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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둥 Jan 14. 2023

29. 헤어질 결심

결심인데 이제 바뀌기도 하는 그런

 삼전동 집 계약이 올해 4월 8일까지예요. 퇴사하고 송파로 넘어온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 갑니다. 지난 일요일에 집주인에게 연락이 와서 재계약여부를 물어보시더라고요. 임대인과 임차인은 계약만료 6~2개월 전까지 재계약 의사를 서로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묵시적 연장으로 2년간 추가 계약이 돼요. 만료 3개월 전이니 적절한 시점이었습니다.


 지난주 금, 토 저녁웨딩이 있었고, 당일날 아침들에 그날 쓸 꽃작업을 하고 밤까지 웨딩 준비를 하는 게 생각보다 힘들더라고요. 일요일은 덕분에 침대를 펴고(이케아에서 고민하다 산 침대인데 펴면 퀸, 밀어 넣으면 싱글이 됩니다. 보통은 접어두고 종종 펴서 써요), 집에서 하루종일 쉬고 있었어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아서 조금 더 고민해 본 다음에 전화를 드리겠다고 하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기분이 영 좋지 않았어요. 두꺼운 겨울 이불에 쌓여 뒹굴거리는데, 누군가가 이불을 확 들추고는 현실에 대해 조목조목 깨닫게 해 주는 느낌이랄까요. 사실 느낌이 아니라 딱 그랬어요. 퇴사를 하고 호텔에 다니며 잠깐 미뤄두었던 오늘을 꺼내서 한참 고민했습니다.


 백화점을 꼬박 4년 다니면서 열심히 모은 돈은 없습니다. 개인적이지만 타인의 이유로 꽤나 큰돈은 아주 좋은 곳에 쓰였거든요. 퇴사하면서 받은 퇴직금과 약간의 저축이 3,000만 원인데 지금 삼전동 집 보증금에 전부 묶여있습니다. (삼전집은 1억에 30만 원인데, 청년전세대출로 7,000만 원을 빌렸어요. 청년이라는 이유 하나로 저렇게 큰돈을 빌렸다는 것에 매번 신기합니다.) 작년 1월부터 아르바이트로, 5월부터는 계약직으로 호텔에 다니면서 모은 돈은 아주 작고 귀엽습니다. 200만 원쯤 되는 돈인데, 전 회사에 다닐 때의 두 달 저축분보다도 적네요. 월급 200만 원을 받으면 30만 원은 월세로, 25만 원은 대출 이자로(금리가 많이 올랐다는 것은 뉴스가 아니라 카카오톡 이자 알림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100만 원쯤은 큰 고민 없는 소비로 나가고 남는 30만 원쯤으로 통신비와 공과금 기타 등등을 내면서 자주 놀러 다니고, 종종 선물하니 크게 모을 돈이 없더라고요.


 물론 방송이나 여러 매체들에서 적게 벌고 많이 모으신 분들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저도 종종 지출내역을 뜯어보곤 하는데 줄일 수 있는 돈은 한 달에 정말 많아야 20만 원 정도더라고요. 100만 원을 쭉 나열해 보면 1만 원 100개 있으면 100만 원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끔 마이너스가 안 나는 것이 더 신기할 때가 있어요. 여기까지가 왜 제가 돈이 없는지에 대한 짧고 긴 변명이었습니다.


 어느새 보니 회사를 나와 회사를 다니고 있더라고요. 깨달은 것이 작년 9월입니다. 그래서 다음 9월 전까지 가게를 내기로 했어요. 그냥 결심한 겁니다.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한 게 지난 5월부터이니 올 4월이면 1년이 됩니다. 1년을 채우면 퇴직금과 연차가 발생하니까 아마도 저는 3월까지 계약을 하게 될 겁니다. (감사하게도 정직원을 제안해 주셨지만, 한동안 직원은 안 해보려고 사양했습니다) 4월부터 꽃집에서 일하면서 가장 바쁜 5월 시즌을 보내고, 여름 비수기에 꽃집을 알아보고 9월 전까지 오픈하면 적절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집계약이 변수가 된 거죠. 묶여있는 돈이 풀릴 수 있는 기회이지만 이사와 가게를 묶어 처리해야 하는 긴박함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마음을 정리하자면 일단 회사는 3월에 그만둔다입니다. 4월까지 계약을 제안하셔서 1년을 채워주시다면 감사하지만 안된다면 4월부터는 꽃집에서 일하려고요, 집 재계약은 모르겠다입니다. 이사를 한다고 해도 집 보증금은 있어야 할 거고, 월세와 이자를 줄인다고 해도 한 달에 큰 차이가 나진 않을 것 같아요. 가게는 해결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제 나름의 자문단과 얘기를 나눠보니 장소와 비전이 먼저고 돈은 오히려 그다음에 해결해야 할 문제더라고요. 생각이 깊어질 땐 오히려 꺼내어 햇볕에 며칠 두면 좀 나아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1월 웨딩은 이번주까지만 있고, 다음은 2월 둘째 주 입니다. 그 사이에 가게를 둘러보고 상가와 지역과 꽃집을 생각에서 현실로 좀 들여놓으려고요. 2월 첫 목요일 밤에 제주에 가서 금요일 하루종일 한라를 등산할 계획입니다. 퇴사한 달에 다녀왔으니 딱 2년 만이네요. 날씨와 체력이 도와주기를 그리고 답보다는 결심을 가지고 내려올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분명히 굳건한 결심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금세 달라지고, 완벽한 답이라 써냈던 것들은 돌아서면 불안해져요. 문제를 만나면 여전히 어렵고 싫다는 생각부터 듭니다. 올해 지금까지 배운 것은 서른셋은 확실히 어른이 되는 나이는 아니라는 겁니다. 언제 어른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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