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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el Jul 30. 2016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지

<라쇼몽>과 <12인의 노한 사람들>을 보고

    여느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천문학적인 제작비와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하진 않았지만, 어떤 블록버스터 영화보다도 박진감 넘치고 몰입하게 만드는 영화들이 있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라쇼몽'과 '12인의 노한 사람들'이 그러하다. 두 영화 모두 50년대에 제작된 저예산 흑백영화로, 한정적인 공간에서 진행되는데도 팽팽한 긴장감이 흘러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봤다. 게다가 굉장히 현실적이고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필수 교양 영화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수업에서 다뤄지는 듯하고, 나 또한 라쇼몽은 대학교 1학년 교양수업에서 처음 접했다. 

라쇼몽(1950, 구로사와 아키라作)

     영화는 전란, 기근과 전염병으로 황폐해진 시대에, 파괴된 성문 라쇼몽(羅生問)에서 폭풍우를 피하려던 평민이 어쩐지 넋이 나간 승려와 나무꾼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시작한다. 

사건이 벌어진 배경은 녹음이 우거진 숲 속. 사무라이 타케히로가 말을 타고 자신의 아내 마사코와 함께 오전의 숲 속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늘 속에서 낮잠을 자던 산적 타조 마루는 슬쩍 마사코의 예쁜 얼굴을 보고는 그녀를 차지할 속셈으로 그들 앞에 나타난다. 속임수를 써서 타케히로를 포박하고, 타조마루는 마사코를 겁탈한다. 오후에 그 숲 속에 들어선 나무꾼은 사무라이 타케히로의 가슴에 칼이 꽂혀있는 것을 발견하고 관청에 신고한다. 곧 타조마루는 체포되고, 행방이 묘연했던 마사코도 불려 와 관청에서 심문이 벌어진다.(후략)
                                                                                                                    - 네이버 영화 줄거리    
마사코와 타조마루, 뒤에는 타케히로가 포박되어 있다.

    먼저 산적 타조마루는 타케히로를 결박한 후에 마사코를 겁탈했는데, 그녀가 두 남자에게 욕보인 채로 살아남을 바에는 죽는 게 낫다며 타조마루에게 남편과의 결투를 제안했다고 한다. 자신은 그녀의 제안대로 타케히로와는 정당한 결투를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사코의 진술은 완전히 다르다. 타조마루가 자신을 겁탈하고 떠난 후, 남편의 표정이 자신을 향한 증오로 물들자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죄 없는 자신에게 냉정하게 구는 남편을 보며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고, 눈을 떠보니 자신의 단도가 남편 가슴에 꽂혀 있었다고 주장한다. 

    급기야 무당의 힘을 빌려 죽은 타케히로의 진술을 듣게 되는데, 도적이 아내를 범한 후에 아내는 반항은커녕 제 아내가 되라는 도적의 설득에 넘어갔다고 한다. 심지어는 남편을 죽여 달라는 말까지 했으나, 도적은 그녀의 말에 되려 분노하여 자신을 풀어주었다고 한다. 그 후에 아내의 단도로 자결했다고 하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렇게 끝나는 듯 하나, 나무꾼이 그의 진술도 거짓이라며 그제야 자신의 목격담을 토로한다. 그에 따르면 도적은 마사코에게 제 아내가 될 것을 제안했고 이에 그녀는 남자들의 결투에 맡겼으나 남편은 거절한다. 그러자 마사코가 남자답지 못하다며 둘을 부추기자 둘은 마지못해 싸우게 된다. 치졸한 결투 끝에 남편이 죽었고 그 사이에 이미 마사코는 도망갔다고 얘기한다. 

    그를 들은 평민이 어째서 관청에서는 진술하지 않았냐고 하자, 자신은 그저 사건에 휘말리기 싫었다며 변명한다. 하지만 말다툼 끝에 나무꾼 또한 자신이 몰래 단검을 취했기에 위증한 것임이 밝혀진다. 결국 사건은 끝까지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로 끝나며 '인간이란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좋게 꾸미려 드는 이기적인 존재'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참고로 '똑같은 사건이라도 개개인의 관점에서 해석이 달라지는 기억의 주관성을 뜻하는 현상'인 라쇼몽 효과도 이 영화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12인의 노한 사람들(1957, 시드니 루멧作)

    '12인의 노한 사람들'은 살인사건을 두고 최종 판결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배심원들을 축으로 진행된다. 살인 사건을 두고 진행한다는 점에서 라쇼몽과 비슷하지만 12인의 노한 사람들은 인간의 심리 외에도 사회적, 제도적인 부분도 고민하게 된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가진다.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스페인계의 10대 소년은 자신의 친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고, 최종 판결을 위해 12인의 배심원들이 회의에 소집된다. 모든 정황이 소년이 범인임을 가리키고 있어, 만장일치로 쉽게 끝날 것 같았던 회의는 단 1명의 배심원 8의 반대로 계속 이어지게 된다. 소년이 유죄라는 지배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합리적으로 사건을 살펴봐야 한다며, 검찰이 제시한 증거와 목격자 진술의 논리적 결함을 지적한다. 그러자 몇몇 배심원들도 그의 주장에 점점 설득되기 시작하는데...
유일하게 손을 들지 않는 배심원8

    우선 넓게는 민주주의, 좁게는 배심원 제도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었다. 배심원들은 시민의 자격으로 소년의 유/무죄를 가릴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그들은 한 사람의 목숨을 결정짓는 일에 심사숙고하여 결정 내리기는커녕 개인의 경험, 선입견, 일반화, 군중 심리 등의 요인으로 너무나도 쉽게 유죄라고 단정 짓는다. 심지어는 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 혹은 감정적인 부분으로 쉽게 결정을 내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을 보며 몇 가지 질문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배심원 제도는 민주주의를 보장하는가? 만약 배심원의 의견이 만장일치가 아니라 다수결에 의해 결정됐다면? 올바른 시민의 모습이란 어떠한가? 등등. 특히 '내가 그들이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이 참 무겁게 다가왔다. 나는 여론에, 사적인 경험과 편견에 휩쓸리지 않고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다른 이들처럼 배심원 8에게 쓸데없는 시간낭비라며 나무라진 않았을까? 이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영화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으나 틀릴 수도 있으며, 편견은 항상 진실을 가리기 마련이다.'

마무리하며

    영화사적으로 잘 만든 영화들로 유명해, 글로 정리하는게 쉬운 영화는 아니었지만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꼭 글을 남기고 싶었다. 두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 반성하는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주장을 내세울 때 내게 유리하도록 꾸며내지는 않는지, 내 의견만을 고집하고 있는건 아닌지 혹은 나는 나조차 속이려고 하는건 아닌지 등등.

    가뜩이나 요즘 신경쓰이는 이슈들이 다양하게 나타나면서 피로감이 심해져가고 있었다. 그럴수록 쉽고 편한대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으니, 나 자신을 반성하고 의심할 계기가 필요했었다. 두 영화를 정리하면서 어느 정도 그런 시간을 갖게 된 것 같다. 좋은 영화들이라 두고두고 아쉬움이 많이 남을 글이겠지만, 두고두고 영화를 보면서 두고두고 고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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