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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둥 May 15. 2022

10. J상사와 일하는 법

P이지만 J와도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잖아!

 지금 일하는 곳의 실장님은 MBTI 도식상 J가 분명하다. J 성향은 계획형이라기보다 통제형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올바른데, 본인의 생각이 뚜렷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경향이 강해서 아 저 사람은 계획형이구나 하고 받아들여진다. 사실 많은 P들도 열심히 계획을 세운다. 다만 수정에 좀 더 너그럽고 변화를 즐길 때가 있는 것 같다. 오늘은 (P인 내 입장이겠지만) 일 잘하는/일 못하는 J상사와 일하는 법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 일 잘하는 J상사와 일하기 : 지금 제가 하고 있습니다


 계약직으로 전환해 호텔 플라워팀에 일한 지 2주쯤 되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실장님이 적어두신 당일 업무 리스트와 그 담당자가 빼곡히 적힌 종이 먼저 확인해야 한다. 주말 웨딩을 중심으로 일주일이 돌아가고, 웨딩의 수와 규모에 따라 일주일이 어떻게 흘러가겠구나 대략 생각이 나지만 아직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주어진 일을 하다 보면 금세 일주일이 지나간다. 실장님은 호텔 오픈을 함께 하셨고, 웨딩은 물론 호텔의 행사 일정들과 중간중간 들어오는 주문들까지도 꿰고 계시기에 딱 보면 일주일의 '사이즈'가 나온다. 다음 주에는 웨딩이 적지만 행사 주문이 있어 언제까지는 꽃 정리가 끝나고, 출근 인원과 아르바이트 인원을 고려했을 때 이 시간에는 세팅이 끝나야 해 정도의 구체적인 업무계획은 물론 완성된 꽃은 어떤 카트를 이용해서 언제 어디로 옮겨야지 하는 가이드까지 주신다.


 이런 일 잘하는 J상사와 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시키는 대로 하기'이다. '완성된 센터피스 6개를 회색 카트 6개를 이용해서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가져다 놓기'라는 미션을 받고 카트 보관장소에 도착한 당신! 눈앞에 더 큰 카트가 있어서 6개를 한 번에 옮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큰 카트를 골랐다면 혼쭐이 날지도 모른다. 그 카트는 다른 꽃을 옮겨야 하거나/너무 커서 엘리베이터에 탈 수 없거나/그저 상사의 계획 속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용해서는 안된다. 멀리서 의기양양하게 큰 카트를 끌고 오는 당신을 본 J상사는 본인의 통제를 벗어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업무가 바쁘지 않고, 상사가 좋은 사람이라면 당신이 되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겠지만 둘 다 아니라면 욕만 먹고 일을 두 번 하게 된다.


 하지만 가끔은 시키는 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마주친다. 카트 6개가 없거나, 아무리 생각해도 큰 카트를 사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을 때 J상사의 통제에 파문을 일으켜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두 가지이다. '타이밍''시간'. 타이밍은 모든 사회생활의 기본이지만 J상사와 함께 일할 때는 더욱 중요하다. J상사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할 것을 알면서도 나와 조직을 위해서 그것을 바꾸고 싶다면, J상사가 통제력을 잃었을 때 뿜어져 나오는 어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업무의 여유가 충분할 때 '대안을 제시하면서' 접근해라. 아무리 타이밍이 좋아도 J상사에게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결국 원래 하던 방식으로 돌아갈 것이다. 두 번째 '시간'은 J상사와 쌓아온 신뢰를 말한다. 우리가 J상사의 통제력 안에 충분히 들어가서 당신의 업무방식과 그 결과가 인정되었다면, 우리는 통제 안에서의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 J상사가 이 일은 맡겨도 아주 잘 통제된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일 못하는 J상사와 일하기 : ?


 일 못하는 J상사와 일하는 법은 없다. 잘못된 상황 파악과 비현실적인 계획에만 집착하고 당연히 나오는 오류 투성이의 결과물들에 옷갓 짜증을 다 내는 J상사와 일하는 법이 어디 있을까. 회사와 사회가 정의롭기를 기도하시던가 도망치자. 다행히 일 못하는 상사와 일해본 경험이 없어서 개인적인 조언을 드리기로 어렵지만, 내가 나가거나 쟤가 나가거나 둘 중 하나로 귀결된다고 한다.

 



 쓰고 나니 J상사와 일하기보다는 그냥 일하기 같다. 일 잘하는 상사들은 모두 자신의 계획이 있지만 J상사들은 통제에서 벗어나는 일을 더 꺼리는 편이다. 당신이 일 잘하는 J상사와 일하고 있다면 최대한 J상사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데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충분한 시간이 쌓여 J상사의 계획을 이해하게 되고, 아쉬운 부분이나 개선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좋은 타이밍을 노려 대안과 함께 공략해보자. 적은 확률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J상사+P직원과 P상사+J직원 중 어느 조합이 더 별로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 일 못하는 상사+일 못하는 직원을 이길 수 없던 과거의 경험이 떠올라 몸을 떨었다. 능력이 먼저고 J와 P는 그 한참 다음이다. 회사에서는 일이나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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