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둥둥 May 20. 2022

11. 회사에서는 일 얘기만 합시다

좋은 얘기도 가끔은 듣기 싫은데

 나는 말이 많다. 서울에서 통영까지 자동차로 달리는 다섯 시간쯤은 (적당한 상대만 있다면) 음악과 라디오를 틀지 않아도 소리가 비지 않을 자신이 있다. 여러 주제에 대해 여러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계절/날씨/정치/패션/인생/풍류/여행/연애/연예 등 다양한 것들을 적당히 알고 있고 잘 버무려낸다. 10분에 여섯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다가 하나에 꽂혀 대혈투를 이어가다가도 처음에 말한 가벼운 주제로 선을 휘어 이어지게 할 수 있다. 용의 머리로 시작해 사자의 발톱으로 갔다가 물고기 성대의 다리는 다리라고 할 수 있는가로 이어져, 바다낚시와 밤낚시 얘기를 통해 취미에 얼마까지 돈을 쓸 수 있는가 격론 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통영 밤바다 냄새를 맡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회사에서 대화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는 회사에서 대화하지 않았다. 짧은 휴식시간과 길지 않은 점심시간에, 가끔은 오후 내내 일어서지도 못하다가 문득 너무 화장실이 가고 싶던 토요일과 13일 동안 뉴욕 여행을 다녀온 수요일에도 회사는 바빴다. 오늘 매출, 다음 달 메인 테마, 분기/반기별 달성률 추청들에 쫓겨 퇴근시간도 알 수 없는데 우울한 연애사 얘기 따위에 마음을 쏟기 싫었다. 팀별 특이사항은 없는지, 함께 진행한 프로모션 반응은 어떤지에 대해 깊이 얘기할 시간도 없는데 회사에서 스치듯 만난 인연은 회사에 담아둬야 하지 않을까. 황산은 빛을 받으면 분해가 돼서 갈색병에 담아둔다. 회사에서의 인연도 갈색병에 담아두고 열심히 일이나 했으면.


 그리고, 일터를 나와서 서로를 직책을 부르지 않는 사이가 되었을 때 대화하기를 원한다. 사에서 스치듯 만났어도 서로가 궁금해질 때 회사 밖의 생태계처럼 서로 눈치를 좀 보면서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말을 가다듬으면서 어렵게 얘기하고 싶다. 자주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은 관계에 대해 착각한다. 나는 회사에서 선임이지만 회사 밖에서는 아니고, 대부분의 삶과 시간을 회사 밖에서 보냈다. 또래집단과 달리 회사에서 우리는 도망칠 수 없는 관계에 묶여있고, 생각보다 서로 친하지 않다는 걸 상기하기를.


 스치듯 만난 회사에서도 인연이 넘쳐 밖으로 이어진 사람들이 많다. 퇴근 후 많은 술자리를 함께한 동기들과 선후배들은 퇴사 후에도 즐겁다. 관계에서 회사를 뺐을 때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고 싶지 않다. 조용히 일만 합시다. 우리는 친구가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직장동료에서 직장을 빼도 여전히 동료로 남은 많은 선후배동기들에게 사랑을 전한다. 퇴사 후에 서로의 직장은 달라졌어도 서로의 삶이 궁금하고 좋고 나쁜 소식에 마음 쓴다. 회사 책상에서 업무인 셈 치며 억지로 듣던 세상만물의 이치보다 문래 맛집이 어디라는 사소한 이야기가 즐겁다.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자연스러운 관계로 이어지자.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나도 우울하고 나쁜 이야기는 듣기 싫다. 각자의 짐은 각자에 등에 메고, 정말 너무 힘들 때 미안한 마음으로 한 숨 내뱉으며 그 소리가 크지 않았나 눈치 보자고 말하면 너무 매정한가.



매거진의 이전글 10. J상사와 일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