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골기질을 타고 난 사람들이 있다. 나도 곧게 선 나무들을 보면 머리를 들이박고 싶을 때가 있고, 곱게 깐 카펫을 보면 앞구르기를 하고 싶을 때도 있다. 터부와 금기들, '예부터 전해 내려 오는'으로 입증 책임을 퉁쳐버린 신성들이나 자기들은 뒤에서 2박 3일을 떠들다가 앞에서 물어보면 왜 저러냐며 손으로 입을 가리는 모든 주제들을 보면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 이유를 묻고 싶다. 그래서 그게 왜 그런 건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직 모든 사람들과 집단들에게서 버림받지 않은 이유는 적어도 저 반역에 악의를 두지 않으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하지 말라면 하지 마'가 끝인 것 같은 일들도 물어보면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던 적도 많고, 그 과정을 통해 더 나아질 때도 있다. 먼 옛날, 징집 생활을 할 때 생활관에 드럼세탁기들이 새로 설치되었는데, 한 달쯤 지난 뒤에 자꾸 에러가 뜨면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생겼다. 알고 보니 생활관이 오래돼 물이 들어오는 곳의 필터에 녹이 껴 물을 막아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 뒤로 주말마다 세탁기 뒤의 호스를 빼고 필터를 청소해 줘야 한다는 규칙이 생겼는데, 한 육 개월쯤 지나고 나니 그 규칙을 만든 사람도 전역해버리니 하나의 괜한 청소 거리가 되어버렸다. 백개는 족히 넘는 규칙들에 하나가 추가된 것이지만 근무지 대청소에 생활관 청소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후임병들에겐 얼마나 귀찮은 짓일지. 청소하는 후임들을 붙잡고 이 필터 캡을 청소하는 이유와 나중에 너라도 꼭 기억해서 지금 우리가 악독하고 멍청해서 이렇게 일거리들이 늘어난 게 아님을 알려달라 항변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그 '이유'는 얼마나 남아있었을까. 지금도 나는 멍청하고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신성들을 욕하다가도 3초쯤은 그 문장이 만들어진 순간을 상상해보려 노력한다. 노력은 한다.
어떤 신성은 시대가 아니라 맥락에서 태어나기도 한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많이 접한 것들은 '누가(WHO)'가 원인이 된 경우다. "이거 도대체 누가 이런 식으로 했어요"하며 화가 잔뜩 난 채 찾아가면 손목을 잡아 나를 사무실 밖으로 이끌어준 동료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팀장이 혹은 임원이 그런 결정을 내렸을 것임라 생각을 못하기도 했고, 시야가 낮고 자기 일만 아는 사원은 팀장이 혹은 임원이 나와는 다른 합리적인 이유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모를 때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 번 물어봤고, 그때마다 다른 이유를 들으며 자주 납득하고, 가끔 의견을 개진하고, 드물게 까라면 까라고 하셔서 깠다.
나는 '왜'가 너무도 중요하다. 이걸 왜, 저 사람을 왜, 내가 왜, 이게 왜 등 모든 것의 이유가 너무나 궁금하다. 그냥만 아니면, 아니 그냥도 이유가 된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절대선을 위해서 따위의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잘 보이려고, 누가 시켜서, 하는 척만 하려고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온 이유라면 없는 것보다 100배쯤은 더 낫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문답 과정에서 이 일/업무/사람/작품 등의 핵심은 뭔지, 나에게 뭘 기대하는지를 알 수 있기에 그 결과도 더 좋은 편이었다. 시간과 역량은 한정되어 있고, 15분짜리 일과 이틀짜리 일을 구분하는 것은 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든 가장 중요한 과정이니까.
앞자리가 0으로 시작하는 친구들과 호텔에서 일하면서 나는 '이걸 왜 이렇게 하는지' 설명하는데 시간을 많이 쓴다. 왜 똑같은 2단 카트인데 네가 가져온 이 카트가 아니고, 저 카트인지. 왜 플로팅 캔들을 쓰면 편할 곳에 굳이 장초를 써서 매번 식이 끝날 때마다 유리병을 닦는 건지. 왜 종이박스는 세 번 접어 모아둔 다음에 회색 카트에 실어 버려야 하는 건지 알려준다. 그래야 내가 일하기 편하니까. 우리 모두 생각하면서 일을 했으면 좋겠다.
저 2단 카트는 유난히 오른쪽으로 쏠려서 이 2m짜리 실린더를 담으면 위험하다. 플로팅 캔들은 예약부에서 안 예쁘다고, 굳이 장초를 쓰자고 주장했다더라. 쓰레기 하역장 문을 열 때 기압차로 바람이 엄청 부는데, 종이박스를 모아가지 않으면 다 날아가서 고생한다. 내가 전해 들은, 겪은, 생각한 이유들이 친구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일을 시작하고 초반에는 이게 맞나 고민하기도 하고, 겪으면서 수정하기도 하는데 점차 경험이 관록이 되고 그 자체가 이유가 되면 '2단 카트 말고 1단 카트가 더 편해요' 같은 제안을 들었을 때 쟤가 뭘 알고 저런 소리를 할까 하는 짜증이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물론 그분께서는 나보다 훨씬 오래 플라워팀에서 일을 하신 분이라 너무도 맞는 말이셨다.) 항상 왜를 묻고, 더 나은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