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0. 일주일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에서 한 발 짝 내딛기

by 둥둥

무슨 일이든 그렇겠지만, 꽃 장사를 하며 하루하루의 매출에 울고 웃지 않으려 부단히 멀어진다. 가게를 열면서 안정권에 든 최소 매출을 한 달에 900만 원선으로 잡았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한다면 하루에 30만 원, 일주일에 210만 원의 꽃을 팔아야 한다. 하루에 5만 원 꽃다발을 여섯 명에게 팔면 되는 간단한 계산법을 맞춘 적이 작년 11월 오픈 이래로 몇 없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다행히 경기가 안 좋던 때에 오픈을 해서인지, 요즘 더 힘들다는 이야기가 와닿지 않는다. 3월 초 개학시즌이 지나 3일 연속으로 손님이 오지 않았던 날이 있는데, 그때 참 고달팠던 여운이 남아있다. 그 이후 더 아픈 기억이 없는 걸 보니 다행인 듯싶기도 하다. 마케팅을 하며, 이탈 고객에 대한 수많은 분석과 보고서를 내며, 고객들의 재구매 빈도와 이탈률은 어느 정도고 신규 브랜드가 고정고객을 잡는 데에는 매니저의 역량을 떠나 꽤 오랜 시간이 든다는 걸 질서 정연한 숫자들로 밝혀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 일이 되니 B4크기로 자랑스레 몇 장씩 써 올린 것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는 백화점이라는 봉토 안이기라도 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열심히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오픈을 하는 것, 이 날씨와 시간에 누가 꽃을 사러 오겠어의 유혹을 견디며 시간 맞춰 문을 닫는 것만큼 뿌듯한 일이 없다. 나의 일상이 된 9호선 일반열차 - 241번 버스 / 4211번 버스의 조합은 기후동행카드로 정액할인의 축복까지 받았으니 좋은 일이다. 그리고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에서 나는 코 앞에 닥칠 기쁠 일들을 만들고, 내가 만들지 않는 기쁜 일들에 홀려 일단 한 발 내딛는 것이다.


매장 바로 길건너에는 신자금성이라는 동네 중국집이 있다. 일요일 점심에 간짜장을 먹으러 들어갔는데, 군만두 몇 조각이 같이 나왔다. 며칠 전 까맣게 탄 남자 중학생 3명이 친구집에 놀러 간다고, 그 친구 어머니께 드릴 꽃다발을 사러 왔길래 대견하고 신기한 마음이 들어(나 중학생 때는 저런 예쁜 생각을 왜 못했나!) 꽃을 한가득 쥐어줬는데, 놀러 가는 친구 중 한 명의 부모님이 중국집 사장님이셨단다. 생각지 않은 군만두의 바삭한 미담에 일요일 종일 기분이 좋았다. 어제는 한가한 월요일이 되어버려서 (어느 월요일은 또 바쁘다) 꽃다발 1개를 팔았지만, 여동생이 주문해 준 결혼기념일 꽃다발을 픽업온 오빠가 매장을 나서서 사진을 찍으며 '너무 예쁜데'라 속삭인 말을 훔쳐 듣고서 오후 8시까지 열심히 매장 청소를 하고, 꽃들을 다듬었다.


결혼기념일 꽃다발. 오픈 초기에 달린 리뷰 사진을 예시로 주셨다. 과거의 나를 이기는 것이 이렇게 쉽다니. 반성과 칭찬을.


지인들 중에 몇 안 되는 자영업자로 살며, 더 흔치 않은 꽃집 사장으로 살며, 만날 때마다 많은 불안과 우울을 걷어내고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바로 옆 건물 3층에 새로 생긴 찻집에서 얼마나 내 꽃꽂이를 칭찬해 줬는지, 이제 조금씩 생기는 단골들에게 인스타에서 춤이라도 추라며 애정 섞인 질책을 들었다던지, 이른 시간에 급히 무인으로 구매해 간 손님이 행사가 끝난 오후에 전화가 와 행사를 잘 치렀다며 서로 안도와 만족의 웃음을 나눴다던지 하는 이야기들을 모아둔다. '꽃집에 화가 나서 오는 사람은 잘 없으니까' 생각보다 꽃집에서 화 날 일이 없다. 동물병원 오픈 준비로 죽어가는 친구에게 격려를 하며 나도 겪은 나쁜 얘기 한가득에 최근의 미담을 어떻게든 섞어 주었다. 언젠가 좋은 얘기만 한가득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날이 오겠지.


10월 캘린더를 보며 23일 가게월세, 25일 카드값, 아 12일은 집 월세, 9월 매출 마감은 어땠지를 고민하며 동시에, 드문드문 이어진 친한 친구들의 결혼식과 바쁘고 여유 없다고 투덜대는 나를 불러준 여러 친구들과의 술자리, 설악산 등산 가자는 친구의 강경한 요청과 미련이 남아 아직 거절하지 못하고 있는 주말여행을 마주한다. 내일은 나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주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가게 마감하고 노량진에서 만나!', '금요일 오전에 꽃다발 주문이요!', '꽃다발 너무 예뻤어요, 자랑하려고 리뷰 남겨요!' 등 구체적이고 아주 확실한 목적지가 필요하다. 중간결산을 아무리 해봐야 알 수 없는 이 아름다운 연말을 사랑해야지.




ㆍ옥수동, 한남동 꽃과 식물은 꽃집 [이름], 즐거운 자기 PR을 먼저 남겨요.


ㆍ홍제동에서 열심히 공사 중인 [홍제모아동물병원]에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ㆍ이번주에는 스페이스클라우드에 공간등록 및 검수를 완료했고, 태산목 리스를 공부하고 있어요.

표면적을 넓혀서 알 수 없는 어딘가에 닿아보려고요.


ㆍ글을 쓰고 정리하던 이 순간에, 미국에서 한 달 전에 돌아오셔서 화장품 브랜드를 런칭중이시라는 분께서 오셔서 이 좋고 비싸고 아름다운 자리에 왜 꽃집만 하냐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응원과 잔소리를 또 들었습니다. 저녁장사를 해야 한다는 고민을 꽤 했지만 여전히 결심이 어려워요. 11개월 차 장사는 여전히 흥미롭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