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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둥 Apr 11. 2022

ㅁ. 거창한 건 없습니다

중요한 게 있을 뿐이죠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버려야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다. 퇴근 후에 실내 클라이밍을 하던 친구도 그렇게 말했다. 대기업을 나오며 무슨 돈으로 살 거냐는 질문에, 원래 없던 돈이라고 대답했지만 광화문에서 친구를 만나러 걷는 도중에 월 430만원이 얼마나 큰돈인지 높은 빌딩들 사이에서 고심했다. 가난보다 마음의 가난이 더 두렵지만, 그렇다고 가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가난을 거꾸로 해보자. 난가? 바로 우리다.


 퇴사를 하고 다른 곳에서 일하면서 퇴근 시간에 맞춰 일을 하는 경험을 처음 했다. 전 회사에서는 일이 끝나는 시간이 퇴근 시간이었다. 많은 돈을 주는 만큼 많은 일이 주어졌고, 대게 사람과 시간과 능력이 모자라 그중 내가 쉽게 채울 수 있는 시간을 부어 일을 끝냈다. 주 52시간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7시 반에 퇴근했을 때 집에 가는 길에 해가 떠있던 그 밝음에 감격했던 기억이 난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좋은 인사평가를 받기 위해 취하고 버린 것들이 있다. 스케줄 근무와 나는 쉬어도 회사는 쉬지 않던 것, 매달 돌아오는 월별 목표와 작년에 했던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는 고객과 직원들 덕에 좋고 나쁜 방향에서 오는 여러 자극들이 끝나지 않는 회사생활 내내 나의 원동력이 되고 스트레스가 되었다. 양손 가득 일과 월급을 쥐고 있다가, 이제 한 손으로 잡고도 조금 남는 일과 돈을 보니 다른 손으로 잡아야 할 것들을 열심히 더듬는다. 적어도 두 손은 가득 차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크게 가진 것 없이 회사생활을 시작하며 나를 열심히 그러모아 땔감으로 살았나 하는 고민을 했다. "살면서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나 자신인데, 우리는 너무 쉽게 나부터 포기하고 맙니다"하고 화두를 던지고 글을 쓰려 보니 내가 그리 상처받고 훼손된 게 있나 싶다. 그 바쁜 와중에 여행도 열심히 다니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중요한 대소사에 얼굴을 비췄으며 나쁜 짓을 시키지도, 하지도 않고 일하며 원만하고 좋은 평가받으며 잘 있다가 아쉽게 악수하고 회사를 나왔다. 삼 일 전 신촌에서, 이틀 전 여의도에서 팀원을 만나 신나게 이야기하고 동기와 통화하며 다음 주에 꼭 보자는 약속을 잡고 나니 대학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버려야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다. 손에 뜨거운 것을 쥐고 있다면 빨리 털어버리자. 화상이 깊이 남는다. 하지만 손에 쥐기 좋은 것은 둥글고 미끄러워 쉽게 놓치고, 크고 단단한 것은 쥐고 있기 힘들어 각진 면에 손가락을 넣어야 그나마 쥘 수 있다. 쥔 것이 뿌리칠 수도 있고, 손이 허해서 보면 모래였을 수도 있다. 그저 손을 펴는 것뿐이다. 한 손씩 움직일 수도 두 손을 다 움직일 수도 있다. 삶은 클라이밍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두 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생각도 이 글도 별 대단한 것은 아니다.




 진로특강 강의를 다니며 국문학/문화비평학 전공 - 백화점 - 플로리스트로 나를 소개하다 보면 중학생들이 자주 묻는 것은 플로리스트가 뭐냐는 것이다. 장래 목표는 공간 디자이너라는 말을 하면 질문조차 사라진다. 친구들이 무럭무럭 자랐을 때 공간 디자이너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용한 무당처럼 알아야 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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