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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둥 Oct 19. 2020

ㄴ. 나무는 무엇일까요

제주 마지막 날 첫 카페에서

 제주의 열한 시를 기억하려 카페에 왔다. 당근주스로 유명한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당근케이크를 먹다가 창가에   꽂혀있는 마른나무를 봤다. 잎도 뿌리도 없이 줄기만 남아 커튼의 끝을 지탱하고 있는 저것은 나무일까, 나무였던 적은 있을까


 나는, 우리는 변화와 발전을 찾아 방황하는 와중에도 우리의 원류를 그리워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답해줄 그럴듯한 교리를 꿈꾼다. 커튼에 매달려 때때로 푸드덕 거리는 매미와 검은 턱시도 고양이가 돌아다니는 카페에 와서도 나는 한가롭게 유튜브를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왠지 아무 생각 없는 한량처럼 느껴진다.) 명확하게 주어진 문제 앞에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나는 '문제와 질문의 차이가 뭘까요'같은 피상적인 소리만 냈다.


 어젯밤에는 친구들과 둘러앉아 단어 마피아를 했다. 차례로 자신의 단어에 대해 설명하고, 누가 다수와 다른 단어를 가지고 있는 마피아인지 찾아가는 게임에서 시민은 단어에 대한 힌트를 마피아에게 주지 않기 위해 마피아는 자신이 마피아인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모호한 발언들을 이어가다, 때로는 서로에게 답을 알고 있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강경한 발언을 하고는 불안해하기도 한다. 작은 것을 크게 해석하는 나는 어제를 생각하다 요즘의 나를 떠올렸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들킬까 불안해하는 마피아처럼, 나와 내 삶의 내일을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모호한 말을 쏟아내다가 '12월이 오면 퇴사할 거야' 하는 구체적이고 텅 빈 답을 내놓고는 한다.


 이 기회를 빌어 나는 너에게 말하고 싶다. 아무것도 모르겠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과 부지런히 걷기만 해서는 제자리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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