예전에 어떤 시인이 시집을 내며 출판사에 마침표 하나 빼려거든 시집을 내지 않겠다고 했다는 영웅담을 들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찾아보니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시와 글에서 마침표 하나하나도 얼마나 중요한지 강변할 때 참 좋은 예였는데 아쉽다. 이 글도 마침표와 큰따옴표 쉼표를 신경 쓰며 적었다. 틀린 문법은 시적 허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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