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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el Mar 05. 2017

나는 단순하지 않게  살기로 했다

집은 내게 카페이자 극장이다

부모님과 따로 산 지 어연 8년이 되어간다. 지금 사는 곳은 5번째 독립의 장소로, 기숙사도 아니고 룸메도 없는 온전한 나만의 장소다. 그 말은 즉슨 이 집에 살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금액도 온전히 내 몫이란 뜻이다. 이전의 집들은 운 좋게도 매달 30만 원 미만이면 살 수 있었다. 심지어 한 기숙사는 식비까지 포함해서 월 10만 원 대만 내면 됐었다. 그래서 교통이 불편하든 방이 좁든 누가 같이 살든 크게 불만 갖지 않았다. 30만원도 안 되는 돈에 잠만 잘 수 있으면 됐지, 뭘 더 바라겠는가.

    하지만 5번째는 상황이 달랐다. 이전보다 더 많은 금액을 내야하는데, 똑같이 잠만 자는 공간으로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았다.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을 갖고 싶었다. 마음에 드는 공간이 카페가 아닌 내 집이기를, 5번째로 머물 집을 찾으러 다닐 때 나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사한 지 6개월이 다 되어가는 요즘, 생각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나섰다고 조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오늘은 단순하지 않은 내 방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글로 남기고자 한다.


01

원룸 아닌 원룸

집을 마음에 드는 공간으로 만드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조금 고되더라도 이사 당일에 큼지막한 작업은 끝내는게 좋다. 나는 가구를 어디에, 어떻게 놓을 지가 최대의 고민이었다. 방이 좁을수록 가구의 배치가 가장 큰 영향을 주므로, 고민 끝에 방 가운데에 수납장으로 가벽을 세우기로 했다. 자는 곳과 먹는 곳이 어느 정도 분리되길 바랬기 때문이다. IKEA의 Kallax(4X2)를 조립하여 매트리스 옆에 세웠는데 훨씬 방이 깔끔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집에 방문한 사람들도 가벽 인테리어에 가장 감탄을 많이 한다. 무엇보다도 누워서 손 뻗을 공간에 읽을 책과 잡지가 있다는 것이 제일 좋다.

IKEA Kallax - 서랍을 다는건 개인의 옵션이다


02

조명, 음악 그리고 향기

깔끔한 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해봤다. 좋은 공간들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쉬운 예시로 카페를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뜻한 노란색 계열의 조명,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그리고 향긋한 원두 향기.

예전부터 주광색의 플로어 램프는 가지고 있었고 향기는 디퓨저로 대신하기로 했다. 예쁜 드라이플라워가 장식되어 있는 자몽향의 디퓨저로. 이제 남은 건 음악이었다. 이거야말로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이었다.

분위기 깡패, 턴테이블


03

셀프 도배

집주인이 새로 도배해주는게 맞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도배 대신 인터넷을 깔아주시기로 했다. 딱히 신경 쓰이는 상태가 아니라 나도 그냥 넘어갔다. 하루는 지나가는 말로 아버지가 시간 날 때 도배해주겠다고 해서, 미리 벽지나 구경해야지 하고 구경하던 중 충동을 못 이기고 주문을 해버리고 말았다. '혼자서라도 하고 말지, 뭐!'하는 마음으로. 택배 도착 문자에 괜히 일 저질렀단 생각이 들었지만 풀 바른 벽지로 하니까 도배가 쉽다는 블로거들의 후기에 용기를 얻어 혼자서 도배를 시작했다. 하다 보니 풀 바른 벽지가 조금 더 쉬울 뿐. 괜히 전문가들에게 돈 내고 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원룸인데도 도배하느라 온 몸에 풀칠하면서 반나절을 꼬박 썼으니 말이다. 게다가 팔도 짧고 키도 작은 내가 스텝 스툴 하나에 의존해서 벽지를 바르는 건 도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흑흑. 그래도 한쪽 면은 짙은 그레이로, 나머지는 화이트로 깔끔하게 도배된 벽을 보니까 기분은 좋았다.

그냥 벽지로 도배하는 자 3류다. 풀바른 벽지로 도배하는 자 2류다. 셀프 도배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 자 1류다.


04

방 안의 갤러리

이사 후 2달 간은 인테리어에 미쳐 있었다. (쓰레기통 하나도 고심 고심하면서 샀다) 틈만 나면 인스타그램과 잡지를 뒤적이다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타공판을 설치하고 나서야 인테리어에 대한 집착이 비로소 사그라들었다. 보통 타공판은 벽에 못을 박아서 거치하는데 이때 벽의 재질이 중요하다. 콘크리트 벽이라면 해머드릴로 벽을 뚫어야 하는데, 내 경우가 딱 그러했다. 셀프 도배 이후로 더 이상의 용기(객기)는 없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벽 대신 몰드에 와이어를 걸어서 타공판을 거치하기로 했다. 사람에 따라 와이어가 지저분하다고 하는데 나는 갤러리 같아서 더 마음에 들었다. 타공판에는 와인잔이나 프라이팬을 거치하려고 했지만, 드라이플라워와 영화 팸플릿이 대신 공간을 차지했다.


05

내겐 가장 편안한 극장

빔 프로젝터 구매는 오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주말에 하루는 종일 영화 보는데 영 불편하기도 해서 얼마 전에 질렀다. 영화를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감상할 요량으로 구매했지만, 오히려 사고 나니 활용 범위가 넓다는 걸 깨달았다. 벽면 가득 밴드의 라이브 영상을 켜놓으니 마치 공연장에 있는 기분도 나고, 홈 피트니스 영상을 틀어보니 바로 옆에 PT트레이너가 있는 기분도 든다. 개인의 성향에 다르겠지만 원룸에 부피를 차지하는 TV보다는 빔프로젝터가 조금 더 괜찮은 것 같다.


날이 풀리면 집 밖으로도 좀 나가겠지만, 여전히 평일 저녁 내게 기분 좋은 휴식을 선사하는 건 내 공간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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