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둥둥 Apr 18. 2022

ㅂ. 꽤나 사랑하면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아니다 싶은건 아닌거예요

 저녁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강동원님이 나오시는 동원목공소라는 영상들이 있길래, 아 이게 그 용접짤이 나온 프로그램이구나 하고 시청하던 차에 3화에서 강동원님이 아주 잠깐 노래를 흥얼거리는 부분이 나왔다. 나무를 고르며 아주 잠깐 노래의 중간 부분을 허밍 하는데, 그 노래가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라는 것을 아는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얼마나 빨랐던지 아는 게 먼저고, 안다는 생각이 든 게 나중에 따라오는 정도였다. 나는 자우림과 김윤아님의 오랜 팬인데 히든싱어에 나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내가 꽤나 들은 가수들은 종종 헷갈렸지만 김윤아편에서는 명확했다. 이 정도로 사랑하면 이런 경지에 오르게 되나 보다.


 아주 오래전 기억이지만, 비슷한 경험이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내가 정말로 좋아했던 친구를 엄청난 인파 속에서 찾은 기억이 있다. 그 친구를 찾으려 했던 것도 아닌데 '와 사람 정말 많다'하고 그저 쭈욱 둘러보는 찰나에 눈에 들어왔다. 이 때도 고개는 돌아가고 있었는데, 머릿속에 그 친구가 저기 있다 하는 정보가 먼저 떠올랐었다. 나는 이 경험 이후로 아주 정말 너무 사랑하면 가끔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그때는 열정의 깊이만큼 다른 것들로 한눈팔 수 있는 게 적기도 했지만.


 나는 겁도 많고, 생각도 많아서 자전거를 탈 때는 앞바퀴가 갑자기 빠졌을 때 앞구르기를 해야 하나 옆으로 빨리 넘어 저야 하나 하는 망상을 한다. 여러 방면에서 예민한 데다 시야가 엄청 넓으며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도 많고 처리하는 속도도 빨라서 이것저것 눈치도 많이 보고, 많은 일에 의심과 예측일 곁들이는 편이다. 십 년이 넘은 친구들과 만나고 나서도 집에 돌아오는 버스나 지하철 혹은 샤워를 하면서 그날과 그 앞 뒤, 길게는 일주일에 했던 말들과 상황을 재검토하면서 이건 내가 잘못한 건가, 이 상황은 사실 이런 뜻이 숨겨져 있었나 검토한다. 하지만 꽤나 사랑하면 그러니까 꽤나 확실한 관계라면 이 지난한 검토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김윤아의 목소리, 그 친구, 한 향수를 너무 진하게 뿌려서 향수만으로 존재를 알 수 있었다는 한 대통령까지 이 의뭉스럽고 잔인한 세계에도 어떤 확실한 것들은 존재한다. 나는 그것들에 대해, 비록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검증받아야 했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의심의 시선을 던질 거지만, 존중하고 사랑하려 한다. 꽤나 사랑하면 1초도 걸리지 않고, 오랜 노력만이 확신을 준다.




 사람, 사물은 물론 자연현상까지 한번 더 생각하는 것은 그냥 오래된 버릇이다. 의심이라는 단어는 마음에 들지 않고 다방면에서 여러 각도로 고려한다고 변명하겠다. 성당은 어떻게 그렇게 신나게 다니냐고 묻는다면 꽤나 사랑하면 1초도 걸리지 않는다고 대답하겠다. 많은 지인들의 생각과 다르게 나는 모태신앙이 아니며 외가는 꽤나 독실한 개신교, 친가는 평범한 한국 불교 신자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ㅁ. 거창한 건 없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