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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el Feb 26. 2017

괜찮아, 네 자유야

비혼이든 결혼이든

01

결혼 계획은 없어요?

얼마 전 아버지의 권유로 뵈었던 보험설계사 분이 내게 건넨 질문이었다. 없다고 하면 으레 돌아오는 반응들(그런 애들이 제일 빨리 결혼하더라, 늙어서 외로울 텐데, 아직 어려서 그렇지 등등)이 성가셔 얼버무리려다가 솔직하게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요새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는 들었다. 여자야 괜찮지만 아들 둘을 가진 엄마 입장으로는 걱정스럽다. 남자는 장가가야 좋은데'라는 요지의 말을 하셨다. 그분께는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로 인해 비혼주의자로서의 자아는 더더욱 강렬해진다. 언제쯤 우리 사회는 '결혼을 해야만 하는 것 혹은 하면 좋은 것'이란 인식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02

꼭 해야 하나요?

결혼 자체에 나쁜 감정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하는 게 적절하다. 아무런 기대도 의무감도 없고 그저 인생에서 취할 수 있는 많은 옵션 중 하나라고 정의한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다. 여행지에서 알게 된 사람들끼리 모여 가볍게 술을 마시고 있던 날이었다. 소소하게 근황을 나누던 중 한 분이 지금 사귀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길래,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여쭤봤다. 어느 정도의 사랑의 감정이 들어야 결혼을 결심하는지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다른 충격적인 답변을 들려주었다. 하도 강렬하여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답변은 이러했다. '일찍 결혼을 해야 아이도 일찍 낳고 그래야 노후에 고생 덜 하니까'

    이제 와서 그분의 말을 나무라거나 공격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그분의 가치관이니까. 다만 나는 그 사건을 통해서 결혼에 대한 태도가 다양할 수도 있구나 하고 깨달았고, 적어도 나는 저런 이유로는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또 여느 사람처럼 언젠가 나도 결혼하겠지 하고 생각했던 내가 좀 더 주체적으로 결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03

스스로의 정의가 필요한

하루는 어머니가 오빠 부부가 오붓하게 잘 사는 거 보면 결혼하고 싶은 마음은 안 드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에 나는 남의 행복한 모습에서 내 행복의 레퍼런스를 찾는 타입이 아니라, 오빠네가 부럽기보단 뿌듯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고 대답했다. 다만 나도 결혼을 선택한다면 이렇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적은 있다. 어째서 깊은 관계를 맺지 않냐는 물음에 대한 어느 배우의 답변을 읽을 때였다.

"전 혼자만의 시간이 많이 필요해요. 읽고 쓰고 그저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이. 이건 상대방에게는 가혹한 일이죠. 상대방에게 내어줘야 할 공간을 내어주지 못하는 거니까요. 저는 사적이고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데, 상대방으로부터 스스로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서 어떻게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게 제가 요즘 생각해보려고 하는 것들이에요, 아니면 이게 전혀 문제가 안될 정도로 사랑에 빠지던가요."

나 또한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이런 나를 존중받고 나 또한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다거나 혹은 이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안될 정도로 서로 사랑에 빠진다면 결혼하고 싶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말해서 그렇지 않다면 굳이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좌우간 나는 범인류적으로(?) 모두가 스스로에게 좋은 선택을 하길 바란다. 결혼이든 비혼이든 말이다. 그래서 요새 친구들에게 어떤 선택이든 섣부르게만 결정하지 말라고 주제넘은 소리를 하고 있다. 특히 '결혼 안 하면 외롭잖아, 결혼하면 안정되잖아' 등등의 단편적인 주장에는 넘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래는 그런 주장에 대한 내 생각이다.


Q) 결혼 안 하면 외롭지 않겠어?

당신이 연애할 때 한 순간도 외롭지 않았다면 진심으로 축복을 건넨다. 다만 나는 때로는 있어서 외로운 순간이 있단 걸 알아서, 결혼한다고 외롭지 않으리라곤 생각 안 한다. 되려 내가 결혼하고 싶은 순간이 온다면, 부디 스스로가 외로움을 다스릴 수 있는, 상대방에게서 내 외로움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결혼해서 외롭지 않을 사람이려면 결혼 안 해도 외롭지 않을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Q) 내 자식을 갖는 경험을 느껴봐야 하지 않을까?

조카만 봐도 그런데 내 자식이 주는 감정은 엄청나게 다양하고 값질 것 같단 생각은 한다. 그런데 그보다는 내가 누군가를 제대로 키워낼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다. 내가 그런 경험을 느끼고 싶다 해서 준비되지 못한 부모가 되는 것도 이기적으로 느껴지고... 두려움을 극복할 때쯤이면 자식을 낳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자식은 굳이 결혼이 아니더라도 낳을 수 있는 방법은 있고.


Q) 결혼하면 안정되잖아

아래의 이미지로 답변을 대체한다.

다잉메시지급 조언


04

마무리하며

사회적으로 비혼주의를 저출산 문제를 야기하는 주된 원인으로 보는 듯하다. 하다못해 얼마 전엔 고학력, 고스펙의 비혼주의 여성이 하향 선택 결혼을 하도록 유도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정신 차리시라. 이건 종교나 성 정체성처럼 개인의 자유이자 선택의 문제다. 출생률 낮으니 여성들이 눈을 낮춰서 결혼해야 한다는 발상은 어디서부터 글러먹었다고 해야 될지 모르겠다.


다 떠나서 이미 낳은 아이에게는 퍽도 신경 안 쓰는 나라이니 설령 결혼을 하더라도 애를 낳고 싶지 않다. 부디 내 세금으로 가임기 여성 지도나 저런 병신 같은 보고서 만들 시간에, 둘 낳고 싶어도 현실적인 제약으로 하나만 갖는 부부나 혹은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에게나 신경 쓰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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