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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el Jun 01. 2016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우울함

쳇 베이커 전기 영화 <본 투 비 블루>

My funny Valentine

근래 바빠서 영화관을 못 갔는데 <본 투 비 블루>는 정말 보고 싶었다. 마침 지난달 22일에 명동 시네라이브러리에서 김현준 재즈평론가께서 시네마톡을 진행하셨고, 운 좋게 좌석을 구해서 보게 됐다. 대충 쳇 베이커의 삶이 기구하다는건 알고 있었다. 천재 트럼페터, 재즈계의 제임스딘, 웨스트코스트재즈의 상징, 쿨재즈의 왕자 등등. 이렇듯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그는 심각한 마약중독자였고 그로 인해 삶의 굴곡이 많았다는 정도? 그래서인지 그의 연주를 (특히 my funny valentine같은 약간 우울한 분위기) 듣고 있자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지곤 했는데 <본 투 비 블루>를 보고나서는 더욱 그런 기분이 든다.


Born To Be Blue

그가 천재 트럼페터로 평가받는 이유는 듣는 능력이 뛰어나서 즉흥 연주를 하는데 타고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솔직히 나는 음악적 재능은 정말 없어서, 그의 음악만 두고 봤을 때는 그가 즉흥 연주의 달인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몇 곡을 두고 마일스 데이비스나 프랭크 시나트라의 버전과 비교했을 때는 조금이나마 느껴지긴 했다. (딴 소리지만 그래서 스탠다드 재즈가 재밌는 것 같다. 같은 곡의 다른 느낌)  이뿐만 아니라, 그는 제임스 딘을 닮은 외모에 목소리마저 좋아서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다만 그게 오히려 그에게는 마냥 좋지 않았던게, 그런 이유로 정작 동료나 선배들에게는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게다가 당시 재즈는 흑인들의 음악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했다. <본 투 비 블루>의 초반에서도 그런 이유들로 그는 무시받는 동시에 그의 컴플렉스처럼 자리잡힌다.


동료와 대중 사이에서의 괴리감 때문인지, 롤모델인 찰리 파커의 영향 때문인지 그는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결국 알아주는(?) 마약중독자가 됐다. 젊은 나이에 감옥과 병동을 오가다가 심지어 68년도에는 마약과 관련된 갱단에게 폭행당해 이빨이 거의 다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구강의 힘이 중요한 트럼페터로서 이는 사망선고에 가까운 사건이었다고 한다. 이대로 끝났어도 충분히 기구한 삶이지만, 그의 재즈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는지,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는 틀니로도 트럼펫을 연주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그의 연인 제인이 함께 한다. 

에단 호크가 실제로 연주한 My funny Valentine

제인은 쳇이 위험한 남자임을 알고 그에게 인생을 거는건 도박이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그가 이빨을 잃건 피를 흘리건 그를 보살피고 격려한다. 그러나 마약만큼은 절대 봐주질 않았다. 퇴원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가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마약을 하자 그에게 '다시 목을 긁게 되면 떠나겠다'고 엄포한다. (마약을 하면 온 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기분이라 목을 긁게 된다고 한다.) 그는 그녀를 잃기는 싫었는지 고향에 돌아가 처음처럼 트럼펫을 연습한다. 결국 뼈를 깎는 노력으로 예전같은 수준은 물론 그만의 깊이가 더해진 연주 실력을 갖추게 된다. 그는 다시 전성기를 가져올 지 모르는 공연을 앞두고 제인과 갈등을 빚는 바람에, 다시 한 번 마약의 유혹에 사로잡히고 만다. 인생 최고의 연주를 하고 다시 전성기를 찾는 것. 더 많은 공연의 기회를 찾고 유럽까지 진출하는 것. 마일스 데이비스의 인정을 받는 것. 그는 이것들이 마약이 있다면 더욱 수월해질거라 생각한다. 그의 주변 인물은 다시 손을 대기 시작한다면, 너는 제인을 잃고 예전으로 돌아갈거라 말한다. 그의 고민은 깊어지고 무대에 오를 시간은 다가온다.

그의 음악에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

영화가 끝나고 뒤이어 김현준 재즈평론가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어디까지 실제를 반영했는지, 배우들의 연기는 어땠는지 등등. 실제로 쳇 베이커의 전기를 번역하신 분이라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영화의 제인은 한 인물이 아니라 쳇의 다양한 여자(?)를 담아낸 인물이며, 감독이 디테일한 부분에 공을 많이 들였다는 점을 말씀하셨다. 특히 마지막으로 '재즈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음악'이라는 말씀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이 쳇 베이커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도 그와 같은 맥락이겠단 생각을 했다. 


제목이나 인물이 우울한 느낌을 풍기기도 하지만, 마냥 우울한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간간히 개그 코드가 있어 실소를 터트린 장면이 꽤 있었다. 무엇보다 쳇을 연기한 에단호크는 그의 영혼까지 재현하고 싶다며, 직접 연주까지 하면서 소름끼치는 열연을 보여줬다. 특히 옆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쳇 베이커가 살아돌아온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중에 듣기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이 역을 몹시 탐냈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음악에서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고 했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어쩌면 그의 아이같은 눈동자와 소년같은 목소리, 그리고 노인같이 깊게 패인 이마 주름. 이런 것들에게서 우리 각자가 정의하는 청춘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P.S.

김현준 평론가께서는 쳇의 음악 중에서 Thrill is gone을 추천하셨고, 저는 I fall in love too easily나 almost like being in love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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