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에서 근무하던 20대 후반에는 중ㆍ고등학교 동창인 친구와 함께 살았다. 중학교 2학년 때 만나 당시 14년쯤 관계를 이어가던 친구는 청주에 있는 또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2교대 근무인 터라 며칠은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며칠은 저녁에 나가서 아침에 들어왔다. 보통 내가 출근하려 씻고 있거나, 내가 퇴근 후 씻고 있을 때가 친구의 출퇴근 타이밍이었고, 종종 밥을 먹고 함께 놀았으나 그 빈도가 함께 사는 사람 치고는 많지 않았다. 아주 친한 친구였고, 그 상황을 미리 생각해 둔 덕이기도 했으나 거실을 중심으로 양쪽 날개에 방이 있는 구조를 찾아 계약했기 때문에 서로 좋은 거리감으로 살았다.
오히려 가장 자주 만난 친구는 근무하면서 만난 김 군인데, 같은 나이지만 입사를 1년 뒤에 한 그는 청주가 고향인 나와 달리 처음 보는 지역에 발령을 받아 근무를 하는 중이었고 초반 몇 개월은 큰 교류가 없다가 기억나지 않는 계기들로 친해진 이후 한 달에 보통 10일쯤은 만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놀러 가거나 잠시 수다를 떨거나, 산책하거나 러닝을 했다. 김 군은 자주 '우리 이번달에 X번 만났다'는 알람을 해주곤 했는데, 나는 큰 감흥 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 와중에 김 군은 내 청주의 지인들을 함께 만나 친해져 함께 사는 친구나 근방에 발령받아 있던 사람들과 함께 만나기도 했다. 한 달에 10번은 생각보다 많은 숫자가 아니라면서.
9월 추석부터 10월 초 공휴일들까지 한 달에 10번쯤 꽃가게에 온 친구가 있다. 역시 고등학교 동창인 그는 지나가다가, 옥수역 한강변에서 러닝을 뛰고 나서, 옥수역 한강변에 러닝을 같이 뛰러, 집 근처 중랑천에 러닝을 뛰러 가러 혹은 주말에 매장에서 영화를 보러 왔으며 회사는 종로인데 함께 친한 친구가 옥수에 살기도 하고 퇴근 후 러닝에 넙죽넙죽 오케이를 하는 내가 편했을 것이다. 뛰기 너무 좋은 날씨였고, 10km 대회를 앞두고 있었으며 이런저런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기에 오늘 보고 내일 보더라도 모레는 또 만날 이유가 생겼다. 또 다른 친구는 3년 정도 역곡에서 수의사로 근무해 자주 보진 못했으나, 이번에 홍제에 동물병원 오픈을 준비하다 오픈이 슬프게도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라, 근 이 주간 네 번을 만났다.
청주에서 함께 살던 친구는 여전히 청주에서 근무 중이라 열심히 짬을 내 만나도 일 년에 네 번쯤 보는 것 같다. 김 군은 내가 먼저 서울 발령이 난 뒤 코로나가 터져 한동안 보지 못하다가 그의 본사 발령 뒤 종종 만났지만 결혼/이사 이후 한 달에 한번쯤 만나는 편이다. 매일을 붙어있던 고등학교 기숙사 친구들은 나의 대학 입학, 취업, 퇴사 후 이직, 가게 오픈 후 여러 상황에 따라 한 달에 10번이나 1년에 한 번 보게 되었지만, 일 년에 두 번 만나게 된 친한 친구도 있고, 일주일에 네 번 만나게 된 그리 친하지 않던 친구도 있다. 고난과 어려움, 귀찮음과 계산을 뚫고 이어지는 만남도 물론 있지만 삼일에 한 번은 만나 저녁을 먹던 때, 먹던 친구가 있으면 또 다른 친구와 이틀에 한번 퇴근 후 저녁 러닝을 하게 되는 상황도 오곤 하는 것이다.
'너 그 친구 자주 만나?'는 질문에 대한 내 개인적인 기준은, 위와 같은 상황 인식 덕분에 아주 유동적이다. 상황에 따라 자주 만날 수 있는 친구는 자주 만나고, 또 다른 친구는 일상 사이에 오는 선물 같은 타이밍에 시간을 내서 만나고, 혹은 열심히 오래전부터 잡은 약속이 깨지거나 미뤄질 수 도 있다는 굳은 각오를 하며 커피를 마신다. 이번 주 일요일은 군복무 중 초임하사로 발령 와 14년간 연락을 이어오던 친구의 결혼식이 있고, 어제는 백화점 첫 근무를 함께 시작한 뒤 먼저 퇴사해 세 번째 스타트업에 몸담고 있는 친구가 송년회를 해야 하지 않냐며 꽃집에서 만나자는 DM이 왔다. 다음 주 월요일은 얼마 전 아이를 낳은 친구와 저녁을 먹으러 가야지. 귀찮고 마음 쓰이지 않는 약속은 없다. 모든 일상에도 수고와 피로가 들고 어떤 약속이든 너무 자주는 없다.
ㆍ 너무 자주 만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그럼 좀 덜 만나면 된다. 나도 김 군에게 꽤나 여러 번 까였고, 나도 다른 친구들의 저녁 초대를 자주 거절한다.
ㆍ 가장 연속된 만남은 정의하기 어렵다. 나는 고등학교 기숙사와 군대라는 특수 상황을 겪어서 그런지 일상과 만남을 크게 구분하지 않는다. 같이 살아도 저녁 약속을 잡지 않으면 만남이 아닌 거 아닌가.
ㆍ 오랜만에 오는 연락을 다 좋아하진 않는다. 문을 나서면서도 후회되는 약속들은 차고 넘치지만, 그중에서 몇몇 기쁘고 행복한 반전들 덕분에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ㆍ 보고 싶다는 감정은 내가 오래 고민해 온 꼭지이기도 하다. 지난 연인, 지난 친구에 대한 생각으로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